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자가진단은 금물

‘섭식장애’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극한으로 마른 모습? 낮에 끊임없이 먹다가 새벽에는 변기를 붙잡고 먹은 것을 게워내는 모습? 이는 모두 섭식장애의 일종이다.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섭식장애는 우리에게서 그리 멀지 않다. 체중 관리를 위해서 하루쯤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 그로부터 섭식장애가 시작될 수 있다.

거식·폭식·과식, 모두 다 섭식장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2015년 기준 6천845명이 섭식장애 진단을 받았다. 섭식장애는 다양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발병하며, 그 진단 기준 또한 복잡하다. 그래서 섭식장애는 조기에 발견되거나 자가진단을 하기 힘들다. 따라서 집계되지 않은 섭식장애 환자의 수는 더 많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섭식장애일까? 섭식장애에는 거식증·폭식증·습관성 과식증이 해당된다.
우리대학교 ㅇ씨(20)는 최근 줄어드는 몸무게와 불규칙한 식사 때문에 고민이다. ㅇ씨는 “최근 몇 달간 다섯 끼를 굶어도 공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고 토로했다. 현재 ㅇ씨는 입학 전보다 9kg가량 체중이 감소한 상태다. 또 극심한 거식증 환자였다고 고백한 대학생 황윤서(22)씨는 “신장 161.3cm에 몸무게가 30kg 초중반일 때에도 그 체형을 유지하거나 더 말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거식증의 대표 증상은 식욕 부진과 체중 증가에 대해 강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미드미 심리상담센터 김은영 자문 교수는 “섭식장애는 스트레스와 체형에 대한 왜곡된 인식 때문에 주로 발병한다”라고 설명했다.
다음으로 폭식증 환자의 경우, 많은 양의 음식을 빠르게 섭취하며 포만감을 느끼면서도 체중 증가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김 교수는 “폭식증의 경우 억지로 구토를 하는 등의 제거 행동이 동반되는 것이 특징”이라며 “살을 빼기 위해 이뇨제나 변비약을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것도 폭식증의 증세 중 하나”라고 답했다. 이뇨제와 변비약의 지속적인 복용은 신장이나 장의 기능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시 된다.
한편, 습관성 과식증의은 폭식증과 그 증상이 유사하다. 송 원장은 “습관성 과식증과 폭식증은 둘 다 폭식 증상을 포함하지만 ‘제거 행동’이 있는지 없는지가 근본적인 차이”라며 “제거 행동이 없는 경우 습관성 과식증으로 분류한다”고 밝혔다. 습관성 과식증은 제거 행동이 없기 때문에 환자가 섭취한 음식이 그대로 소화·흡수된다. 따라서 습관성 과식증은 환자에게 비만과 당뇨병 등 합병증을 유발할 위험이 있어 문제시된다. 

곳곳에 존재하는 섭식장애의 원인

그렇다면 섭식장애는 왜 발병하는 것일까? 섭식장애는 각 원인이 두드러지지 않더라도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섭식장애의 위험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
우선 생물학적으로 호르몬이나 신경전달물질에 이상이 생겨 공복감을 느끼지 못해 섭식장애에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원인보다도 더 큰 원인은 심리적, 사회적 요인이다. 심리적으로는 일상 속 스트레스가 주원인이다. 직장인 오씨(32)는 “업무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집에 돌아와 드라마 한 편을 보면서 치킨 한 마리를 혼자 다 먹었다”며 “그 후에는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온종일 거의 먹지 않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돼 먹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 상태를 표현하다 보니 섭식장애에 걸린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학생들의 경우, 섭식장애에 걸리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한다. 갓 성인이 돼 가정을 떠나 낯선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 김 교수는 “완벽주의를 추구하거나 자존감이 떨어진 경우에도 발병 위험이 크다”며 “자아 존중감을 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섭식장애의 사회적 원인으로는 외모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환자들 중 마른 체형의 연예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처럼 되려 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외모에 대한 왜곡된 인식의 원인으로 매스컴을 꼽았다. 수험 기간에 살이 쪘다고 토로한 대학생 ㄱ씨는 “체형 때문에 연애는 물론 인간관계를 맺을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 다이어트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취업 시장에서 외모를 중시하는 풍토 때문에 과도하게 다이어트를 하다 섭식장애에 걸리는 사람도 많다. 1년여 전 취업을 위한 무리한 다이어트로 15kg을 감량했다는 직장인 신동준씨(29)는 “입사 후 10kg이 쪘다”며 “그 뒤 식사 후 억지로 구토를 하게 됐다”고 밝혔다. 
연세 엘 정신건강의학과 송윤주 원장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위험 신호를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며 “삶이 외모나 체형, 체중에 의해 지배받는 느낌이 든다면 상담을 통해 섭식장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혼자 끙끙 앓지 말자

섭식장애는 진단 기준이 복잡하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내가 혹시 섭식장애는 아닐까?’하고 고민하는 것은 금물이다. 김 교수는 “섭식장애가 의심된다면 일단 섭식일지를 쓰는 것을 추천한다”며 “무엇을 누구와 얼마나 먹었는지, 그때의 기분은 어땠는지 등을 기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 교수는 “섭식장애가 자가진단이 힘든 질병인 만큼 평소 주변인들의 관심이 진단에 도움이 된다”며 “혹시 주변의 누군가가 다음과 같은 증상 중 4개 이상에 해당한다면 넌지시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섭식장애의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위해서는 전문 기관을 찾는 것이 좋다. 송 원장은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전문적인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을 권했다. 
그렇다면 전문 기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섭식장애를 치료할까? 우선 전문 기관에서는 섭식장애의 심리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 심리 상담이 진행된다. 이와 더불어 의사의 판단에 따라 항우울제 성분이 포함된 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이에 김 교수는 “복약을 중단하면 섭식장애가 재발할 수 있어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덧붙여 김 교수는 “가족들이 함께 치료받는 가족 치료를 가장 권한다”며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회에서부터 안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섭식장애의 증세가 심각할 경우 입원 치료가 이뤄질 수도 있다. 송 원장은 “일반적으로 ▲과도한 체중 감소로 환자의 안전이 우려되는 경우 ▲동반되는 질환이 의심돼 여러 검사를 한꺼번에 받아야 하는 경우 ▲자해의 위험성이 높은 경우에 입원치료를 권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외에도 행동 교정을 위해 환자 본인이 원하는 경우에도 입원이 가능하다.
섭식장애를 제때 치료받지 않으면 삶의 중요한 다른 부분들을 놓칠 수 있다. 송 원장은 “식이장애의 치료는 보다 나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식이장애로 의심되거나 남몰래 고통받고 있다면 혼자 괴로워하지 말고 함께 해 줄 식이장애 병원을 찾아가시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섭식장애는 대표적인 현대 질병이다.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에 따라 건강의 악화가 우려되는 만큼, 일상 속에서 자신의 식사에 주의를 기울여 초기에 예방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혹시 섭식장애가 아닐까 불안한 당신! 오늘부터라도 섭식일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