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교 교수 (우리대학교 국문학과)

윤동주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시인이 1945년 2월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고 같은 해 8월에 조선이 광복을 맞이한 이후, 윤동주는 한국인들이 가장 아끼는 시인으로 자리잡아 왔다. 연희 전문 동기 강처중과 후배 정병욱이 그의 유품과 유고를 보관하여 후세에 전달함으로써 그를 보듬는 마음이 물질적 상관물을 확보하여 오래 지속하고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정병욱의 유고 보관의 사연이 극적이어서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잘 알다시피 윤동주는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된 내력에 생체 실험을 당했다는 짐작이 얹혀 일제에 의한 민족적 수난의 상징이 되었다. 윤동주의 불운한 생애는 곧바로 한국인의 기구한 운명과 하나로 맞물렸다. 게다가 그의 시들은 한결같이 진솔한 구도의 심정을 담아 자주 독립을 향한 한국인의 애틋한 염원에 바로 연결되었다. 그렇기에 해방과 더불어 그의 시가 마룻장을 뚫고 햇볕을 보았을 때 그는 곧바로 민족시인이라는 휘장을 달게 되었다.
민족시인은 동시에 일제에 항거한 저항시인이라는 가정을 불러온다. 하지만 그의 시에는 항거의 메시지보다는 자기성찰의 되새김이 저변을 이루고 있었다. 때문에 윤동주를 그저 순수시인이라고 부르고자 하는 의견이 발생하였다. 그러나 그런 규정은 윤동주의 비극적 운명과 시 사이에 교량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 두 견해는 아주 오랫동안 대립하였다. 이 시기의 윤동주 수용을 ‘사건으로서의 윤동주’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리한 논쟁이 탈출구를 맞이한 것은 순결성의 자세가 그 자체로서 악에 대한 거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오르면서였다. 독립과 자유라는 말을 직설하지 않아도 그 자세가 이미 일제의 강점과 탄압을 추문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그때부터 윤동주에 대한 수용은 ‘사람으로서의 윤동주’로 넘어간다. 이제 윤동주의 행적 하나하나, 낱낱의 글들이, 어떤 내용을 담았건 모두 소중한 보물로 간주되기 시작한다. 하여, 윤동주에 대한 연구 마당이 크게 확장되게 되었다. 『원본대조 윤동주 전집』(심원섭 외)에 이어,『윤동주 평전』(송우혜)이 나왔고, 필사본 윤동주 시집 사진판도 출간되었다. 『윤동주 어휘사전』(조재수), 『윤동주 깊이 읽기』(권오만),  『정본 윤동주 전집 원전연구』(홍장학), 『처럼 – 시로 만나는 윤동주』(김응교)등의 연구서도 급증하였다. 뿐만 아니라 윤동주의 삶과 글을 제재로 한 문화적 표현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구효서의 『동주』를 비롯, 윤동주를 소재로 여러 권의 소설들이 씌어졌고, 표재순 연출의 연극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조진원 교수 등이 만든 『오월의 별 헤는 밤』, 지난 해 많은 관객을 울린 영화, 『동주』가 제작되었다. 지금도 가무극 『달을 쏘다』가 공연 중이다. 윤동주의 시를 가사로 쓴 가요들도 속출하고 있다. 윤동주의 6촌 형제인 가수 윤형주는 동주의 시를 함부로 다루지 말라는 부친의 엄명으로 노래로 만들 생각을 감히 하지 못했다. 윤동주를 받아들이는 태도가 이렇게도 달라진 것이다.
윤동주를 느끼는 감상의 영역도 크게 확장되었다. 연세대 핀슨홀의 ‘윤동주 기념관’, 윤동주가 수학한 일본 도시샤 대학의 윤동주 시비도 그 사례거니와 윤동주가 하숙한 종로와 윤동주의 유고가 간직되었던 광양에서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윤동주를 체화하기 위해 윤동주의 고향과 무덤을 방문하는 행사도 늘었다. 올해로 ‘사람으로서의 윤동주’ 수용은 절정에 달할 것이다. 윤동주의 모든 것들이 해석되고 기념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란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사람 윤동주에 대한 열광은 순결했던 한 여린 청년의 삶과 예술에 대한 해석을 크게 심화시킨 게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윤동주를 미화하고 신비화하고자 하는 충동들도 범람하게 하였다. 그리고 신비화하는 순간 그는 인간의 수준을 떠난다. 그런데 우리는 오류와 번민에 성실히 대답하고자 하는 인간 윤동주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있지만, 신화화된 인물에게서는 그저 압도감만을 가질 것이다.
아마도 ‘텍스트로서의 윤동주’로 넘어가야 할 때가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텍스트는 글들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남긴 모든 것들은 텍스트들이다. 그런데 텍스트로서 이해한다는 것은 두 가지 점이 유다르다. 하나는 윤동주에 대한 해석이 텍스트에 엄격하게 근거한다는 것이다. 윤동주에 대한 많은 문화적 표현물들은 근거의 진실에 소홀한 면이 없지 않았다.
 또 한 가지, 텍스트는 언제나 상관성 하에서 이해된다는 것이다. 윤동주가 단독으로 기림받고 향수되기보다, 친지와 친구를 비롯한 수많은 동시대인들의 삶, 그리고 오늘의 우리의 삶, 그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소설, 시, 사상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들, 그 모든 것들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이해될 때 윤동주는 민족시인의 경계를 넘어 대문자 시인으로서 문학과 인간 정신의 거대한 진화적 운동 속에서 그윽히 살아 숨쉬게 될 것이다. 그럴 수 있을 만큼 여전히 해독되지 않은 윤동주의 텍스트들이 더미로 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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