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들어보지 못했을 병역 면제자들의 이야기

▶▶ 지난 9일, 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검사장에서 수검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위 사진은 본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과 무관하다)

주말 저녁 황금시간대 지상파 TV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의 병영 체험기가 방영된다. 정치인들은 사기진작 명분으로 군부대를 방문해 군복을 입은 채 총을 들고 ‘인증샷’을 남긴다. 대권 주자들은 선거철이 되면 병력 충원 방식, 국방비, 군 복무 기간과 관련해 앞다퉈 공약을 내놓는다. 입대한 남자친구를 둔 여성들의 인터넷 커뮤니티가 따로 존재하고, 구인·구직 사이트의 구인 공고에서는 심심찮게 군필자 우대 문구를 찾아볼 수 있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현실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군대’는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범위를 사회 전체가 아닌 20대 남성으로 좁히면, 그 지분은 더욱 확대된다. 병무청에 의하면,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35만 828명이 보통 신체검사라고 불리는 병역판정검사(아래 신검)에 응했다. 그중 86.8%가량이 1~3급 현역 판정을 받았고, 9%는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즉, 전체 수검자의 96%가량이 병역의 의무를 졌다. 반면, ‘병역 면제’에 해당하는 5급과 6급 판정을 받은 수검자는 전체의 2.4%에 불과했다.                 
물론 단순한 비율은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수적 우세는 다수의 문화를 지배적 위치로 격상시키며, 수적 열세에 처한 집단은 사회적으로 주변적 위치로 밀려난다. 다수의 목소리가 더 크게, 자주 들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했던 ‘병역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우리신문사는 지난 26일, 신촌의 한 스터디 룸에서 좌담회를 가졌다. 패널로는 병역판정검사에서 5급 판정을 받은 대학생 A, B, C씨가 참여했다. 
 

Q. 우선 신검에서 5급 판정을 받은 사유가 궁금하다.
A: 척추가 휘어서 5급 판정을 받게 됐다. 단순히 일상생활에 불편이 있는 정도를 넘어 수술을 필요로 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신검 전에도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고 있기는 했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 상태인지는 실감을 못 했던 것 같다. 아무리 안 좋아도 4급 정도를 받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식 직전에 신검을 받으러 갔는데, 검사 담당 군의관이 서류를 확인하더니 X선 촬영을 다시 해보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다. 입대 후 훈련 등을 겪으면 상태가 더욱 악화될 것 같다는 거였다. 결국 재촬영 결과 척추 상태가 생각보다 안 좋아서 면제 기준을 충족, 5급 판정을 받았다. 사실 그 후로도 계속 휘고 있는 상태다.
B: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양 무릎 전방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 축구선수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인대를 다친 채로 병원에 갔을 때 수술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전문적으로 운동을 하거나 격한 활동을 하기는 힘들 거라는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 때 동일한 부위를 다시 다쳤고, 결국 총 네 차례에 걸쳐서 수술을 받았다. 반복해서 같은 부위를 다치고 수술을 하다 보니 왼쪽 무릎의 연골은 거의 없어졌다. 그 상황을 진단서로 끊어서 제출했더니 5급 판정을 받았다.
C: 나도 마찬가지로 십자인대를 다쳤다. 양측 무릎까지는 아니고 오른쪽 무릎을 여러 번 다쳤다. 처음 십자인대가 파열된 건 중학교 때 농구를 하던 중이었다. 이후에 고등학교 때 두 번째로 인대를 다쳤고, 재수하면서 받은 신검에서 5급 판정이 났다. 나의 경우엔 졸업 이후로도 한 번 더 다쳤는데, 반복해서 같은 쪽 인대를 다치다 보니 오른쪽 무릎의 내측 연골이 거의 없어진 상태였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들은 얘긴데, 십자인대가 워낙 무릎 연골과 가까이 맞닿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십자인대 부상과 연골 손상은 같이 온다고 했다. 현재는 제구실을 못하게 된 연골을 들어내고 이전의 수술 과정에서 뼈에 생긴 구멍을 메웠으며 연골 이식까지 받은 상태다.
 

Q. 신체적 상태로 인해 어떤 어려움이 있나?
B: 일단 운동을 할 수가 없다.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목적으로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게 많이 아쉽다. 또 십자인대라는 부위가 언제 다시 다칠지 모르는 곳이다 보니 평상시에 다른 사람들보다 몇 배 더 조심해야 한다. 남들처럼 뛰어다닐 수 없는 거야 당연하고, 눈이 와서 길이 미끄러운 날엔 외출 자체가 두렵기까지 하다.
A: 척추가 휘어지면서 폐를 누른다. 그래서 남들보다 폐활량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숨 쉬는 데도 불편함이 느껴진다. 특히 오래 앉아있거나 공부해야 하는 상황에는 고통이 심해진다. 또 사람들과 부딪혀서 자세가 자꾸 흐트러질 때도 불편해 만원 지하철처럼 사람의 밀도가 높은 장소는 기피하게 된다. 무거운 물건을 나를 때도 무리가 가서 통증이 있다.
C: 연골이 닳아 있는 상태다 보니 공기 중에 습기가 있으면 무릎이 시리고 통증이 있다. 꼭 비가 오지 않더라도 날이 흐리거나 습하다 싶으면 날씨가 완전히 화창해질 때까지는 계속해서 무릎 쪽이 아프다. 한 시간 이상 서 있으면 무릎이 시리고, 두 시간 이상 서 있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꼭 앉아야 한다. 당연히 무거운 물건을 들기도 힘들다.
B: 몸 상태 때문에 경제 활동에도 당장 제약이 걸린다. 지난 2016년 여름 즈음에 한 달 정도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말에 열두 시간씩 서빙을 하는 일이었는데, 오랫동안 서 있으니까 무릎에 무리가 왔다. 십자인대 파열 같은 문제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으니 사장님도 모르셨다. 그러다가 무릎이 아프다는 걸 아시곤 일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하시더라. 물론 사장님 입장에서는 아픈 사람에게 계속해서 일을 시키기 미안하셨을 거다. 그때 내 신체적 결함이 단순한 아픔을 넘어서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아무리 사무직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육체노동은 언제라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Q. 이런 고충이나 불편에 대해 주변인들이 잘 알고 있는가? 
A. 잘 모른다. 면제자의 고통이나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불편 같은 면은 생각 못 하고 단지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사실만이 조명된다. 동석하신 두 분이 십자인대 파열이라고 하셨는데, 미필 친구 중에선 “나도 십자인대 파열로 면제받고 싶다”, “계단에서 구르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병역 면제받는 건 결국 몸 상태가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사자가 아니다 보니 면제자의 고충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B. 나는 남고 출신이다 보니 주변에 남자가 많다. 그중 상당수가 지금 입대해서 복무 중이거나 전역을 했는데, 심심찮게 부럽다는 소리를 듣는다. 사실 나는 그 친구들이 더 부럽다. 만약 몸 상태가 건강해지는 대신 입대를 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편을 택하겠다. 군대에서 보내는 2년의 세월과 노력, 고통이 적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면제자에게도 고통이 있다는 거다. 군대에 가지 않는 대신 내가 잃어야 했던 부분들을 알고 있다면 그리 가볍게 부러워하진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Q. 병역면제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어떠한가?
A: 면제 받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텐데, 생각보다 군대는 정말 가볍게 다뤄지는 대화 소재이다. ‘군대 언제 가냐’, ‘너는 군대 안 가냐’ 같은 질문이 들어오면 또 그걸 매번 설명해야 한다. 내 신상에 관해 그렇게 길고 자세하게 얘기하는 게 싫을 때도 대답을 해야 한다. 특히 새로운 사람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의지와 관계없이 내 군 면제 사실이 밝혀지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쟤 군대 안 가”라는 말 한마디 때문에 나는 그냥 군 면제자로 인식된다. 학과에서 발행하는 잡지에서도 나를 ‘군대 안가도 되는 놈’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지금은 잡지를 제작한 친구에게 사과를 받고 잘 풀었지만, 일반적으로 군대를 ‘못 가는 사람’이 아닌 ‘안 가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 같다. 
C: 또래들 간의 시선 문제도 있지만 사실 기성세대의 시선도 상당히 큰 정신적 스트레스다. 어른들을 만나게 되면 자주 하시는 질문 중 하나가 ‘군대 다녀왔냐’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상황을 설명하고 군대에 못 간다고 말하곤 하는데, 종종 상처가 되는 말씀을 하는 분들이 계시다. ‘한국 남자로 태어나서 어떻게 군대에 안 갈 수 있냐’, ‘그래서 사람 되겠냐’ 같은 얘기들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아버지가 학군단 출신이시다. 평소에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시다가도 가끔 술을 많이 드신 날이면 늘 내 군대 얘길 꺼내시는데, 그럴 때마다 많이 서운하다. 사실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것도 일종의 편견이자 간접적 압력이라고 생각한다. 
B: 확실히 군 면제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이 썩 좋지는 않다. 연예인이나 정치인 중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한 사람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정작 그들은 잠깐 입방아에 올랐다가 잠잠해지고, 정말 몸이 안 좋아서 면제받은 사람들만 피해 보는 꼴이다. 또한, 첫눈에 봤을 때 티가 나면 모르겠는데, 외관상으로 멀쩡한 사람이 면제라고 하면 궁금증의 대상이 되기 딱 좋다. 당장 나만 해도 덩치가 조금 있는 편이라 처음 만나는 사람이 면제 사실을 알면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Q. 병역 면제 사실로 인해 집단에서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A: 많다. 사회에는 정말 다양한 분류와 집단이 있다. 여자와 남자, 노인과 청년같이 공통된 특성으로 묶을 수 있는 집단이 존재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면제받은 남자는 상당히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성인 남성의 대부분이 공유하는 군 복무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C: 대학생활을 하면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친구들이 하나둘 입대하다 보면 나중에는 정말 남자 중에는 면제자들끼리만 남게 된다. 수업에 가도 동기들은 여자밖에 없고...
B. 나 같은 경우에는 함께 어울리던 무리에 속한 친구들이 전역해 술자리를 가질 일이 있었다. 대화 주제가 군대 생활, 군대에서의 경험담으로 흘러갔는데, 그 자리에 군 면제자가 나를 포함해 두 명이었다. 당장 공감대가 전혀 형성되질 않으니까 가만히 앉아서 듣는 것 이외에 우리 둘은 대화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남자끼리 있을 때 느끼는 이런 소외감이 한시적인 거라면 모르겠는데, 당장 주변의 어른들만 봐도 모이면 군대 얘길 한다. 결국 나이가 든 후까지도 그 소외감은 계속되는 것 같다.
 

Q. 지난 2016년, 당시 새누리당 소속 국회 국방위원장 김영우 의원이 군 면제자를 대상으로 일정량의 세금을 부과하자는 ‘병역세’ 도입을 주장해 사회적 파장을 발생시켰다. 병역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A. 솔직히 말해서 나한테 내라고 하면 내긴 할 것 같다. 그런데 적절한 정책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 경우엔 그래도 비교적 경제 상황이 나은 편이지만, 면제를 받은 사람 중에는 정말 형편이 좋지 않거나 이미 치료비와 수술비 등으로 막대한 금액을 지출한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에게까지 병역 면제의 대가를 금전적으로 청구한다면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가 아닐까 싶다.
C. 병역세 얘기가 애초에 등장한 계기는 군 가산점제 폐지라고 알고 있다. 병역 복무자들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제도가 폐지되자 면제자에게 일정 정도의 금전적 의무를 부과하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이다. 나도 병역세 도입이 아예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병역세를 부과하는 국가도 있다. 그러나 병역세를 내야 하는 대상을 정하는 과정에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가령 신체적 사유 외에 경제적 사정이라든지 부양 의무 등으로 인해 병역 감면을 받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B. 당장 나 같은 경우에는 보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무릎에 쏟은 금액만 합쳐도 족히 수천만 원을 넘는다. 단적으로 말해서 돈도 잃고 건강도 잃은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까지 별도로 내라고 하면 조금 부담이 될 것 같다. 사실상 국가에서 이중으로 부담을 지우는 게 아닌가 싶다. 
A. 정책의 초점을 면제자들이 아닌 현역 입영 대상자들에게 맞추는 것도 나쁘지 않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사실 군 면제가 부러움이나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구식 군대 문화나 군인에 대한 열악한 처우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당장 병역세를 걷기보다도 일단 군대에 간 사람들에게 혜택을 줘야 하지 않겠나. 군 복무로 인한 경력단절도 개선해줘야 할 테고 사병들의 복지 수준도 높여줘야 한다. 그래서 현역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손해를 줄여주는 게 더 시급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B. 만약 병역세가 시행된다면 사실상 군 면제에 대한 인식 개선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더 악화됐으면 악화됐지 나아지진 않을 것이다. 사실상 군대에 가지 않는 대가로 세금을 납부하는 모양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면제자를 보는 시선은 더욱 고까워질 수밖에 없다. 면제자의 부담만 커지고 딱히 현역 복무자의 애로사항이라든지 사회적 박탈감을 해소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면제자로서 주변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솔직히 말해서 이 기사가 지면에 실린다면 신문 독자 중에서도 우리를 비하하고 매도하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실제로 전에는 국회의원 아들이냐는 소리까지 들어봤다. 그런데 사실 그런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상처가 된다. 군대에 안 가고 싶어서 안 간 것도 아니고, 그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른 것도 아니다.
C: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가 군인들의 희생과 노고를 폄하하거나 무시하려는 게 전혀 아니다. 우리도 군인 친구, 군인 형제를 가진 사람들이고 늘 군인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다. 그저 사회 속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B. 그렇다고 해서 면제자들을 시혜적 시선이나 동정 어린 눈으로 봐달라는 것 역시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도 나름의 고민과 고충, 포기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감안하고 면제자들을 있는 그대로의 개인들로 봐줬으면 한다.

우리가 만난 이들은 병역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울지언정 신체적 고통과 경제적 부담, 사회적 시선까지 면제받지는 못했다. 기사의 제목이 “나는 면제받지 못했다”고 역설하는 이유다. 병역판정검사와 관계없이 모든 이들이 부당한 대상화와 불이익으로부터 면제받는 사회를 꿈꿔본다.
(*기자는 지난 2015년 실시한 병역판정검사에서 우안 광각 및 망막박리를 사유로 5급을 판정받았다)

 

 

글 송경모 기자
songciety@yonsei.ac.kr
사진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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