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 길거리 포교 르포

신촌의 빨간 잠수경 앞은 매일 수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 그리고 누군가 혼자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 인파 속을 살피는 수상한 눈초리. 그들을 직접 만나봤다.
 

수상한 설문조사
 

그들은 공모전을 준비하는 연합동아리의 회원들이며, 출품할 동화의 캐릭터를 설정하기 위해 거리에 나와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했다. 거리 인터뷰를 한 사람 중 2%를 선정해 2차 인터뷰를 진행할 것이라며 그들은 기자의 전화번호를 가져갔다.

이틀 뒤 기자는 2차 인터뷰에 응해달라는 전화를 받았고, 다음날 신촌의 한 카페에서 그들을 만났다. 20대가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동화를 만든다며 그들은 캐릭터를 구체화한다는 명목으로 기자에게 사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가족, 친구에 관한 이야기가 종교, 그리고 신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신에 관한 이야기는 곧 이단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고 그들의 입에서 △△교가 언급됐다.
 

교인1 : 인생의 롤모델은?
기자 :  (고민)
교인1 : 나는 교회 목사. 기독교에는 이단이 많아 어떤 교회를 다닐지 고민이 많았는데 목사가 나를 바로잡아줬다.
기자 : 이단이라면?
교인1 : 예를 들어 사람들은 △△교가 이단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만 듣고 △△교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인은 이러한 잘못된 사실을 반박하며 시위를 한다.
기자 : 당신은 △△교인?
교인1 : 아니다.

 

2차 인터뷰가 끝나자 그들은 기자가 본인의 자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를 알아봤다고 말했다. 그들은 개인이 의식하는 본인의 모습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며 기자의 무의식을 알아보는 그림 심리 테스트를 추가로 진행했다. 그들은 해당 그림 테스트가 중앙대 심리학과 장○○ 교수가 대표직을 맡고 있는 단체와 협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장 교수와 친분이 있고 교수가 직접 무료로 상세 풀이를 해줄 수 있다며 3차 인터뷰 일정을 잡았다. 그러나 기자가 찾아본 결과 중앙대 심리학과에 장○○이란 교수는 없었다.

3차 인터뷰에 장 교수는 나오지 않았고, 대신 장 교수의 조교라는 사람(아래 조교)이 나왔다. 기자는 조교에게서 그림에 대한 상세 풀이를 듣지 못했다. 본인을 △△교인이라 밝힌 조교는 대부분 시간을 종교 이야기에 할애했다.

 

교인2 :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 상황은 역대 최악이다. 기독교의 각 교파에서 많은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대표적인 교파가 7개에 이단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할까? 사람들은 모른다. 깨어있지 않으면 무서운 일을 당한다.
기자 :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교파를 믿고 있나?
교인2 : 나는 △△교. 다른 교파에는 제대로 된 말씀이 없다.
(중략)
기자 : 그림 심리 테스트 풀이를 마저 해 달라.
교인2 : 결론적으로 당신의 문제점들은 신앙을 통해 고쳐야한다.
기자 : 결론은 신앙인가?
교인2 : 신앙인에게는 신앙을 권유한다.
기자 : 비신앙인에게는?
교인2 : 신앙을 권유한다. 그 과정이 오래 걸릴 뿐이다.

 

남의 탈을 쓰다
 

이러한 포교활동은 주로 신촌과 같이 번화한 대학가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박인아(간호·15)씨는 “신촌 유플렉스 앞 빨간 잠수경 부근에서 포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것 같다”며 “신촌 거리를 지나다니다 보면 하루에 두 번 이상 설문조사 요청을 받은 적도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길거리 설문조사는 포교활동을 하는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며, 이로 인한 피해사례는 생각보다 많다.

1차적 피해는 이들이 자신의 신분과 목적을 위장해 접근하면서 발생한다. 연세대에 재학 중인 정지인(국문·15)씨는 “길거리 설문조사로 위장한 포교활동에 당한 적이 있는데 당시 그들은 자신을 대외활동을 하는 대학생이라고 밝혔다”며 “스스로도 대외활동 경험이 있기에 비슷한 처지의 대학생을 도와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일반인들이 의심을 사지 않을만한 신분으로 위장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들의 수법에 속는 것이다. 이들이 신분과 목적을 숨긴 채 접근하는 이유에 대해 한 △△교인은 “△△교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체를 드러내면 아무도 우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교의 말씀이 진리라는 걸 조금이라도 보여주기 위해서는 ‘모략’을 쓸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성경 구절 중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로마서 3:7)를 △△교가 신분을 감추는 근거로 들었다.

한편 이들은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사칭하기도 해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장○○ 교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 들은 중앙대 심리학과 측은 “중앙대 심리학과를 사칭하며 설문조사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니 각별히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연세대도 예외가 아니다. 최근 연세대 심리학과 홈페이지에는 ‘연세대 심리학과 명의 사칭 주의’라는 제목의 공지가 올라왔다. 해당 공지는 ‘사칭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종교 단체에서 교수님 성함, 연구주제와 같은 구체적인 상황들을 언급하며 심리테스트, 실험 설문지의 명목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한다며 ‘연세대 심리학과와 연세심리건강센터에서는 영성, 종교적 믿음과 같은 주제로 실험 또는 상담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연세대 심리학과 관계자는 “교외 심리테스트와 관련해서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며 “주로 그림 테스트 결과 분석을 빙자해 특정 단체에서 학생들에게 접근해 종교적인 활동을 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해당 관계자는 “실제로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학부생과 대학원생 심리 설문조사가 이로 인해 타격을 입어 불편하다”고 전했다. 길거리 포교활동의 사칭이 1차적인 피해뿐 아니라 2차 피해로까지 번지는 것이다.
 

나는 안 속는다고?
 

사실 그들의 수법은 조금만 자세히 살펴보면 그 허술함이 드러나지만 마냥 안심하고 웃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방황하는 대학생에게 심리 상담, 고민 상담은 솔깃한 제안이기 때문이다.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겐 달콤한 유혹이 된다. 정씨는 “길거리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며칠 뒤 같은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교수님께서 관심을 가지셨다면서 상담을 권유하더라”며 “개인적으로 한창 혼란스럽던 시기여서 그런지 심리 상담이라는 것이 매혹적으로 다가왔다”고 전했다. 몇 번의 만남 후 그들은 정씨에게 ‘성경 구절 프로그램’을 권유했고, 다행히 정씨는 이상함을 느끼고 연락을 끊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정씨처럼 운이 좋진 않다. 연세대 A씨는 홍대의 길가에서 낯선 여성을 만나 ‘인상이 순수해 보인다’, ‘너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잘하지 못한다’, ‘외로움을 많이 느낄 것이다’ 등의 이야기를 듣고 해당 여성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A씨는 “카페에서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서러워져 울고 말았다”며 “그들은 내게 조상님께 ‘정성’을 드릴 것을 권유했다”고 밝혔다. 이후 A씨는 수차례 해당 여성과 그 일행을 만나 ‘복이 된다’는 이유로 설거지, 다림질 등의 노동을 착취당했다.

한편 부산의 한 대학에 다니는 ㅎ모씨는 이와 비슷한 길거리 포교활동으로 금전적인 손해까지 입었다. ㅎ모씨는 “과 사람들 사이에서 ‘운세 잘 봐주는 언니’가 있다고 해서 만나게 됐는데 나중엔 고민 상담을 이유로 ‘연구소’로 데려갔다”며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며 500만원을 내게 했다”고 밝혔다. ㅎ모씨는 “처음엔 스스로도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지만 매일 2시간에서 5시간 정도를 설득하다 보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대학생들을 노리는 이러한 심리적 접근은 심리가 유행하던 수년 전부터 자리 잡아 온 고전 수법이다. 상대적으로 ‘심리’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 심리테스트, 고민 상담 등의 접근에 약한 것이다. 연세대 상담·코칭지원센터 책임연구원 박철형 박사는 “길거리에서 심리상담을 해준다는 말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싶거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며 “이런 경우 미루지 말고 학교 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상담을 받는 등 지혜롭게 대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박 박사는 “학교와 같은 기관에선 이와 같은 길거리 심리 상담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칭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결국 학교에선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는 등 학생들의 심리적 건강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지만, 당장 학교 담장만 벗어나도 학생들은 위험에 노출되는 실정이다. 위의 사례처럼 위기감에 빠진 대학생들을 노리는 무분별한 포교활동은 실질적인 금전 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학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신촌 유플렉스 앞에서 행인들에게 설문조사를 요청하는 사람들


잇따른 피해사례...법적 장치는?
 

그렇다면 길거리 포교활동을 저지할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없을까? 현재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명명하고 있다. 타인의 종교 활동에 대해 별다른 제재를 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관계자는 “학과를 사칭하며 학생들을 상대로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금전적인 피해를 본 것이 아니므로 법적 조치를 취하기 애매하다”며 “신고를 하려고 해도 피해를 본 당사자가 해야 하므로 학과 차원에서는 홈페이지에 주의 안내문을 올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나종갑 교수(법과대·지적재산권)는 “이와 같은 사칭은 경범죄처벌법상 ‘관명사칭’에 해당할 수 있으나, 해당 관명을 사용해야 하고, 심리학과 학생을 사칭한 것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나 교수는 “다만 금전 기부를 강요하는 등의 행위를 했을 경우 사기 미수나 사기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아래와 같은 상황에선 포교행위가 경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경범죄의 종류

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1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科料)의 형으로 처벌한다.

7. (관명사칭 등) 국내외의 공직(公職), 계급, 훈장, 학위 또는 그 밖에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명칭이나 칭호 등을 거짓으로 꾸며 대거나 자격이 없으면서 법령에 따라 정하여진 제복, 훈장, 기장 또는 기념장(記念章), 그 밖의 표장(標章) 또는 이와 비슷한 것을 사용한 사람

14. (단체가입 강요) 싫다고 하는데도 되풀이하여 단체 가입을 억지로 강요한 사람

41. (지속적 괴롭힘) 상대방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지속적으로 접근을 시도하여 면회 또는 교제를 요구하거나 지켜보기, 따라다니기, 잠복하여 기다리기 등의 행위를 반복하여 하는 사람

기타행위에도 해당할 수 있음.

 

그러나 결국 길거리 포교활동 자체를 금지하는 법령은 없어 학생들은 스스로 조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학생들이 입은 피해는 생각보다 심각하고, 이에 대한 조치는 마땅히 필요하다. 수상한 길거리 포교는 학생들의 트라우마와 불안감을 양분으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금전적인 피해, 물리적인 피해를 넘어 대학생들이 입은 정신적 충격은 보상받을 수 없고,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흔들리는 청춘을 노리는 수상한 그들. 그들의 친절한 웃음 뒤엔 그림자가 숨어있다.

 

 

 글 조승원 기자 
jennyjotw@yonsei.ac.kr

이지훈 기자 
chuchu@yonsei.ac.kr

이혜인 기자 
hyeine@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하은진 기자
so_havely@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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