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사회를 좀먹는 독인가, 기회의 다른 이름인가

임채원(인예철학·13)

늦가을의 바람이 아직 살갑던 지난 17일 아침, 우리에겐 이미 추억이 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던 날이었다. 이날 수능 시험장에는 60만 명의 학생들이 모여 지난 12년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누군가에겐 성공을 보장받는 날이, 누군가에겐 내년을 기약하는 날이 되었을 것이다. 13년도 수능 이후, 응시자의 재수생의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으며, 이번 해 수능 응시 재학생에 대한 졸업생의 비율은 22%에 이르렀다. 그에 반해 전국 대학의 신입생 모집 인원은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재수생의 수는 앞으로도 상승세를 보일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려 왕조 때부터 입시로 신분이 결정되는 ‘입시 경쟁 사회’였다. 고려 광종 때, 쌍기의 건의를 수용하여 신분의 높낮이에 상관없이 학문 수준에 따라 관리를 임명했던 것이 과거제의 시초이다. 당시 고려 사회는 음서제로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귀족들에 비해, 나라의 인재로서 필요한 지식인 계층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초기 과거제의 슬로건은 노력하지 않는 자 보다 노력하는 자에게, 학문 수준은 높지만 사회에 진출할 기회가 없었던 이들에게 가능성을 주는 것이었다. 최근의 동향을 보면, 오히려 현대판 음서제라고 볼 수 있는 ‘특례 입학’ 제도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다. ‘정유라 이대 특례 입학 의혹’, ‘정치인 자녀 특혜 입학 의혹’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마치 부모세대의 권력이 자식의 권력을 보장하던 고려 시대와 같이, 부모의 권위가 자녀의 학벌을 보장하는 형세이다. 물론, 수시 제도의 모든 방침이 부정 입학을 허용하는 빈틈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학벌 경쟁 문화’가 존속하는 이상, 상위 계층의 특혜 입학 논란은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울 것이다. 
교육비의 측면을 보았을 때에도, 사교육은 수시 모집을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여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혼란과 비용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최근 학원가에서는 내신대비 학원과 면접학원이 이미 성행하고 있다. 일부 교육 업체에서는 입시 상담에 대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입시 컨설팅 전문가 교육 과정’을 편성하기도 한다. 이렇게 기업들의 전략이 시시각각 변하는 이유는 대학 내 입시 전형이 고도화되고 첨예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 대학의 입학처는 최대한 공평한 수시 제도를 제시하고 있지만, 학부모나 학생 입장에서는 스스로 전략을 짜기에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수시의 판국에 비해 수능 출제는 비교적 저렴한 EBS 교재의 수능 연계율을 70%이상 유지하고, 교재의 종류도 ‘수능 특강과 수능 완성’으로 단순화 하는 등 사교육비를 절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정성’이란 투자한 비용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공부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원하는 대학 입학의 문은 좁고,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넘쳐난다면,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합격하고 진 사람은 떨어지는 일이 당연한 수순이다. 정시와 수시 모집 어디에서든, 누군가는 합격해야 하고, 누군가는 떨어져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때 공정성을 유지하는 방법은 같은 무기로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환경을 주는 것이지, 지원자들의 눈을 흐려 경쟁을 세분화하고, 복잡화 하는 것은 취지에서 멀어진 것이다. 아직까지 수능이 무능하다고 단정짓기 보다는 진정 다른 대안들이 공평한가에 대해서 진단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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