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망각한 행정개혁, 심히 우려스러워’

편기식 (행정·15)

최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이하 ‘행정고시’) 폐지 발언으로 인해 관료제 개혁방향이 다시 여론의 관심을 받게 됐다. 문 전 대표는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과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을 후자로 단일화하고, 그중 성과가 뛰어난 집단을 정책기획과정에 참여시키자고 주장한다.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의 특권의식이 너무나 심각해 공무원 사회에서 계급의식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행정 관료가 가지지 못하는 직무전문성을 보충하기 위해 개방형 인사제도를 실효성 있게 운영하여 정부가 급변하는 행정환경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공무원 사회에 특권의식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행정의 전문성을 보충하자는 의지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한 채용제도의 변화를 통해 관료제 사회를 개혁하자는 주장은 너무나 공허한 것이다.
첫째, 행정고시의 폐지는 새로운 특권층을 등장시킬 가능성이 크다. 7급 공무원에서 고속승진한 공무원들이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을 대체해 폐쇄적으로 변질되는 경우에는 현재와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즉 참신한 행정 식견을 갖춘 아이디어 맨에서 현재의 지위에 안주하는 탁상행정 맨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특히 관(官) 위주의 한국 사회에서 고위공무원이 갖는 사회적 지위를 고려한다면 이들은 언제든지 이미 성취한 것에 안주하는 집단으로 바뀔 수 있다. 사회적으로 한정된 지위경쟁에서 승리한 자들일수록 폐쇄적이며 성과에 대한 반응성 역시 떨어지기 마련이다.
둘째, 행정고시의 폐지가 공무원 사회의 전문성 제고로 이어진다는 사고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 7급 공무원들의 사무와 5급 공무원들의 사무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7급 공무원들이 담당하는 행정사무는 주로 실무에서 행정집행을 하는 데 맞춰져 있다. 반면 5급 공무원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의 행정사무는 상당수 행정기획능력에 초점을 둔다. 7급 공무원 때의 업무실적이 5급 공무원으로 진급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각 직급에서 요구하는 전문성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두 전문성의 개념이 유사한 측면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행정고시 시험 자체가 정책기획능력을 주로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행정고시를 유지하는 것이 고위공무원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유리할 것이라 예상된다.        
인사채용제도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에만 치중해서는 안 된다. 인사채용제도를 개혁함으로써 현재 공무원 사회의 적폐를 한 번에 해소할 수는 없다. 더욱 본질적인 것은 공직봉사동기가 투철한 인재의 선발이며, 그들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구체적 방식이다. 예컨대 아직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공무원 면접과정의 체계화, 합리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교육훈련을 통해 직무에 맞는 능력을 꾸준히 키워줄 수 있는 여건 또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직급에 관계없이 뛰어난 행정 식견을 수용할 수 있는 투명한 행정문화가 먼저 정착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문재인 전 대표의 행정고시 폐지 발언은 본질을 잊어버린 행정 개혁적 사고를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관료제 사회와 같이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혀있고 장기간에 걸친 체질개선이 요구되는 개혁일수록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합의된 시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때 정권교체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개혁은 도중에 난파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행정 각 부처의 명칭이 각 정권의 입맛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은 이러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행정개혁의 연속성과 안정성을 위해서는 충분한 토론을 통해 상대편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서로 합리적 숙의를 통해 관료제 개혁의 본질을 고려할 때, 행정조직 개혁이 제대로 착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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