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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연세문화상] 여름장난

[ 박영준 문학상(소설 분야) 당선작 ]

여름장난
 

김건(철학·10)

늘어지는 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우주를 담은 듯한 어두운 밤은, 개구리가 울어대는 소리로 내게 다가왔다. 이 눅진한 개구리 소리는 어릴 적 내겐 어둠을 상기시킬 뿐인 공포의 제왕이었지만, 이제는 공허한 어둠을 몰아내어 주는,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굳은살이 박힌 할머니의 손길이었다. 장롱에서 퀴퀴하면서도 포근한 할머니의 냄새가 남아 있는 이불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막 펼친 이 두꺼운 솜이불은 푹신하고 시원했다. 하지만 누우면 곧 더워지겠지. 어릴 때부터 그래왔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삼베 이불을 하나 꺼내 그 위에 덧깔았다. 삼베 이불은 시원해서 좋지만 까슬했다. 누워서 한참을 뒤척였다. 곧 눈도 몹시 까슬해져서 손으로 비볐다. 이 역시도 어릴 때부터 그래왔다. 이상하게 할머니 댁에만 오면, 꼭 잘 때쯤이 되어 눈이 심하게 간지러웠다. 그래서 한참을 비비면 시뻘겋게 부어서 나중에는 아파서 긁지도 못하고 할머니가 꺼내주신 얼음을 비닐 봉투에 담아 얇은 손수건으로 싸서 눈에 대곤 했다. 그렇게 얼음이 두 번 녹고 나면 잠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좀 달라질까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예전과 그대로였다. 부모님은 이렇게 눈이 심하게 가려워지는 것이 먼지 알레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셨지만, 그렇게 따지면 난 도시에서는 눈이 멀었어야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의 냉동 칸을 열었다. 얼음이 있긴 했으나, 언제 얼려두셨던 것인지를 모르겠어서 모두 꺼내 버리고, 새로 물을 따라 넣었다. 오늘은 아마 긴 밤이 될 것 같다.

몸은 몹시 노곤했다. 새벽에 도착하여 잠시 숨을 돌린 이후로는, 아침부터 집 구석구석의 먼지를 털어냈고, 물걸레질을 했고, 개에게 밥을 줬고, 짐을 풀었고, 이것저것하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큰 집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집 하나를 정리하는 것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오후에는 밥을 간단히 차려 먹은 뒤, 마을 입구께 있는 주유소에 가서, 그 주유소는 이 마을에서 유일한 식료품점이기도 했다, 약간의 물품을 사왔다. 입구의 주유소에서 할머니 댁까지 가려면, 우선 마을 아래쪽에 흐르는 작은 시냇물을 따라 쭉 가다가 집 몇 채를 지나 오른쪽으로 꺾어 올라가야 했다. 오르막길이긴 했으나 완만한 경사여서 기분 좋게 왔다갔다할 수 있었다. 집에 사온 물건들을 정리해 뒀다. 식료품점이라고 해봐야, 구멍가게 수준이었기 때문에 담배 두 갑과, 음료수, 과자 등의 주전부리와 술, 그리고 유통기한이 간신히 넘지 않은 인스턴트 식품 몇 개만을 사왔다. 구멍가게에는 고기나 야채도 팔긴 했다. 다행히 할머니 댁 냉장고에는 아직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많았고, 쌀도 꽤 있었다. 다시 집에서 나온 뒤, 할머니 댁 뒤로 쭉 뻗어있는 길을 따라 산에 올라갔다 왔다. 어릴 적부터 할머니 댁에 올 때마다 자주 올라가던 산이었다. 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정상에는 올라가본 적이 없었다. 항상 긴 막대기에 누렇게 때가 탄, 할아버지의 러닝 셔츠를 아주 단단히 매달아 묶고 산을 정복하겠다며 사촌 동생과 함께 올라가곤 했다. 하지만, 산행의 십중팔구는, 적당히 오르다 말고, 그냥 곳곳의 산딸기나, 머루 등을 따 먹고는 시다며 뱉거나, 모과나무를 흔들어 따서는 들고 다니거나 하며 놀았던 것 같다. 러닝셔츠로 만든 깃발은 까먹고, 버리고 오거나 한 적도 있었으나,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거진 주워서 내려오신 것 같았다. 물론 꽤 깊고 높은 곳까지 올라가 꽂고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 때는 할머니 댁으로 돌아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산을 정복하고 왔다며 무용담을 펼치기도 했다. 어릴 적에는 밥 먹는 것을 그렇게 싫어해서 부모님은 나에게 밥을 먹이시는 데 매우 애를 먹었다고 했지만, 적어도 시골에서만큼은 항상 고봉밥을 먹곤 했다. 특히나 산에 다녀오거나 했던 날에는 더욱. 어릴 적의 일을 생각하며 천천히 산을 올라갔다. 얼마 가지 않아 산세가 살짝 험해지는 구간이 나왔다. 산세가 험해졌다고는 해도, 그 전까지의 길이 거의 포장되다시피 되어 있던 길이었고, 이 구간부터는 길은 나 있으나 단지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을 뿐이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갔다. 갑자기 나무가 울창해지고, 한결 더 조용해져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길 양쪽으로 우거진 수풀과 나무들 사이에서는 파리들이 깊은 곳에서부터 느릿하게 앵앵거리고 있었고, 매미들은 찢어지듯 울부짖고 있었다. 그래, 아마 이 부근까지 오고는 산을 정복했다고 그랬던 것 같다. 어디였는지 가볍게 살피며 평화롭게 걷다 보니, 보통 나무를 심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조금 작게 자란 나무가 있었다. 혹시 이 나무가 예전에 그 나뭇가지는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니라면 아닌 건데, 또 그렇게 생각하니 맞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작은 나무 옆에 앉아 조금 쉬다가 다시 집으로 내려 왔다. 할머니, 혹시 그 산세가 조금 울창해지는 곳에 있는 나무가 어릴 적에 꽂아 뒀던 그 나뭇가지가 맞나요? 할머니, 할아버지 러닝셔츠를 매달아 깃발이라고 꽂아 두었던 게 그 나무가 된 것이 맞나요? 물어보고 싶었으나, 이제는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사촌누나가 생각났다. 어릴 적 나에게, 어떤 유명한 시리즈물의 소설이 막 출간되었을 때, 마법사에 관한 책이었다, 이게 아주 재미 있으니 꼭 읽어보라고 추천을 해줬다. 당시에는 읽어 보라니 읽어 봤지만, 별 감흥이 없어서 읽는 둥 마는 둥 하고 넘겼다. 그러다 그 소설이 영화로도 나오게 되고, 그제야 다시 책을 제대로 읽었다. 그 영화도 역시 시리즈로 제작 되었고, 굉장히 성공했다. 영화가 나올 때마다 사촌 누나와 그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영화가 영상미는 좋았지만, 그리고 잘 만들었지만, 책에서 재미 있게 봤던 어느 부분이 빠져서 아쉬웠다던지 하는 그런 내용을. 그 영화의 마지막 시리즈가 개봉했을 때는 나는 더 이상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누나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마지막 바로 전 시리즈까지는 영화를 봤었지만, 마지막 시리즈는 보지 않았다. 딱히 사촌 누나와의 관계에 있어, 누나가 없으면 더는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없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였다기 보다, 단지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그래서 당시에 사귀던 여자친구가 마지막 시리즈를 같이 보자고 했을 때도, 난 끝까지 보지 않았다. 참고로 마지막 시리즈는 2부로 나누어 개봉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시리즈의 2부가 개봉했을 무렵,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래서 그 때부터 지금까지 그 영화의 마지막 시리즈는 보지 않았다. 할머니 댁에는 작은 서재가 있었다. 서재에는 동화책부터 소설책, 그리고 앨범까지 굉장히 많은 책이 있었다. 책장 두 개가 빈틈 없이 빼곡히 차 있었으니, 많다면 많은 책이었다. 방 가운데는 두툼한 카키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사촌 누나와 함께 시골에 있던 적도 있었다. 나는 주로 사촌 동생과 산으로 시냇가로 쏘다니느라 바빴고, 사촌 누나는 이 서재에서 책을 읽는 일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몸이 꽤 약했거든, 우리 누나는. 가끔은 나도 그 서재에서 같이 책을 읽었다. 사촌 동생은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같이 놀자고 칭얼거리다가, 우리가 엎드려 책을 읽는데 정신이 팔려 있자, 기어코 놀겠다고 혼자 나가서 조금 놀아보려 하다가 심심해서 다시 들어와 우리를 조금 괴롭히다가 잠이 들거나 하는, 그런 한가로운 풍경이었다. 나는 책을 읽을 때도 있었고, 사촌 동생과 나가 놀기도 하고, 딱히 둘 중에 뭘 더 좋아했다기 보다 그냥 둘 다 적당히 좋아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나가서 노는 걸 조금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산에 갈 때는 누나는 따라오지 않았고, 우리가 시냇가로 갈 때는 가끔 같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가 물장구를 신나게 치는 동안, 누나는 신발을 벗어, 냇가 근처의 그늘이 푸르게 내려앉은 넓적한 돌 위에 앉아 발을 가만히 담그고 있었다. 가끔은 그 굳은 살 하나 없을 것 같은 하얀 발로 우리에게 물을 튀기기도 했었지. 물을 튀긴다고는 해도, 냇가에 잠긴 발의 끝을 물 밖으로 까딱까딱 뺐다 담갔다 하며, 물방울을 튀기며 장난치는 정도였다. 사촌동생과 나는 그걸 보고 왜 물을 튀기냐며 누나한테 물을 뿌려댔었다.

산에 다녀와 몸을 씻고, TV라도 볼까 하다가 별로 생각이 없어서 아침에 치운 서재로 들어갔다. 아침에는 워낙 분주했고, 또 정신 없이 청소를 해치웠던 터라, 다시 들어오니 느낌이 새로웠다. 꽂혀 있는 책들을 조금 둘러봤다. 동화책도 있었고, 소설책도 있었고, 뭐 이것저것 책들이 있었다. 책들 사이에는 사촌누나가 소개해줬던 그 시리즈 소설의 세 번째 편의 상 권이 있었다. 방금 까지 했던 생각에 묘한 기분이 들어 예전처럼 적당히 자리를 잡고 엎드려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전 시리즈 중 가장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 권은 없었다. 예전에 책을 가져와 읽다가 깜빡 하고 그냥 갔던 거겠지. 아마 그 누나 성격에는 돌아간 뒤, 책이 없어졌다고 답지 않게 떼를 쓰다가 똑같은 걸 새로 사고야 말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맞다. 그 누나가 나에게 남겼던 그 시리즈 소설은 모든 편이 다 있었거든. 그 누나는 평소에는 어른스러웠는데, 이상하게 책에 관해서는 아주 어린 아이가 되곤 했다. 예를 들어 평소에는 나나 사촌 동생이 어떤 장난을 쳐도 그냥 따끔하게 혼을 내고 말거나 했지만, 우리가 실수로 책을 조금이라도 구기거나 찢거나 했을 때는 세상이 무너져라 목청껏 소리지르며 울곤 했던 것이다, 그 조용하던 누나가. 밑줄 하나 없이, 세게 핀 흔적 하나 없이, 심지어 그 흔한 책 구석을 작게 접은 흔적 하나 없이 책을 읽는 누나가, 꼭 책 표지 바로 다음에 나오는 쪽에는 구석에 작게 자기의 성씨를 한자로 써 놓고는 했다. 내가 받은 책에도 그렇고, 이 책에도 어김없이 적혀 있었다. 책을 읽고 나니 허기져서 저녁을 차려 먹었다. 마실 물을 뜨기 위해 집 밖으로 나왔다. 밖은 이미 어두웠다. 물은 집 앞에 있는 조그만 마당의 수도꼭지에서 떠나 마시면 되었다. 그것이 지하수를 길어 올리는 펌프라고 해서 어릴 적부터 시골에 올 때마다 그 물을 마셔왔다. 시골의 어둠은 도시의 어둠과 다르다. 시골의 어둠은 깊은 우주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는 창백하게 커다란 달이 있고, 빽빽이 빛나는 별들이 있다. 그리고 달과 별을 삼킨 개구리가 느릿한 트림을 내뱉는다.

반 고흐는 생전에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별을 향해 가는 것이라 한 적이 있다. 별로 떠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할아버지께서 떠나신 뒤, 사촌 누나가 떠났고, 그리고 한참 뒤에 할머니가 떠나셨다. 그 누가 별로 향할 때도 난 그 곁에 있지 않았다. 할아버지께서 별로 걸어가실 준비를 할 때는 한 번 뵌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별을 향해 떠나실 때는, 지역이 달랐으므로, 우리 가족이 서둘러 갔을 때는 이미 할아버지께서 떠나신 뒤였다. 그리고 사촌 누나는, 갑자기 세상을 떴다. 사실, 갑자기라고 말을 해도 될지는 잘 모르겠다. 누나가 세상을 떴다는 연락을 받기 얼마 전, 나는 누나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밖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는 중이었다. 잠시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어, 누나. 오랜만이다. 어쩐 일이야?”

“그래, 잘 지내고 있지?”

평범한 인사로 시작한 대화는, 누나의 무슨 금융 상품 가입 권유로 끝이 났다. 막 성인이 된 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난 사실 누나를 거의 잊고 있었다.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거의 연락도 없었고, 본 적도 없었다. 별 시답잖은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가, 가게 안에서 친구들이 일어나려는 모습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전화를 끊어야 되겠다는 티를 조금 냈던 것 같다. 그러자 누나는 보험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다. 난 당시에 막 성인이 된 풋내기 특유의 치기 어린, 서울에서는 눈만 감아도 코가 베인다는, 그래서 그것을 경계하며 누구도 믿지 않는 인간불신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눈에 띄게 냉담한 어투로 난 그런 건 자세히 모르고 부모님과 이야기해봐야 된다고 말을 딱 잘랐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가입만 하면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런 지장도 없는 그런 상품이었던 것 같은데, 필요 이상으로 냉정하게 굴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나는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고, 시간 되면 얼굴이나 보자는 식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난 식당에서 나와 내 짐을 들고 기다려준 친구들에게 노래방이나 가자고 말하고 그 통화는 금방 잊어버렸다.

그 때 나는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에 있었다. 술에 잔뜩 취한 채로. 취한 와중에 누나가 어떻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고는 깜짝 놀라 급히 택시를 잡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한 두 시간 동안 택시 기사 아저씨께 울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내용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별로 떠나셨을 때는 외국에 있었다. 친구와 짧게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난 급히 일정을 변경하고 친구를 뒤로한 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혼자 할머니가 별을 향해 출발한 곳으로 급히 시외버스를 탔다.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께서 먼저 떠나신 뒤에 계속 이 곳에 계셨다. 간혹 근처 도시에 사는 다른 친척집에 계시기도 했지만, 주로 혼자 농사를 간간히 지으시고, 겨울에는 마을의 친구분들과 친척들을 불러 김장을 하셨다. 할머니께서는 이 집을 우리 가족에게 남기시고 별을 향해 떠나셨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야 들었다. 아직 나는 어른이 되지 못했던 모양인지. 부모님께서는, 이 집은 지역도 멀고 그래서 관리하기가 어려우시다고 파실지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고 계셨다. 그래서 내가 잠시 거기에서 지내고 싶다고 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 내가 어릴 적에 이 집은 방학 때마다 꽤나 북적거렸다. 내가 먼저 가서 있으면 사촌 동생, 누나가 오곤 했고, 조금 늦게 간 날에는 그 둘이 날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우리 집이 아직 안정이 되지 못했을 때, 아예 방학식이 일찍 끝나고 짐을 챙긴 뒤, 시골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다가 개학식 전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딱히 심심하지는 않았다. 사촌들이 있으면 같이 놀면 되었고, 만약 없다면, 혼자 산에 오르거나 물장구를 치거나, 혹은 책을 읽으면 되었으니까. 간혹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걸 돕기도 했다. 물론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는, 힘들고 다칠지도 모른다며 거의 시키려 하지는 않으셨지만.

페트병 몇 개에 물을 채운 뒤 냉장고에 넣어 두고 나서 이불을 바닥에 깔았다. 모든 것이 처음엔 신선하지만 나중에는 눅눅해 지는데, 잠자리 역시 그랬다. 시원한 삼베도 나중엔 후텁지근한 공기에 눌려 까슬하기만 했다. 고추를 말리시던 방에 있는 선풍기가 생각났다. 그리고 곧 이어, 아침에 청소를 할 때 귀찮아서 선풍기를 닦지 않았던 것도. 어차피 눈도 가렵겠다, 찬물을 끼얹을 겸, 그리고 찬물을 끼얹는 김에 몸에도 같이 물을 묻힐 겸 선풍기를 닦고 샤워도 할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선풍기가 있는 방으로 갔다. 선풍기는 그렇게 더럽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사용은 하시던 것이니까, 한 번 닦아야 할 것 같긴 했다. 선풍기의 버튼 옆에는 작게 종이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테이프가 종이 스티커를 덮고 있었다. 아마 어릴 적 글씨 연습의 일환으로 썼던 것 같다. 선풍기를 분해하여 날과 망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보일러의 온수 버튼을 누르고 선풍기와 함께 샤워를 했다. 그리고 수건으로 물기를 어떻게든 닦은 뒤, 선풍기를 조립하여 안방으로 들고 왔다. 전기를 연결하고 가장 약한 바람을 틀어 보니,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 어릴 적부터 봐왔던 그 선풍기가 아직도 힘을 내고 있구나. 눈에 물을 조금 묻히고 선풍기 앞에 있으니, 시원하니 기분이 좋았다. 아픈 가려움도 조금 가시는 듯 했다. 얼마나 선풍기 앞에 앉아 있었을까,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 누웠다. 이불은 다시 시원해져 있었다. 여기에는 얼마나 있게 될까? 부모님은, 평소 같으면 공부를 하라고 많이 뭐라 하셨겠지만, 이번에는 시골집에 있는다 하니 별 말씀 없이, 있고 싶은 만큼 있다 오라고 하셨다. 구멍가게가 있고, 담배가 있었고, 술이 있었고, 뭐 적당히 필요한 건 다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 내키는 대로 있으면 될 것 같았다. 꽤 시원해지고 나니, 눈이 조금 간지러운 것을 빼고는 잠이 잘 올 것 같았다. 여름은 여름이었다.

보통은 아침에 일이 없으면, 억지로라도 늦잠을 잤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시골에만 오면, 아침에는 할 일이 딱히 없는데도 새벽같이 눈을 뜨곤 했다. 아침잠이 많이 없으셨던 할머니나 할아버지 보다 일찍 일어나 괜히 밖으로 나가서 마을을 한 바퀴 돌거나 산을 올라갔다 오거나 했다. 이번에도 눈이 새벽같이 떠졌다. 다시 자려 애써 노력했으나 이상할 정도로 정신이 맑았기 때문에 억지로 조금 더 미적거리다가 일어나 한숨을 쉬었다. 밖으로 나가 기지개를 켰다. 담배를 태울까 했으나, 담배는 일어나자 마자 태우면 기운이 오히려 빠졌기 때문에, 적어도 30분 정도 후에 태우는 것이 가장 좋았다. 나온 김에 수도꼭지에서 물을 마셨다. 물은 시원했다. 여름의 이른 아침만큼 좋은 날씨가 있을까? 집 옆에는 개가 있었는데, 아주 어릴 적에 있던 개는 아니었다. 어릴 적 그 개는 아마 나이가 다해 별로 떠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은 덩치는 조금 있지만 만사가 귀찮은 듯한 유순하고 마른 흰 개가 있었다. 개는 눈곱이 잔뜩 낀 채, 엎드려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며 나를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창고에서 사료를 꺼내 밥그릇에 부어주었다. 그리고 물을 떠다 갈아 주었다. 어릴 적 개는 만사에 관심이 많은 살가운 개였다. 같이 동네도 자주 산책했다. 어린 마음에 우리 개가 가장 강한 개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다른 집 개와 싸움을 붙이려 한 적도 있었으나, 싸움을 붙이려 했다고 해도 단지 그 집에 데려갔을 뿐이다, 우리 개가 워낙 성격이 좋아서 반갑다고 혀를 내밀고 꼬리를 흔들어 대기만 했다. 진짜 무서운 개는 따로 있었다. 그 집은 사촌 누나와 비슷한 또래의 누나가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아마 한 두 살 많았던 형도 있었다. 그 집 개는 정말 무서워서 우리 개를 데리고 가지는 않았다. 그 집에서 옛날 홍콩 영화 비디오 테이프를 같이 보고 라면을 먹기도 했다. 어린이가 볼만한 영화는 아니었는데…… 그 때 먹은 너구리는 정말 맛있었다. 영화의 주인공은 이름이 아마 ‘하역왕’이었지. 그 무서운 개가 있는 집은 방금 생각이 났다. 개에게 사료와 물을 주고 난 후, 집으로 들어와 선풍기를 틀어 놓고 가만히 누워 있다가, 점심을 차려 먹었다. 점심은 어제와 비슷했다. 거기에 레토르트 식품이 포함되었을 뿐. 밥을 먹고는 설거지를 한 뒤, 마을이나 제대로 한 번 둘러보기로 했다. 수도꼭지에서 물을 들이켰다. 집 근처의 큰 감나무는 잎사귀들로 햇빛을 잘게 조각내었다. 그 아래는 파라솔을 꽂을 수 있는 커다란 평상이 있었다. 조각난 햇살들 사이로 푸른 빛 작은 열매도 듬성듬성 보였다. 그 옆에 난 포장된 길을 따라 쭉 내려갔다. 볕을 받으며 흔들리던 길은, 뒤꿈치의 딱딱한 굳은살로 발목을 긁으며 내리 밟으니 제 위치를 찾아갔다. 시냇가는 간신히 한줄기로 흘러 가고 있었는데, 커다란 줄기로 쏟아져 내려가듯 흐르던 어릴 적 기억 과는 사뭇 달랐다. 시냇가를 가득 메운 건 물이 아닌 정체 모를 수풀들이었다. 수풀들 사이로 희연 나비들이 더운 바람을 타고 일렁였다. 시냇가 위에 놓인 콘크리트 다리에 걸쳐 앉았다. 부서진 돌 가루들이 부스스 떨어져 내렸는데, 시내 하류에는 거진 물이 말라있었기에, 돌 가루가 떨어지는 소리는 적나라하게 먼지를 내며 퍼졌다.

입구께 주유소 방향으로 시냇가를 따라 걷다가 왼쪽으로 난 작은 골목으로 올라 들어갔다. 마을은 조용했다. 비어 있는 집이 많았다. 비어 있는 집과 사람이 사는 집을 구분하는 방법은, 위성 TV의 안테나 접시였다. 허름한 시골집과 하얀 위성 TV 안테나는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러다 무서운 개가 살던 집을 지났다. 그 집은 어릴 적에는 분명 슬레이트 지붕을 단 흔한 시골집들 중 하나였는데, 뭔가 제법 테가 나는 현대식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멀찍이 지나가기만 해도 크게 짖어대던 무서운 개는 이제는 없는 것 같았다. 아마 예전에, 그 집 누나가 개에게 물려서 그 개를 어떻게 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아무튼, 제대로 설명이 될 지는 모르겠는데, 그 집이 있는 골목은 오르막길 위에 있어서 대문에서 집의 입구로 경사를 따라 올라가야 했다. 집의 입구는 경사의 높은 쪽이었고, 대문은 아래쪽에 있었다. 높은 쪽에 있는 집의 입구를 기준으로 대문 방향으로 담벼락을 따라 텃밭이 만들어져 있었다. 대문에서는 그 텃밭을 올려다 보게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그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다리를 살짝 구부리고 허리를 숙이는 자세를 취하고 있던 터라, 다리 사이로 아이보리색 치마의 앞면이 보였다. 짧은 길이는 아니었지만, 허벅지의 뒷부분이 훤히 보였다. 종아리에는 큰 상처가 하나 나 있었다. 무심코 멈추어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치마는 얇은 재질이었는지 속옷 라인이 훤히 비추어 보였다. 그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려는 듯한 모습을 취해서, 마치 원래부터 갈 길을 가고 있었다는 듯 발에 채이는 자갈을 치우며 걸음을 옮겼다. 조금 걷다가 다시 뒤를 돌아 그 집을 쳐다 봤으나,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무서운 집에 살던 누나와 형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같이 본 영화의 주인공의 이름도 기억이 나는데, 그 누나와 형의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시골에 올 때 마다 비슷한 또래가 그 둘 밖에 없어서 자주 같이 놀았었는데. 사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사촌들 하고만 놀았지만, 혼자 시골에 있게 됐을 때는 함께 같이 놀았다. 이 마을에는 어린 아이들이 없었다. 그 둘도 학교는 읍내까지 나가서 다닌다고 했던 것이 얼핏 기억이 났다. 또 다른 기억은, 할머니가 그 집에 뭘 가져다 달라고 해서, 아마 음식이었던 것 같다, 저녁 때 즈음에 랩으로 싼 그릇을 들고 갔다. 개가 심하게 짖고 있었고, 조금 망설이고 있었다. 안에 계시냐고 조금 크게 외쳤다. 그러자 안에서 누나가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개는 잘 묶여 있으니 걱정 말고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래서 최대한 반대편으로 붙어서 신발을 벗고 마루 위로 올라갔다. 누나가 벽 뒤편에서 얼굴만 꺼내 왜 그러느냐고 물었고, 나는 음식 심부름을 왔다고 했다. 별 생각 없이 누나 쪽으로 접시를 들고 가려는데, 누나가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왜 그러느냐 하니, 음식만 바닥에 두고 가라 해서, 그냥 바닥에 놓고 뒤를 돌아 나갔다. 그러다가 뭔가 께름칙하여 대문 옆에서 머리만 살짝 내밀고 접시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곧 누나가 수건을 대충 들고 알몸으로 나와 음식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들어갔다. 이상한 기분에 숨이 차는지도 모르고 집까지 뛰어 갔다. 이것도 얼마 되지 않는 선명한 유년시절의 기억.

마을에는 빈 집이 많았다. 애초에 사람이 많은 곳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북적거리는 느낌은 얼추 났었는데, 이제는 조용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대문 근처에 앉아 볕을 쬐고 있거나, 개들이 더위에 늘어져 있는 이 모습. 이 모습은, 그럼에도, 사람이 많은 도시의 모습보다는 더욱 인간적이었다. 가끔 본가의 창문에서 아래 시가지를 내려다 보면, 그리고 주위 건물들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집이 사거리 근처에 있어 자동차도 많이 다녔다. 하지만, 정작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도시를 경영하는 컴퓨터 게임의 화면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어떠한 특징 없이 드문드문 도로에 박혀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야…… 감나무 아래로 출발했던 산책은 개집을 지나쳐 끝이 났다. 개는 아직까지도 엎드려서 졸고 있었다. 개를 부르려다가 문득 개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옛날에 산책을 데리고 다니던 그 개의 이름도 몰랐다. 그저 주어 없이 큰 소리로 용건만을 말하거나, 이리오라거나 앉으라거나 등등, 혀를 차며 쫑쫑 부르기만 했었다. 어떻게 지금까지 한 번도 이 사실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았을까,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땀을 닦았다. 느릿한 바람이 지나가며 뭔가를 속삭여 주었다. 그 속삭임은 어찌나 섬뜩하던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이름이 아닌, 할머니와 할아버지로만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촌동생의 이름은 기억한다. 이름을 불러왔으니까. 사촌누나의 이름은 두 글자였는지, 세 글자였는지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름의 마지막에 ‘이’가 원래 있는 것이었는지, 단지 부르기 쉽게 그렇게 붙여서 불렀던 것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조금만 더 일찍 궁금해 할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사실, 만약 지금 내 눈 앞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제 와서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볼 수 있었을지는, 그것은, 내가 잘 모르겠다.

집에 도착하여 반찬을 꺼내고 밥을 먹었다. 그리고 떠다 둔 물을 꺼내 마셨다. 반찬은 아직 며칠은 더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었다. 쌀은 많이 남아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몸이 노곤했다. 선풍기를 틀어둔 뒤, 시원한 물로 몸을 천천히 씻어냈다.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렸다. 머리가 요즘 꽤 많이 자란 탓인지, 속까지 제대로 마르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바닥에 베개를 대충 내려 놓고 그 위에 누워서 TV를 켰다. 눈이 점점 감겨왔다. 제대로 이불을 펴고 누워서 자야지 하면서도 몸을 꿈쩍할 수가 없었다. 원래, 잠을 자야겠다 생각하고 정식으로 눕는 것보다 잘 생각도 없이 마음 편히 누울 때가 잠이 더 잘 오는 법이니까.

보통 잠에서 깰 때는, 아주 느릿하게 일어나곤 했다. 그 사이에는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말랑거렸다. 그런데 가끔 잠시 눈만 감았다 뜬 것처럼 잠에서 깨어날 때가 있었다. 눈은 뻑뻑하고, 목은 마르지만, 그 외에는 모두 잠들기 전과 똑같다. 지금이 그랬다. 바람이 날 때리고 있었다. 때리고만 있었다. 아까까지는 맞는 것이 좋았으나, 이제는 별 감흥 없이 바람이 날 때리고만 있었다. 물론 내가 때려 달라 한 것이었다. 아무리 처음 맞을 때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맞는 것이 어떠한 좋은 감정도, 인상도 남기지 않는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줄곧 같은 방식으로 때리고 있던 그의 잘못인가, 혹은 같은 방식으로 맞고 있던 나의 잘못인가? 내가 몸을 돌려 다른 곳을 맞았어야 하는 것인가, 혹은 그가 나의 몸의 다른 곳을 때렸어야 하는 것인가? 때리는 사람이, 먼저 때려 달라고 해 놓고는 이제 와서 왜 말을 바꾸냐고 말을 한다면 나는 뭐라고 답해야 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 둘이서, 때리는 일과 맞는 일에 대해, 이와 비슷한 상황 하에서 다투고 있다면 나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하는 것인가? 버튼 옆에 붙어 있던, 내 이름이 적혀 있던 스티커를 찢어내 버렸다. 끈끈한 자국이 보기 싫게 남았다. 이름을 적극적으로 말해주지 않아서 상대편이 기억을 하지 못하게 한 사람이 잘못한 것인가, 혹은 이름을 적극적으로 말해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름을 기억하거나 알려 들지 않은 사람이 잘못한 것인가? 뭐 딱히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사람 좋게 말하면 넘어갈 별 볼일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애써 심각한 듯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나는 영원히 누구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막상 없으면 죽고 못살 것만 같던, 늘 서로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같이 동네를 뛰어 다니던 초등학교 때의 단짝 친구들의 이름을 말해보라면 난 말문이 막혔다. 우선 초등학교 6년 동안만 하더라도, 세 군데-부모님의 직장 관련 문제로 어쩔 수가 없었다-의 초등학교를 다녔고, 초등학교 졸업 후에도 이사를 가서 동네 친구들이 전무한 중학교로 진학했기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중학교 때의 친구들을 기억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물론 초등학교 때의 친구들부터 해서 얼굴들은 기억이 났다. 선명하게 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안경을 썼는지 아니었는지, 머리 스타일이 어땠고, 이목구비는 대충 어떤 인상이었는지 정도는 기억이 났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이름만은 기억해낼 수 없었다. 이제 이 덜덜거리고 있는 선풍기도, 곧 버려지고 잊혀지겠지. 누구도 이런 선풍기가 쓰였다는 것을, 내 이름이 쓰인 스티커가 테이프와 함께 이 선풍기에 붙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20여년이 지나도록 우리 가족이 써오던 이 선풍기도, 지금까지 고장이 안 난 것이 신기할 정도지만, 딱 거기까지인 것이다. 이 여름이 지나면, 다른 여름이 올 때까지만 잊혀져 있을 테니, 형편은 조금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사람은, 이 삶이 지나고 나면, 한 번 잊혀진 후에는 어떻게 하더라도 다시 기억되기는 어려울 것이니 말이다. 사람도, 종이도, 어떠한 기록도, 물질도, 비물질도, 어느 누구도 어떻게라도 어떤 이를 더 이상 기억하고 있지 않다면, 그 어떤 이는 다시는 기억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어딘가에 서서 약 4만년전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던, 그 당시 막 등장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어떤 현생인류 하나를 상상해 본다면, 그리고 정말 우연의 일치로 내가 상상했던 인물이 정말 실존했던 사람이라면, 나는 그 사람을 기억해 낸 것일까? 내가 죽고 난 이후, 나에 대한 어떠한 기록도, 기억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후대의 누군가가 이러저러한 사람이 과거에 있지 않았을까 하며 나에 대해 상상했다고 했을 때, 그것은 나를 기억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건 기억의 단절과 복원이라 봐야 할까, 혹은 단순히 상상과 실재의 조우로 봐야 할까? 우리는 새로 생각해내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그것을 정말 새로운 것이라고 어떠한 의심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존재했던 것을-그리고 그것은 모두에게서 철저히 잊혀져 버린 것이라고 했을 때, 혹은 조금 다른 뉘앙스에서, 누구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했을 때-다시 떠올리는 것이라고-이 떠올린다는 표현에 대해서도 몹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되는데, 상기한다는 것과, 상상과 실재의 우연적 만남에 대해 과연 우리는 그 둘을 정밀히 나눌 수가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자신 있게 말할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내가 기억해내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것들이 나의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아주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떤 생각에 몰두하여, 내가 그것을 실제로 했던 적이 있다고 느끼다가, 어느 순간 불현듯 이건 모두 상상일 뿐이었다고 자각할 때. 그럴 때면 난 몹시 섬뜩한 기분을 느낀다. 과연, 과연,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정말 실재했던 일들의 흔적인지, 혹은 오래된 척 하는 상상에 불과한 것인지를. 혹시 어쩌면, 만약에, 사촌누나는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집에 꽂혀 있는, 물려받았다고 기억하던 책들도 어쩌면 단지 외가 친척 중 다른 누군가가 준 것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헌책방에서 전집을 사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서재에 꽂혀 있는 그 한 권도, 그 안에 쓰인 한자 한 글자도, 다른 누군가 썼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누구도 내게 그 한자 한 글자는 사촌누나라는 사람이 썼던 것이라고 가르쳐 준 적은 없었고, 내가 언젠가 봤던지, 혹은 어떻게든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더 확실히 입증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난 사실 나중에 그 시리즈로 나온 마법사 영화의 마지막 편을, 1부와 2부 모두 봤었다. 영화관에서 본 건 아니었지만.

선풍기의 바람은 더 이상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밖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그렇다고 선풍기를 꺼도 딱히 별 수는 없었다. 화장실에서 작은 대야를 씻어다가 차가운 물을 떠서, 거실의 오래되고 편안한 회전의자 앞으로 갖고 왔다. 다행히 시골의 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선풍기를 의자 쪽으로 두고, 앉아 발을 대야에 담갔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으니 곧 몸이 식었다. 여름에 늘 힘들었던 이유는, 아무리 겉이 차가워 져도 속에 있는 열이 가라앉지를 않아서였는데 이제는 속의 열도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겉부터 타 들어가는 것은, 그 화상을 잡기가 쉽다. 하지만 속부터 타 들어가는 것은 잡기가 어렵다. 이것은 얼어붙는 것에 있어서도 그렇고, 외상이나 내상의 문제 등에 있어서도 비슷하다. 아무리 겉에다 온갖 차가운 것들을 다 들이 부어도, 아무리 차가운 것들을 들이킨다 하더라도, 조금 더 본질적이며 근원적인, 몸 안에 있는 그 불쾌한 불씨를 잡지 않는 한은 시원해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발을 차가운 물이 담긴 대야에 담그고 의미 없는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는 것은 어떠한 소용이 있느냐? 그것도 단지 겉만을 차갑게 만들 뿐인데. 눈이 또 다시 간지러웠다. 최대한 비비지 않으려고 눈을 때리거나 하며 참아왔지만, 갑자기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눈이 얼얼하도록 심하게 비볐다. 잠시 속이 후련했으나, 곧 참지 못할 가려움과 아픔이 밀려왔다. 멀찍이서 풀벌레들이 비웃듯 찌르르 울고 있었다. 개구리들아, 개구리들아, 깊은 트림을 들려주려무나.

또 다시 시골의 서늘한 여름 아침이 돌아왔다. 밖으로 나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차가운 물을 들이킨 뒤, 개집으로 갔다. 저 개는 움직이기는 하는 걸까? 늘 엎드려 있었다. 창고에서 사료를 조금 퍼줬다. 물은 아직 많이 있었지만, 대충 옆에 뿌려 버리고 새 물을 떠다 줬다. 앞에 조금 앉아 있었지만, 밥을 먹지 않았다. 더워서 입맛이 없는 것일까?

“흰둥아, 밥 먹자. 기운 좀 내고.” 엎드려 있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아무렇게나 말했다. 개는 기분이 좋은 듯, 눈곱이 조금 낀 더러운 눈을 감고 있다가 내가 일어나자 따라 일어났다. 그리고 사료를 조금 먹었다. 그걸 보다 보니 배가 조금 아파왔다. 집으로 돌아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양치를 했다. 화장실 한 벽면을 차지한, 이제는 누렇게 된 더러운 욕조가 보였다. 어제까지는 욕조 옆에서 샤워를 했다. 첫날 청소를 할 때도 욕조는 닦지 않았다. 바지를 접어 올리고, 팔도 어깨까지 올린 뒤, 물을 틀고, 수세미로 욕조를 박박 닦았다. 물때가 밀려 나왔다. 물때를 다 벗겨낸 뒤, 비누를 거품 내어 욕조를 한 번 닦고, 물로 마무리를 하였다. 색은 여전히 누랬지만, 그래도 조금은 깨끗해진 것 같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나와서 밥을 차려볼까 했다. 며칠 동안 고기라고는 인스턴트 식품으로만 먹었기 때문에 주유소에 가서 고기를 사오려 했다. 그러다 부모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느냐고 해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언제쯤 올 거냐 하시길래, 조금 더 있다가 올라가겠다고, 올라갈 때 다시 연락을 드리겠노라고 해뒀다. 주유소에 가서 고기를 샀다. 어제까지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오늘은 할머니가 있었다.

“총각, 저그 산 아랫집 총각이여?”

“아, 네, 네.”

“어이구, 많이 자랐네. 쬐그말 때 봤었는디 말여.”

정말 기억을 하시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야기라고는 해도 건성으로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 날은 다시 금새 더워져서, 오는 동안 땀을 많이 흘렸다. 밥을 먹고 욕조에 몸이라도 담글까 하고, 물을 틀어 두고 점심을 차렸다. 기름을 둘러 고기를 구울까 했으나, 식용유가 조금 수상해 보여서 그냥 굽기로 했다. 굽다가 물이 넘치는 소리가 들려 물을 끄고 식사를 했다. 커다란 거실 창을 바라봤다. 매미들은 방정맞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방충망에는 큼직한 파리 한 마리가 잉잉거리고 있었다. 산에서 들었던 소리들보다는 한결 유쾌했다. 기분 좋은 바람이 굵직하게 불어 들어왔다. 밖에 있었다면 더웠겠지만, 안에 있으니 날도 그리 습하지 않고 적당히 시원했다. 현관 근처 턱에 앉아 담배를 한 대 천천히 태우고 들어왔다. 욕조의 물은 아직 뜨끈했다. 옷을 벗어 세탁기에 넣어두고 몸을 깊숙이 담갔다. 물이 크게 흘러 넘쳤다. 머리까지 온 몸을 담가보려 했으나 욕조가 생각보다는 작았다. 어릴 적에는 수영장인 것 마냥 넓었던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이 무릎만 나와 있는 꼴이 되었다. 온 몸을 담갔다 일어나보니 물은 반 이상 줄어 있었다. 화장실의 문을 열고, 욕조가 있는 벽 위에 조그맣게 달린 창도 열었다. 화장실 창으로는, 집 뒤쪽에 있는 산의 나무들이 푸르게 보였다. 하반신만 담근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발은 물렁해져 있었다. 뒤꿈치의 굳은살도 잘 벗겨질 것 같았다. 욕조에 잠긴 발의 끝을 물 밖으로 까딱까딱 뺐다 담갔다 하며, 물방울을 튀기며 장난쳤다. 차가운 것과는 다른,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그런…… 시원한 것과도 조금 다른…… 싱그럽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바람이 불었다.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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