비선실세로 인한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선실세의 딸’ 정유라의 체대입시 비리 사건은 수험생을 포함한 많은 국민을 다시 한 번 농락했다. 이 사건으로 체육특기자 입시제도는 많은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됐다. 그러나 정유라 사건만이 체육특기자 입시제도 논란을 불러온 것은 아니다. 그동안 체육특기자 입시제도는 운동만을 강조해 학생의 수업권을 포기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여러 기관에서 입시제도 변화에 대한 정책을 쏟아냈지만 문제의 핵심 원인을 짚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기관들 간에 정책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많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러려고 체육특기자 입시제도 도입했나···

체육특기자 입시제도는 체육능력이 뛰어난 학생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대학 진학 시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 제도는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통해 대학스포츠 부흥을 이룬다는 의도로 1972년 「교육법시행령」 대통령령 제6377호를 통해 신설됐다. 하지만 체육특기자 입시제도는 도입 당시의 취지와 달리 ‘지나치게 엘리트 체육을 강조하는 입시제도’로 변질됐다. 제도의 관문이 좁기 때문에 체육특기자 준비생은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아닌 ‘체육 엘리트’로 살아남기 위해 운동에만 몰두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체육특기생이라면 운동을 독보적으로 잘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체육특기자 준비생들이 운동과 학업을 병행할 수 없도록 만든다. 결국 이들은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 수업 받을 권리를 포기하게 된다. 실제로 체육특기자 준비생의 대부분은 학교 정규수업에 정상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10살 때부터 7년간 체육특기자 입시를 준비했던 양미주(17)씨는 “수상실적을 쌓기 위해서는 정규 수업시간에도 훈련 할 수밖에 없다”며 “오전 수업만을 듣고 오후에는 수업을 들었던 날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부산대 체육교육과 조송현 교수는 “체육특기자 준비생이 의무교육을 이수하는 내내 운동만을 하는 것은 문제”라며 “체육특기자 준비생 또한 의무교육 이수의 대상자”라고 말했다.

수업권 포기 조장하는 현 입시제도

체육특기생이 수업권을 포기하게 되는 주된 원인은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현재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의 평가방식은 ▲수상실적이 입시의 당락을 결정한다는 점 ▲학생부성적과 수능성적을 소극적으로 반영하는 점 ▲면접반영비율이 높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우선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지원자의 수상실적이었다. 일례로 모 대학의 체육특기자 전형의 지원자격 요건은 ‘최근 3년 내 전국대회에서 3위 내 입상’이었다. 다른 대학들 역시 체육특기자 전형 지원자격요건에 해당하는 입상대회의 종류나 구체적인 등수는 달랐지만 수험생 입장에서 부담을 느끼는 수준이다. 양씨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전국대회에서 수상하지 못하면 사실상 체육특기자 전형에 지원하는 것이 힘들다”며 “수상실적을 만들기 위해 수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수상실적이라는 높은 관문으로 인해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에서 나머지 평가요소들은 큰 영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학생부성적이나 수능성적 등 학업성적의 실질 반영비율은 낮았다. 실제로 주요 체육대학 10개 중 6개 대학은 수능최저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정시전형도 마찬가지였다. 수능성적을 40%부터 80%까지 반영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이는 숫자를 통한 눈속임에 불과했다. 수상실적에 대한 지원자격의 높은 관문 때문에 애초에 지원할 수 있는 학생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정유라가 입학한 지난 2015학년도부터 최근 3개년 주요 10개 대학의 체육 특기자 입시요강을 살펴보면 면접의 실질반영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10개 대학 중 7개 대학은 면접비율이 50% 이상이었다. 면접은 다른 요소보다 면접관의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많다. 고려대학교 국제스포츠학부 류성옥 교수는 “타 전형은 명확한 성적 기준을 전제로 면접 결과를 반영하지만 체육특기자 전형은 다르다”라며 “성적 기준 없이 면접을 진행하는 체육특기자 전형의 경우 면접관의 주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평가방식 하에서 체육특기자 준비생들은 운동이 아닌 학업에 시간을 투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A교수는 “수상실적만을 중시하고 학생부를 경시하는 현 입시제도는 학생들이 학업과 운동을 병행할 수 없게 만든다”고 말했다.

본질 파악 없는 겉핥기식 정책

체육특기자 전형에 대한 논란이 거세지자 각종 기관에서는 저마다 정책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정책들은 입시제도 평가기준을 개선하는 것보다 수업권 포기를 막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시제도의 개편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각종 기관은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A교수는 “수업권 침해는 입시제도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입시제도의 개선이 선행돼야 초·중·고등학생의 수업권 침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지난 2016년 12월 서울시교육청은 체육특기자 준비생의 의무교육학습 보장이라는 목적으로 대회 참가 자격과 참가 횟수에 제한을 두는 정책을 발표했다. 특히 대회 참가 자격에는 출석일수나 학업성적 등이 기준으로 설정됐다. 또한 지난 1월 13일에는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아래 문체부), 대학교육협의회(아래 대교협),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orea University Sports Federation, 아래 KUSF) 등의 기관이 모여 각자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의 개선안에 대해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정책의 내용으로는 체육특기자 준비생의 ▲출결 관리 ▲대회 참가에 대한 성적 제한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수험생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체육특기자 준비생 한모(19)씨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수상하지는 못한다”며 “대회 참가 자격이 높아지고 참가 횟수가 제한되면 수상실적을 쌓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에서는 수상실적이 여전히 큰 평가요소이기에 강제적으로 대회 참가를 제한하고 출결을 관리하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한편 정작 바뀌어야 할 입시제도 개편에 관해서는 관련 기관의 협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KUSF는 ‘체육특기자 입시전형 표준요강(아래 표준요강)’을 3월 중 발표할 예정이지만, 이 요강이 실제 대학입시에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KUSF 관계자는 “표준요강의 내용은 대학의 학생선발제도를 직접적으로 담당하는 대교협과 협의가 이뤄져야 입시 전형에 반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표준요강을 오는 2018학년도부터 점차적으로 시행하겠다는 보도와는 달리 각 단체의 관계자들은 “당장 2018학년도부터 시행하기에는 단체 간 협의가 안 돼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A교수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와 관련해서 교육부·문체부·KUSF·대교협이 함께 추진하는 정책이 현재로서는 없다”며 “단체 간 협의 하에 입시제도가 개편돼야 정책이 효과적으로 운영될 것”이라 말했다.

단체 간의 불협화음으로 가중되는 혼란

각 기관에서 정책을 발표한 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지금까지도 정책시행에 필요한 구체적 계획이 미비한 상태다. 이에 따라 입시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학생, 학부모, 교사들이 기존 입시제도와 새로운 입시제도에 모두 대비해야해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정책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보니 가장 혼란스러운 사람은 체육특기자 준비생이다. 체육특기자 준비생 김모(18)씨는 연이은 체육특기자 입시제도 개정 발표에 대해 당황스럽다며 “입시가 2년 남은 상황에서 갑자기 학업과 운동을 무리하게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한 한모(19)씨는 “수상실적 위주의 전형에 맞춰 대입을 준비했는데 이제 와 2018학년도부터 체육특기자 전형이 바뀔 수도 있다고 하니 막막하다”고 말했다.
학부모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체육특기자 준비생 자녀를 둔 B(41)씨는 “앞으로 전형에 많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니 혼란스럽다”며 “불확실한 입시제도는 운동과 학업을 모두 준비하게 만들어 경제적 부담도 가중시킨다”고 전했다.
한편, 학생을 지도하는 입장인 교사들에게도 구체적인 시행 계획에 대한 안내가 부족한 상황이다. 야구부가 유명한 모 고등학교의 관계자 C씨에게 ‘체육특기자 준비생의 출결 관리’ 등 정책협의회가 발표한 정책에 대해 묻자, C씨는 “새롭게 바뀔 예정인 제도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이 전혀 없다”며 “체육특기자 준비생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입시제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계획 발표가 시급한 상황이다. 

체육특기자 제도는 논란이 함께 따라다니는 만큼 개선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의 정책들은 체육특기자 입시제도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 수면 위에 드러난 문제에만 집중하는 미봉책이다. 이런 미봉책은 입시제도의 예측가능성을 떨어뜨려 수험생들의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다. 체육특기자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타개책이 마련돼야 한다.


 

글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그림 김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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