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이보 전진과 일보 후퇴를 반복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은 ‘이보 전진’보다는 ‘다(多)보 후퇴’의 과정에 놓여있는 듯하다. 오늘날 정치에서는 암흑의 시대였던 과거 군사정권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다. 현 정권과 6070 군사정권의 ‘평행이론’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봤다.

#1. 밀실에서 이뤄진 
‘그들만의 대화’

“대통령만 참석한 행사는 소행사, 
대통령과 경호실장, 비서실장, 중정부장이 참석하면 대행사다” 

-박선호 전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듯이, 정치의 핵심은 사람을 어떻게 쓰는지에 달려 있다고들 한다. 군사정권 당시 대통령은 ‘정치적 실세, 즉 자신의 최측근들과 철저한 보안 하에 국정을 논의할 때가 잦았다. 실제로 당시 청와대 주위였던 삼청동·효자동 일대에는 총 열두 채의 ‘안전가옥’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1992년 출간된 김충식의 『남산의 부장들』에 따르면 안전가옥은 군사정권 시절 당시 중앙정보부의 관리 하에 운영됐다. 이 안전가옥에서는 대통령과 정·재계 인사들의 만남이 이뤄졌는데, 이곳을 거쳐 간 기업가는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곤 했다고 알려진다. 정경유착의 산실이었던 안전가옥에서 이뤄진 ‘그들만의 대화’에서 ‘민의(民意)’는 끼어들 수 없었다.
이로부터 50여 년 가까이 지난 현 정권의 정치 역시 ‘불통’이긴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언론을 꺼리고 외부와의 노출을 피한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현재까지 기자회견 횟수가 단 5회에 불과하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각각 150회,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회의 기자회견을 한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적은 편이다. 이 같은 불통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탄핵 정국에 대한 박 대통령의 최근 세 차례 담화에서는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사적 관계를 앞세운 정치로 인해 대통령과 각 부처 각료들이 협력하는 정상적 통치 시스템이 무너졌다. 최순실, 차은택 등으로 대표되는 ‘비선실세’는 문화계, 스포츠계를 비롯해 정부 인사, 외교·안보 등에 깊숙이 개입해 사익을 추구했다.

#2. 평범한 시민이 ‘빨갱이’라니?

“법정이라고? 여긴 그저 오물들이 쌓여 있는 곳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폭로한 제임스 시노트(James P. Sinnott) 신부

초대 정부가 수립된 이래 ‘빨갱이’는 종북(從北) 세력을 의미했고, 역대 정권은 늘 외부의 적인 북한을 내세우며 내부 통합을 강조해 왔다. 특히 군사정권은 이러한 종북몰이를 행하는 경우가 더욱 잦았다. 유신시대에 발동된 긴급조치 1호에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고 규정돼 있었다. 
이 조항은 해석에 따라 악용될 여지가 많다는 논란이 있었는데, 실제로 1974년 일어난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이 조항이 악용됐다. 당시 군사정권은 긴급조치를 선포하고 반유신 운동을 하던 청년들을 체포했다. ‘배후에 공산당이 있다’는 것이 그 명목이었다. 결국, 끌려간 청년 중 8명은 사형 선고를 받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같은 ‘종북몰이’는 현 정권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종북’이라는 단어는 현 정권에서 특히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2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북한이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우리의 국론을 분열시키기 위한 선전·선동을 강화할 수도 있다’며 대북강경책 비판 여론을 ‘내부 분열’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보수 인사 및 단체들은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에게 ‘나라를 위협하는 종북좌파 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기도 했다. 지난 11월 29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종태 의원은 최근 일어난 촛불집회에 대해 “종북 좌파 세력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뉴시스」에 따르면,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은 최순실 게이트 규탄 촛불집회가 ‘터키에서 일어난 쿠데타 같다’며 비난했다.
종북몰이로 인한 무고한 피해자도 발생했다. 지난 2013년 1월,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당시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탈북자 유우성씨를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죄목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검찰이 제출한 증거자료는 조작됐고 조사 과정에서 협박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3. 국민의 눈과 귀를 막다

“강포한 자의 목소리만 크고, 약한 자의 소리는 신음조차 안 들린다.” 
-장윤환 전 한국기자협회 동아일보사분회장

1970년대 각 신문사에는 수시로 ‘협조’ 형식으로 각종 통제가 이뤄졌다. 특히 1974년 12월부터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던 「동아일보」의 광고주들에게는 정권의 회유·협박이 가해졌고, 그 결과 한 달 만에 해당 신문 전체 광고의 95% 이상이 없어졌다. 이외에도 당시 주요 언론사에는 중앙정보부의 기관원들이 상주하며 기사에 압력을 가했으며, 정부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는 「반공법」 위반 등의 명목으로 고소당하는 일이 잦았다.
현 정권 역시 정부와 관련된 언론의 의혹제기나 비판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정윤회 문건을 보도한 「세계일보」와 대통령의 사생활 의혹을 제기한 「산케이」 등을 고소했다. 또한, 언론노조가 지난 6월 3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 전화를 걸어 해경 관련 보도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프리덤하우스가 4월 발표한 언론자유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99개국 중 66위로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국민의 눈과 귀가 돼야 할 언론을 정권의 통제 속에 두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50여 년의 시대 간극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의 모습은 과거 군사정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한강의 기적에 대한 향수를 가진 60세 이상 세대에서마저 대통령 지지율이 10%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정권은 군사정권과의 ‘동일성’을 넘어 ‘퇴화’를 거듭하고 있는 모양이다. 더는 암울했던 시대의 데자뷔를 느끼고 싶지 않다.


연세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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