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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신문과 함께] 북촌 한옥마을 계동길에서 마주한 식민지기 인물 군상
  • 김지성 기자, 이청파 기자
  • 승인 2016.12.04 16:33
  • 호수 1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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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인 『한성순보』가 생긴 이래, 신문은 격동의 한국사와 함께 살아 숨 쉬었다. 식민지기 때도 마찬가지였다. 신문은 때로는 일제의 나팔수 역할을 했고, 때로는 소외됐었던 조선인들의 생각을 전하는 의회(議會)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신문은 시대를 비추는 하나의 창이었던 것이다. 이에 식민지기 당시 신문들의 기사를 읽으며 일제 치하의 다양한 인물 군상을 북촌 한옥마을 계동길에서 만나보고자 한다.
북촌 한옥마을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창덕궁과 경복궁 사이의 계동, 재동, 안국동, 가회동, 삼청동, 화동 등이 북촌 한옥마을에 속한다. 북촌 한옥마을의 북(北)은 종로와 청계천의 북쪽임을 의미한다. 조선시대, 궁궐과 멀리 떨어진 남산 한옥마을 같은 경우에는 가난한 선비나 몰락 양반들이 많이 거주했지만, 궁궐 바로 옆에 붙어있는 북촌 한옥마을에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들이 모여 살았다.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식민지기에서도 북촌 일대에는 한국 근대사의 거목이라 할 수 있는 인물들이 활발히 활동했다. 식민지기에서도 북촌 한옥마을은 역사의 격랑 한가운데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촌 한옥마을은 그 시절을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돋보기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창덕궁 주변에 위치한 북촌 한옥마을의 계동길은 특히나 흥미로운 장소이다.
북촌 한옥마을은 우리 대학교에서 제법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 272번 버스나 172번 버스 등을 타면 한 번에 북촌 한옥마을 계동길에 다다를 수 있다. 또한,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도 바로 북촌 한옥마을 계동길에 닿을 수 있다.

구미각국역방한 김성수씨 귀국
약 2년 동안 구미각국 순유

(중략)...재작년에 양행**의 길을 떠나로농로국 구라파*** 각국과 ‘아메리카’를 시찰 중이던 본사 취체역**** 김성수씨는...(중략)...귀경하리라 한다.
- 1931년 8월 2일 자 동아일보 -

▶▶ 인촌 김성수의 저택

안국역 3번 출구 부근의 북촌 한옥마을 계동길을 따라 쭉 올라가다 보면, 옛 정취를 물씬 풍기는 기름집, 목욕탕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곳곳에 보이는 투박한 글씨체가 정겹다. 세월의 더께를 가득 안고 있는 목욕탕에서 조금만 더 안길로 들어가면 고대광실(高臺廣室)*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한옥 한 채가 나온다. 이 집은 호남 지주 출신으로 서울로 와서는 산업자본, 신문사, 교육기관 등을 이끌었던 인촌(仁村) 김성수의 옛집이다.
우리에게는 고려대의 설립자로 잘 알려진 김성수는 경성방직,『동아일보』, 중앙고등보통학교, 보성전문학교(고려대의 전신)의 설립자다. 호남지주 출신으로 서울에서는 산업자본, 언론, 교육기관 등을 쥐락펴락했던 김성수의 위용을 그의 집에서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었다. 한때 그는 민족운동을 앞장서서 이끌기도 했지만, 일제 말의 석연치 않은 행적으로 인해 지금도 끊임없이 친일 논란에 휩쓸리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서울고등법원은 ‘1937년 7월부터 1945년 1월까지 조선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김성수 명의로 징병이나 학병 동원을 독려하는 내용의 말이나 기사들이 게재된 것에 대해서는 친일반민족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인촌기념회가 반발해 현재 대법원 상고를 준비하고 있다.

독립선언 사건의 공소공판
한용운의 맹렬한 독립론

(중략)...조션동립운동은 일본의 압박을 피함이 안이 조션민족 자신이 스사로 살고 스사로 놉힘이라
-1920년 9월 25일 자 동아일보-

▶▶ 만해 한용운이 활동했던 유심사 터. 현재는 게스트하우스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김성수의 옛집이 멀지 않은 곳에 식민지기 부끄럼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이의 숨결이 깃들어있다. 바로 만해(萬海) 한용운이 활동했던 유심사 터이다. 이곳에서 한용운은 잡지 『유심』을 발행하고 3.1 만세운동을 추진했다. 3.1 만세운동으로 인해 재판을 받았는데 이 자리에서도 굴하지 않고 조선 독립에 대한 생각을 토해냈다. 한용운의 이 열변을 담은 기사가 바로 위에 나온 1920년 9월 25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또한 한용운은 『유심』을 통해 현실과 괴리된 조선 불교의 은둔주의를 철저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민족정신과 자유정신을 고취시키는 글들을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1935년부터 1936년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장편소설 「흑풍」이다. 「흑풍」은 청조(淸朝) 말기 중국을 배경으로 혁명적인 주인공의 활약상을 그려내 간접적으로 일제에 대한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독립투쟁을 고취시킨 작품이다. 또한, 당시로서는 드물게 여성 해방에 대한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그는 단순한 종교인을 넘어 서슬 퍼런 시대를 겨누는 날카로운 펜이었다.
한용운은 또한 실천적 지식인이기도 했다. 1919년 3.1운동의 거사 계획도 유심사 자리에서 이뤄졌다. 당시 3.1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에는 최린처럼 변절을 해 친일의 길로 들어선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한용운은 그의 삶이 다할 때까지 일제와 타협하지 않았다. 총독부 청사를 마주하기 싫다고 성북동의 자택마저도 남향이 아닌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끝까지 결기를 보여줬다.

중앙고보생 칠백
양일간 맹휴***** 선언

(중략)...시내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 생도 칠백여 명이...(중략)...우리를은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말한 후 일제히 책보를 끼고...(중략)...주모자로 인정되는 학생 세 사람을 검거하얏다 한다.
-1930년 2월 19일자 동아일보-

▶▶서울 중앙중·고등학교. 인촌 김성수가 설립한 서울중앙고등보통학교의 후신이다.

한용운의 유심사 터를 나와 다시 계동길을 올라가다 보면, 서울 중앙중·고등학교가 나온다. 평범한 학교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근현대사와 같이 살아 숨 쉬어 온 학교다. 서울 중앙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아래 중앙고보)는 앞서 말했던 고려대 설립자인 김성수에 의해 세워졌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의 외관이 고려대 본관의 모습과 비슷하다.
중앙고보 학생들은 일제시대 학생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26년에 있었던 6.10 만세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6.10 만세운동은 1926년 6월 10일 순종의 인산일******을 기해 만세시위로 일어난 학생 중심의 민족독립운동이었다. 당시 우리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학생 7백여 명과 중앙고보 학생 1백여 명이 구속됐다. 현재 중앙중·고등학교에는 당시의 학생항일운동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역사는 끊임없는 퇴보와 진보를 반복한다. 역사가 1보 후퇴할 때마다 다시 2보 전진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처절하게 발걸음을 옮겼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소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들이었다. 3.1 운동, 6.10 만세운동, 4.19 혁명, 1987년 6월 항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마다 학생들은 정의와 변화를 부르짖었다. 시대를 불문하고 ‘요새 애들은 철이 없다’는 말은 반복되지만, 그들의 그 ‘철없음’이 때로는 역사를 바꿔나갔다.

몇 백 미터 남짓한 북촌 한옥마을의 계동길에서 일제하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었다. 항일과 친일 사이에서 외줄을 탔던 사람, 끝까지 저항했던 시인, 그리고 불의에 대항했던 혈기왕성한 학생들까지. 그 사람들의 숨결을 거울삼아 기자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을 껴안았다.

*고대광실(高臺廣室) : 크고도 좋은 집을 이르는 말.
**양행 : 서양으로 감.
***구라파 : 유럽의 음역.
****취체역 : 예전에 주식회사의 이사(理事)를 이르던 말.
*****맹휴 : 동맹휴학을 줄여 이르는 말.
******인산일 : 임금, 황태자, 황태손 등의 장례식을 이르는 말.

글 김지성 기자
boging95@yonsei.ac.kr
사진 이청파 기자
leechungpa@yonsei.ac.kr

김지성 기자, 이청파 기자  speedboy25@yonsei.ac.kr, leechungp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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