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앞 지하보도에서 청년 문화 시작을 엿보다

지난 여름, 기자는 연세대 정문 앞 지하보도가 문화예술인과 청년 창업인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재단장 이후에도 지하계단을 타고 내려가야만 하는 왠지 모를 으슥함(?)이 감도는 이 공간에 별로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연세대 정문 바로 문턱까지 와서 일부러 기웃거리지 않고서야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2월의 어느 날, 기자는 이런 낯선 공간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궁금증을 가득 안고 지하계단을 향해 한 발짝 걸음을 옮겼다.

 

키워드는 ‘청년’, ‘문화’, ‘공감’

 

지난 2월 19일 낮 4시부터 밤 9시까지 단 하루 간 창작놀이센터와 창천문화공원에서 진행된 신촌 소셜아트 프로젝트는 ‘신촌만의 청년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취지로 창작놀이센터 공동운영단과 젊은 예술가들이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두 함께 맡은 파일럿 프로젝트다. 이번 프로젝트는 ▲‘청년, 나누다’의 참여예술 ▲‘청년, 피우다’의 공연예술 ▲‘청년, 채우다’의 시각예술 ▲아티스트와의 토크로 구성돼 ▲창작놀이센터 운영단 주최 ▲소셜아트플래툰 및 청년예술가네트워크 기획 및 운영 ▲서대문구청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프로젝트 총괄 감독을 맡은 청년예술가네트워크 송상훈 대표는 “그동안 창작놀이센터가 청년 문화 공간으로서 활발하게 기능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는데, 이번을 계기로 이곳의 문화적 정체성을 되찾고 싶다”고 전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공간 활용이 남달랐다. 창작놀이센터에서는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이 펼쳐졌고, 인근 창천문화공원에도 참여형 예술이 설치돼 새로운 청년 문화예술 기지의 탄생 가능성을 보여줬다. 서대문구청 지역활성화과 강한 주무관은 “신촌에 청년 문화, 예술 등의 담론을 어떻게 다시 형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며 “연세로 이외에도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청년 문화 공간들을 다양하게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젊은 예술가들이 각 작품에 녹여낸 청년 사회 및 시국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낮 4시~밤 9시, 시각예술 ‘청년 채우다’ : 가볍지만은 않은 우리 현실

 

‘청년, 채우다’는 ▲집무실 ▲방 ▲우리들의 꽃밭 ▲내 마음대로 사진관 ▲마을지도 그리기 : 신촌 등으로 기획됐다. 일상적 소재로 구성된 각 작품에는 사회에 대한 예술가들의 예리한 문제의식이 담겨있었다. 겹겹의 커튼이 걸린 방에서는 스크린 속 뉴스 영상과 책상 위 컴퓨터 화면 속 드라마 『시크릿 가든』을 대비시키며 대통령 집무실을 묘사했고, ‘거울 방’은 의자에 앉으면 세월호가 거울에 반사돼 나타나 시국에 대한 비판을 담았다. 한편, 무료로 면접 사진을 찍어주는 ‘내 마음대로 사진관’은 취업 시장에서 개성을 잃은 청년들의 모습을 표현하며 눈길을 끌었다. 방문객에게 자화상을 그려주는 ‘우리들의 꽃밭’ 신주욱 작가는 “현 시국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사실 그 존재만으로 ‘꽃’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내 마음대로 사진관’ 김혁진 대표는 “개인의 표정이나 얼굴형 등이 강요되는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 낮 5시~저녁 6시, 참여예술 ‘청년, 나누다’ : 따끈따끈한 고구마와 함께 스프-라이트!

창천문화공원에서 진행된 ‘청년, 나누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공원 한 가운데에 난로와 의자 그리고 고구마 찌는 기계를 설치한 것이다. 작품을 준비한 소셜아트플래툰 문화기획자 이은지(25)씨는 “고구가 백만 개는 먹은 듯한 기분으로 살아가는 청년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궂은 날씨에도 신촌 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이 이색적인 광경에 하나둘 다가왔고,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사이다를 들이켰다. 자격증 시험을 통과했다는 이야기, 요새 너무 게을러서 고민이라는 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빗속으로 들려왔다. 기자 역시 최근 겪은 ‘왕고구마’ 사연을 꺼내며 빗속에서의 낭만을 즐겼다. 본 작품에 참여한 박해진(31)씨는 “명쾌한 해결책을 얻진 못했지만, 고민 자체를 나눈 것만으로도 큰 힘이 난다”고 말했다.

 

# 저녁 6시 30분~8시, 공연예술 ‘청년, 피우다’ :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야

‘청년, 피우다’는 ▲창작무용인 ‘소명’ ▲대중음악인 ‘잘 될 거야’ ▲연극인 ‘Not a “Good Doctor”’ 등으로 이뤄졌다. 앞 시간대 시각예술 작품들이 전시됐던 공간을 활용해 또 다른 예술가들의 공연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시각예술 작품인 ‘집무실’의 각종 뉴스 영상과 음악 그리고 아른거리는 흰 커튼들은 섬세한 무용과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긴장감 속 경쾌함을 선사했다. 한편, 다른 방에서 진행된 극사실주의 연극은 갑과 을 사이의 ‘막장 갑질’ 연기를 선보이며 왠지 모를 익숙함으로 관객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소명’ 김혜연 무용수는 “혼란스런 세상을 살아가는 개인의 고민을 표현했다”며 “하늘, 땅, 벽 등이 공존하는 커다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고 전했다.

 

행사 방문객 중 누군가 지나가듯 ‘그동안 청년 문화 공간이 부족해 아쉬웠는데...’라는 말을 한 것이 떠오른다. 이번 프로젝트가 신촌 내 청년 문화 형성이라는 난제에 던진 가능성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이제 막 끼운 첫 단추지만, 이 단추를 시작으로 향후 신촌의 청년 문화예술로 통하는 출구가 더 늘어날 수 있길 바란다.

 

글 신유리 기자 

shinyoori@yonsei.ac.kr

 사진 신용범 기자
dragontige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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