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잔재하는 학벌사회를 되짚어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캠퍼스를 누비던 새내기 A(20)씨는 매일 오전 6시 알람에 맞춰 일어나 독서실로 향한다. 머리를 질끈 묶고, 편한 복장에 독서실로 향하는 A씨의 모습은 여느 고3 수험생의 모습과 흡사했다. 반수 이유를 묻자 A씨는 “지방에 위치한 대학에 입학한 뒤, 학력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반수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A씨는 “대학생활을 즐기는 친구들 속에서 다시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힘들다”면서도 “나의 선택으로 수험생이 됐기 때문에 힘들어도 주변에 내색하지 못한다”고 했다. 해가 뜨기 전 독서실에 들어갔던 A씨의 일과는 어둑어둑해진 밤,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싣고서야 비로소 마무리됐다.

지난 4월, 학벌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활동하던 시민 단체 ‘학벌 없는 사회’가 해산됐다. 해산문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과거에 비해 자본의 독점 지배가 심화되고, 더 이상 학벌이 권력획득의 주요 기제로 작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해산한다는 의견을 알 수 있다. 또한, KDI 김희삼 연구위원이 발표한 「사회 이동성 복원을 위한 교육정책의 방향」의 2013년 ‘KDI 행복연구’ 설문에 따르면 청년층은 교육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결국 현 사회에서 교육이 과거에 비해서 계층 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고,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경제력, 자본과 같은 다른 요소들이 교육을 통한 계층이동을 예전같이 자유롭게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험생으로 돌아가는 대학생들의 수는 줄지 않는다. 이는 졸업생의 대학수학능력시험(아래 수능) 응시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14년도 졸업생의 수능 응시 비중은 19.61%에서 2015년 20.53%, 2016년 21.51%로 해마다 늘고 있다.

반수생 역시 마찬가지다. 종로학원이 9월 모의평가와 6월 모의평가 응시자수의 차이를 통해 반수생 비율을 추정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반수생의 수능 응시 비중은 2014년 10.1%, 2015년 10.9%, 11.4%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즉, 최근 수능 응시자 5명 중 1명이 ‘N수생’인 것이다.

입시의 재기회, 편입
그러나 점차 축소되는 편입시장

 

현재 우리나라 교육제도에서 대학교 입학을 위한 제도는 크게 수능과 편입학제도(아래 편입)가 있다. 편입의 경우 일반편입과 학사편입으로 나뉜다. 편입은 해당 학교에 3학년으로 입학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어 이미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 사이에서 선호돼 왔다. 편입에 대해 위드유편입학원 김은주 차장은 “편입제도는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나 수능성적에 맞춰 진학한 학교가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들에게 재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라며 “재수와 달리 2년이라는 시간도 절약하고 비용도 더 절감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영편입학원 영어강사 이진희씨 역시 “학교별로 시험이 따로 진행돼 수능보다 여러 번의 기회가 있다”며 “몇 개의 과를 제외하고서는 과 선택도 비교적 자유롭다”고 전했다. 원하는 대학으로 편입했다는 B씨는 “편입 후 학벌에 대한 자격지심이 사라져 새롭게 목표설정을 하고 도전할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 2012년 4월, 교육과학기술부는 편입학 정원을 축소한다는 내용의 ‘편입학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축소의 이유는 지역 대학의 우수 인재가 수도권으로 유출된다는 것이다. 위드유 편입학원에서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일반편입 모집인원 1만 869명에 응시자 17만 2천167명에서, 2013년 모집인원 6천132명에 응시자 12만7천563명, 2016년 모집인원 4천954명에 응시자 7만4천484명으로 최근 들어 모집인원과 지원인원 모두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김영편입학원 마케팅전략팀 김형민 팀장은 “편입학 개선안에 따른 수험생들의 지원 위축과 더불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결과가 동시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또한, 영어강사 이진희씨는 “현재 편입시장 축소 원인으로는 모집인원 감소도 있지만 시험유형의 변화도 크다”며 “예전에는 편입영어만 준비하면 학교별로 거의 모든 학교에 지원 가능했는데 자체적으로 영어고사를 치던 대학 중에 공인영어로 대체하는 학교가 많아지면서 편입영어가 갖는 장점이 사라져 수험생도 줄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5학년도 우리대학교에 편입한 C씨는 “편입을 통해 학교에 들어올 당시 이미 편입축소가 이뤄지던 때라 경쟁이 치열했다”며 “편입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줄어드는 편입기회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입시의 또 다른 문, 반수
고3으로 되돌아가는 대학생들


 

편입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에 재도전하는 방법으로 ‘반수 열풍’이 불고 있다. 반수란 재수와 달리 대학생 신분으로 대학입시에 재도전하는 것을 말한다. 종로학원의 통계에 따르면 반수생은 최근 3년간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2017학년도 수능 기준 반수생은 전체 수험생의 약 11%를 차지한다.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다 반수해 우리대학교에 입학한 정승연(국문·16)씨는 “수능 결과에 대한 아쉬움으로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다시 대학입시를 준비했었다”고 전했다. 대형입시종합학원의 강사 D씨는 “대학의 등급을 한 단계라도 높이기 위해 반년을 투자하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현 상황을 설명했다.
수능에 재도전하는 반수생 중 지방대 학생들이 많긴 하지만, 서울 소재 대학이나 최상위권 대학 학생들의 반수도 크게 늘고 있다. 청평오르비 기숙학원 이은성 원장은 “상위권 대학 학생의 반수 문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라며 “특히 자연계열은 의대 입학을 위해 다시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답했다.

그러나 반수열풍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도 매우 크다. 우리대학교 심연식 교수(교과대·교육행정)는 “한 명이 정규 재수학원에 등록할 경우 연 평균 1천500만 원이 소요된다”며 “이러한 직접적인 비용은 1조 5천억 정도로 추산되나 간접적인 비용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덧붙여 심 교수는 “대졸 초임 연봉을 2천 400만 원으로 추산했을 때, 간접비용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은 3조 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즉, 심 교수가 추산한 값에 따르면 재수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4조 5천억 원이 넘는다는 것이다.

반수생 개인의 추가적인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정씨는 “반수를 하면서 이전 대학의 입학금과 한 학기 등록금, 재수학원 비용, 새로 입학한 대학의 입학금과 등록금까지 지불하며 금전적인 부담을 느꼈다”고 밝혔다.
심 교수는 “금전적인 손실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써야 할 에너지를 대학입시에 쓰는 것이 더 큰 손실”이라며 “재수 수요를 줄이기 위한 사회의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최근 사회가 점차 다양해짐에 따라 학벌보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이 요구되고 있고, 또 부모의 재력에 따른 경제력 차이가 커지고 있다. 심연식 교수는 학벌 사회에 대해 “과거에는 이른바 SKY대학(▲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을 졸업하면 좋은 직장을 얻을 확률이 높았지만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고 전했다.

하지만 심 교수는 “‘학벌 없는 사회’의 해체는 학벌만이 권력획득의 필요한 요소가 아님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 뿐 학벌 없는 사회가 됐다는 선언은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권력이나 사회적 지위를 얻는데 학벌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이지 무력화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로스쿨 입학생의 경우 여전히 SKY학부 출신이 50%이고, 사법시험의 경우에는 SKY학부 출신이 전체 정원의 70%에 달한다. 이처럼 학벌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여러 수치는 대학생들을 수능 고사장으로 이끌고 있다. 물론 입학시험은 개인의 노력에 따라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정당한 수단 중 하나이며 학력은 개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하지만 스스로 고3으로 돌아가는 대학생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의 입시와 학벌 사회에 대해 다시금 고민해 볼 시점이다.



 

함예솔 기자 yesol54@yonsei.ac.kr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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