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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안심'할 수 없는 서대문구 여성'안심'귀갓길
  • 박혜지 기자, 이수빈 기자
  • 승인 2017.03.04 21:49
  • 호수 1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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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길을 걷다가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낯선 발소리에 걸음을 빨리하는 것. 또 어두운 길 저편에서 마주 보고 걸어오던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옆을 지나쳤을 때의 안도감. 이는 여자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일이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아래 여성범죄)는 주로 으슥한 밤길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늦은 밤에 귀가하는 여성들은 불안감에 시달리곤 한다. 이런 불안감을 해소하고 지역사회 내 위험한 밤길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아래 지자체)는 ‘여성안심귀갓길’을 만드는 등 여러 조치를 취하고 있다.


당신의 밤길이 안전하도록

여성안심귀갓길은 밤길 안전을 위해 집중 순찰 코스로 선정된 길이다. 지난 2013년 충남지방경찰청이 국내 최초로 여성안심귀갓길을 만든 후 지자체를 중심으로 이 사업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서대문구 또한 최근 이런 흐름에 동참했다. 서대문구의 여성안심귀갓길은 ▲잦은 순찰 ▲위치번호가 표시된 표지판 ▲자동 점멸 경광등(아래 경광등) 3가지 특징을 가진다.
주민들로부터 가장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는 여성안심귀갓길의 치안 유지 방법은 잦은 순찰이다. 서대문 경찰서 신촌 지구대 윤길성 제1팀장은 “새벽 1시부터 3시 사이에는 지역 내 다른 곳에서 신고가 접수되지 않는 이상 한 곳에 적어도 한 대의 경찰차가 순찰을 다닌다”고 말했다. 경남대 심리학과 고재흥 교수는 “범죄자 입장에서 순찰차가 골목을 도는 것만큼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은 없을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봉원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파크연립에 이르는 약 400m의 여성안심귀갓길 인근 주민 윤성훈(45)씨는 “이 주변에 순찰차가 정말 자주 다닌다”며 “나는 여자가 아닌데도 새벽에 귀가하는 날이면 순찰차가 자주 보이는 것만큼 안심되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은 또한 관내 모든 여성안심귀갓길에 위치 번호가 표시된 표지판을 설치했다. 위치번호가 표시된 표지판은 범죄를 예방하는 동시에 범죄 발생 시 경찰의 출동을 용이하게 한다. 피해자가 경찰에 위치번호를 말하면 보다 쉽게 경찰이 범죄 현장에 올 수 있는 것이다.
몇몇 여성안심귀갓길의 표지판 옆에는 경광등도 설치돼 있다. 이는 보행자에게는 심리적 안정을, 범죄자에게는 경각심을 주는 용도이다. 경광등은 저녁 6시 경부터 새벽 6시 경까지 계속 반짝인다. 고 교수는 “자동으로 점멸하는 경광등이 실제로 범죄자를 긴장하게 해 우범 확률을 낮출 수 있다”며 “경광등이 범죄자의 심리 위축에 유효하다”고 말했다. 주로 새벽에 여성안심귀갓길을 이용한다는 신영숙(55)씨 역시 “새벽에 저 경광등을 보면 특별한 치안 관리를 받는 것 같아 안심 된다”고 말했다.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표지판

그렇다면 서대문구 내 여성안심귀갓길은 예상했던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서대문구 내 총 17개 구간의 여성안심귀갓길 중 우리대학교에서 가까운 여성안심귀갓길에 기자가 직접 가봤다. 기자가 간 곳은 ▲신촌 치안센터에서 창광교회 ▲봉원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파크연립 ▲서대문우체국 버스정류장에서 아만도 식당 3개의 구간이다. 각 여성안심귀갓길에는 표지판이 1개씩 설치돼 있었다. 이중에서 경광등은 서대문우체국 버스정류장에서 아만도 식당 초입에 위치한 표지판에만 부착돼 있었다.
위치번호가 표시된 표지판과 경광등은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 발생 시 피해자에게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현재 서대문구 여성안심귀갓길에 설치된 표지판은 보행자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것과 위험한 골목 안이 아닌 다른 곳에 위치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표지판이 보행자의 시야에서 벗어나면, 범죄 발생 시 보행자는 표지판의 위치번호를 파악하기 어렵다. 실제로 신촌 치안센터에서 창광교회에 이르는 여성안심귀갓길에는 표지판이 GS25 신촌파크점 앞 전봇대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길 인근 아남 오피스텔의 주민 강지현(27)씨는 “일상에서도 보지 못하는 표지판을 범죄가 일어난 상황에서 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한 봉원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파크연립에 이르는 여성안심귀갓길에는 가로등 높은 곳에 위치한 표지판이 우거진 나뭇가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전봇대에 설치된 표지판의 위치가 높아 보행자에게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표지판이 비교적 덜 위험한 곳에 설치돼 있다는 의견도 있다. 서대문우체국 버스정류장에서 아만도 식당에 이르는 여성안심귀갓길에는 해당 구간 초입에 표지판이 위치해 있다. 이 인근에서 하숙을 하는 이모씨는 “사실 골목의 초입보다 골목 안쪽이 더 위험하다”며 “안쪽에는 표지판이 없어 정말 위험할 때 위치 번호를 이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서대문구청은 “앞으로 표지판 설치를 더욱 확대할 예정”이라 밝혔다.

우리집 앞이 여성안심귀갓길이라니?!

결국, 여성안심귀갓길이 제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주민들이 해당 길에 대해 인지하고 표지판의 위치번호를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직 서대문구 주민들은 여성안심귀갓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서대문우체국 버스정류장에서 아만도 식당 구간은 자취촌 근처에 위치해있지만, 이를 아는 주민은 많지 않았다. 우리대학교 서문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는 이다은(언홍영·16)씨는 “여성안심귀갓길이 있는지 몰랐고 이 주변에 사는 친구들도 이 길에 대해 잘 모른다”며 “이렇게 인지도가 낮은 상황에서는 범죄 감소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안심귀갓길에 대한 홍보의 부족이 주민들의 오해를 야기하기도 했다. 여성안심귀갓길을 우범지대라고 오해한 주민들이 오히려 여성안심귀갓길을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서문 인근 여성안심귀갓길에 표지판이 생기면서 자취방의 위치를 바꾼 사례가 있다. 지난 2016년 1월 경 서문 인근에 자녀의 자취방을 계약했다는 김경숙(54)씨는 “몇 달 전 자취방 근처에 왔다가 우연히 표지판을 발견한 뒤 이 근처가 우범지역이 아닌지 걱정부터 됐다”며 “결국 이번 학기에는 서문에서 동문 근처로 자취방을 옮겼다”고 말했다.
부경대 행정학과 김은희 교수는 “치안 정책의 특성상 서대문구청이 앞으로 여성안심귀갓길을 어떻게 홍보하느냐가 정책의 효과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안심귀갓길보다 위험한 길도 많다

한편 일각에서는 서대문구의 여성안심귀갓길 선정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현재 서대문구의 여성안심귀갓길은 우범지대의 여부가 아니라 여성이 많이 다니는 길인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선정된다. 서대문구청 여성가족과 우자윤 주무관은 “여성이 많이 주거하는 건물을 중심으로 한 주변 길을 여성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고 본다”며 “이 길들이 주로 여성안심귀갓길로 선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현재의 여성안심귀갓길은 인적이 드문 곳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대학교 북문 인근의 오피스텔에 거주하고 있는 이혜린(25)씨는 “여성안심귀갓길로 선정된 곳보다 인적이 드물고 가로등이 적은 길이 많다”며 “그런 곳의 치안을 더 강화하는 것이 범죄 예방에 더 도움이 될 거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과 속초시, 성북구에서는 우범지대와 인적이 드문 곳을 여성안심귀갓길로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성북구의 여성안심귀갓길을 자주 이용하는 임희수(22)씨는 “우범지대를 다니지만 골목을 돌면 항상 순찰차가 있기 때문에 큰 걱정은 되지 않는다”며 “지자체가 범죄가 실제로 많이 일어나는 곳을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있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현재 서대문구의 여성안심귀갓길은 주민의 심리적 안정과 범죄자의 심리적 위축을 도모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정책의 인지도를 높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또한, 그 영역이 우범지대까지 확대된다면 정책의 효과가 더 극대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사진 이수빈 기자
nunnunanna@yonsei.ac.kr

박혜지 기자, 이수빈 기자  pphhjj6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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