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갈 길 먼 장애인을 위한 인터넷 강의

지난 7월, 영화 『부산행』의 일반 버전과 배리어프리 버전이 동시 개봉했다. 배리어프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으로, 배리어프리 버전의 영화는 일반 버전과 달리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서비스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서비스를 제공한다. 개봉 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인 만큼, 영화의 동시 개봉은 장애인뿐 아니라 사회 안팎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배리어프리 개념이 영화계에서까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의 배리어프리는 잘 실현되고 있을까? 우리신문은 인터넷강의를 주제로 그 현황에 대해 알아봤다.

 

증가하는 인터넷 사용, 여전히 어려운 장애인

 

웹 기반의 교육트렌드에 발맞춰 교육에 인터넷강의를 활용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인강으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으며, 입시준비나 자격증 취득을 위해 인강으로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형 무크(아래 K-MOOC, Korea-Massive Open Online Course)가 있다. K-MOOC는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로, 현재 20여 개의 국내대학이 참여하고 있다. 특정 대학에서는 K-MOOC를 통해 학점도 인정받을 수 있다. 이화여대 홍재희(행정·15)씨는 “두 개의 교양과목을 K-MOOC를 통해 수강한다”며 “인기가 많아 신청하기 힘든 과목이 온라인으로 열려 수강신청 부담도 덜하고, 듣고 싶은 강의도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인터넷 사용률 역시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5년 장애인의 인터넷 이용률은 66.8%로, 2010년의 53.5%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인터넷상의 기반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취재 결과, 장애인들은 인강을 듣기 위해 인터넷을 켜는 것부터 인강을 수강하는 것까지 매 순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용자 친화적(User-Friendly)이지 못한 웹사이트와 인강

 

장애인은 크게 ▲웹사이트 접근성(아래 웹접근성)이 부족한 인강사이트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없는 인강으로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웹접근성이란, 사용자가 기술과 환경에 관계없이 웹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를 의미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지난 2월 발표한 「2015 정보접근성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700개 웹사이트의 평균 웹접근성 점수는 83.2점으로 전년 대비 3.8점 향상됐다.
그러나 여전히 ‘대체텍스트* 항목’에서의 웹접근성을 준수하지 못하는 웹사이트가 많다. 시각장애인은 화면을 설명해주거나 내용을 읽어주는 프로그램과 보조기기를 이용해 인터넷을 한다. 하지만 스크린리더 등의 프로그램은 텍스트 형태만을 읽을 수 있다. 즉 창이나 버튼이 이미지 형태인 경우, 사이트 측에서 대체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으면 시각장애인은 그 기능을 찾기 힘들다. 이에 대체텍스트의 부족은 시각장애인에게 치명적이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 A씨는 “시각장애인은 웹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하는 것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어렵게 웹사이트에 접속해 로그인을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계속된다. 시‧청각 장애인이 인강을 어려움 없이 수강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가 부재한 것이다. 다음은 인강을 수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은 세 장애학생의 사례이다.

#사례 1: 인강 하나 듣기 참 힘드네
시각장애인들은 인강을 수강하기 위한 첫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각장애인 김진영(사회·13)씨는 로스쿨 준비를 위해 인강사이트에서 인강을 수강한 적이 있다. 하지만 김씨가 선택한 ‘ㅁ’ 인강사이트에서는 강의결제화면에 적절한 대체텍스트를 제공하지 않아 음성프로그램으로 강의결제를 할 수 없었다. 이에 김씨는 본사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직접 강남 본사로 와서 결제하라’는 답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결제는 했지만, 인강을 듣기 전부터 김씨는 난관에 부딪혔다. 시각장애인이 이용하는 정보통신 보조기기와 음성프로그램은 이미지나 PDF 형태로 저장된 글자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강에서 제공하는 보조 자료는 PDF 파일이었고, 이에 김씨는 수업자료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인강을 수강하는 과정도 험난했다. 인강에서는 많은 교사가 판서를 하며 강의를 진행한다. 하지만 판서에 대한 화면해설이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각장애인에게 교사의 음성과는 별개로 화면해설은 필수적이다. 앞을 볼 수 없기에 상황이나 행동의 변화를 설명해주는 화면해설이 없다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김씨는 “교사가 ‘여기 이거’라는 표현을 쓰며 판서한 내용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며 “고3 때부터 인강을 수강했는데 늘 맥락을 따져가며 힘들게 듣는다”고 말했다. 특히 김씨가 이용한 인강사이트는 장애인에게도 두 번의 반복재생 기회만을 제공해, 김씨는 수강하는 데에 더 어려움을 느꼈다.

#사례 2: 듣긴 듣는데 배우는 게 없어요
우리대학교에 재학 중인 김범수(기계·15)씨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다. 김씨는 인강으로 물리와 수학 등 대학기초과목들을 수강했지만, 자막이나 수화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아 불편함을 겪었다. 청각보조기구를 사용하더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반복해서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김씨는 “EBS를 통해 수능 공부를 할 때는 자막이 어느 정도 제공이 돼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며 “대학 내 인강에도 자막 등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제공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리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 이주희 연구원은 “청각장애학생이 개인적으로 인강을 듣고 싶어 해서 속기사를 지원해준 적은 있다”며 “학생이 요청한다면 최대한 지원을 할 것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학교에 정식으로 등록된 과목이 아닌 외부사이트의 인강에 대해 학교 측의 전적인 지원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연구원은 “인강을 운영하는 기관에서 어느 정도 장애학생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자체 인강서비스를 운영하는 학교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취재 결과, 제작 단계부터 장애학생을 고려한 인강 서비스는 없었다. 이화여대 장애학생지원센터 관계자는 “현재 시각장애학생을 위한 화면해설 서비스가 포함된 K-MOOC 인강은 없다”며 “청각장애학생이 요청하는 경우 일부 인강에 자막을 입히는 것은 돕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장애학생지원센터 관계자 역시 “인강 자체가 서비스를 포함하고 있는 경우는 없다”며 “장애학생의 지원요청이 들어오면 도우미 또는 속기사를 통해 최대한의 지원을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시·청각 장애학생의 인강 수강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제작 사후에 이뤄지고 있다.

#사례 3: 결국 인강을 떠나는 장애인들
청각장애인 윤모씨는 인강을 통해 5급 공무원 공채시험(행정고시)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는 일대다로 수업이 이뤄지는 강의실보다 음질도 좋고 놓친 부분을 반복해서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인강을 선택했다. 장애인에게 할인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었다. 하지만 윤씨가 이용하는 ‘ㅂ’인강사이트에서는 가격할인만 제공할 뿐, 따로 자막이나 수화 등 청각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보청기를 통해 인강을 반복적으로 듣더라도 알아듣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결국 윤씨는 강의보다는 책에 의존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는 “비장애인 학생들에 비해 인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적어 불안감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책으로만 공부하면 최근의 트렌드나 예상문제를 파악하기 힘들다”며 “비장애인보다 시간을 더 들여서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장애인에게 인강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존재인 듯하다.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을 위한 인강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적 기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아래 장차법)」 제21조에서는 장애인의 정보 접근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이 정보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국가정보화기본법」 제32조 역시 ‘국가기관 등은 인터넷을 통하여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고령자 등이 쉽게 웹 사이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여야 한다’며 웹접근성 준수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기반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로 인해 피해를 당한 사람이나 피해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재는 대부분 인권위의 시정권고 정도에 그친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 A씨는 “웹접근성을 준수하지 않아 인권위에 제소가 되더라도 합의로 끝나고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규정이나 지침이 있지만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법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 역시 존재한다. 최근 인강을 활용한 학점은행제를 통해 원격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원격대학형태의 평생교육시설은 총면적 2천 500㎡ 이상 규모의 평생교육시설만 해당한다’는 예외조항이 있어, 많은 기관들이 웹접근성을 보장하지 않는 상황이다. A씨는 “조항에서 제시하는 시설 규모를 갖추지 않은 원격교육기관이 더 많다”며 “이 경우 웹접근성 준수의무가 없어 시각장애인이 강의를 수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격교육기관의 인강을 수강하는 시각장애인이 대체텍스트를 통한 설명의 부족으로 필수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를 못 풀거나, ‘다음’ 버튼을 못 눌러 출석 인정이 안 된 사례도 있었다.

 

“장애인 인강 수강을 위한 예산 지원 늘어나야”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인강사이트들은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충분히 마련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확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표적 인강사이트인 EBS는 현재 별도의 ‘장애인 서비스’를 통해 화면해설, 자막 및 수화방송 서비스를 지원 중이다. 하지만 수화 및 화면해설 방송은 예산상의 이유로 많이 제작하지는 못하고 있다. EBS 장애인 서비스 총괄 및 예산 담당 정혜영 과장은 “화면해설은 한 편을 제작하는 데에 40만 원가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 B씨도 “수화나 화면해설 서비스는 별도의 영상과 음성 편집이 필요하다”며 “인력과 시간 역시 자막서비스보다 많이 소요된다”고 밝혔다.
B씨는 예산 배정에 대해서 “장애인 서비스는 모든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 수익 창구의 역할을 하는 서비스는 아니다”라며 “회사는 어느 정도의 수익을 추구해야 하기에 장애인 서비스 예산 배정에 큰 기대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B씨는 “부족함이 있지만 교육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인지하고 최대한 장애인의 목소리를 서비스에 반영하고자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EBS가 아닌 다른 인강사이트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더 부족한 상황이다. 예산을 마련해 서비스를 제공하기에는 수요가 부족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이유였다. 기자가 사설 인강사이트 10곳에 문의한 결과, 가격할인 이외에 자막이나 수화, 화면해설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는 자격증 및 고시를 위한 강좌는 물론이고 중·고등 강좌에서도 동일했다.

 

‘특별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웹사이트 및 인강 제작자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다. 장차법과 웹접근성 준수의무를 ‘제약’이 아닌, 모두가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약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웹접근성을 준수하는 웹사이트 구현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님에도 많은 인강사이트가 이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 웹접근성평가센터 측은 “웹접근성 준수를 위한 대체텍스트 마련 등의 조치가 수고스러울 수는 있지만,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장애인의 인강 수강에 대한 지원도 마찬가지다. 인강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는 교사의 음성과 행동은 앞을 보지 못하거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애인에게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장애인도 큰 어려움 없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인강제공자 사이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10개의 인강업체는 모두 추후 서비스 제작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미정’이라는 대답을 했다.
한편,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웹사이트와 인강 제작 첫 단계에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가령 인강 제작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이 들어갈 시간을 고려한다거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을 대본과 동시에 제작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시각장애인복지관 관계자 A씨는 “제작 후에 콘텐츠를 변경하거나 사후적으로 서비스를 추가하는 조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즉, 웹사이트와 콘텐츠의 첫 기획 단계부터 ‘누구나, 당연히, 어려움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혹시 당신도 ‘장애인이 인강을 듣는 거 자체가 무리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은 욕구를 지니고 살아간다. 장애인이 혼자서 이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회의 인식과 제도, 그리고 기술이 이를 도울 수는 있다. 장애인이 배움에서 비장애인과의 장벽을 느끼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적 기반 마련과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장애인도 어려움 없이 교육받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돼야 한다.

*대체텍스트 : 장애인이 인터넷이나 앱상의 콘텐츠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글 주은혜 기자

gracecho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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