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군주에 대한 고찰

벌써 두 번째 만화칼럼을 쓴다. 안타깝게도 이번 주제 역시 정부다. 먼지 낀 편집실에 앉아 고작 세 치 혀를 날름 세워 조국을 스나이핑하려니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 하지만 어쩌랴, 눈 감고 귀 막기에는 우리 현실이 너무나 朴복하지 않은가. 이번 시즌에는 시사이슈칼럼을 쓰겠다고 호언장담했던 기자는 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지면을 채운다. 
이번에 소개할 만화는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다. ‘네 딸’이란 아르미안 왕국의 왕녀 네 자매를 가리킨다. 개중 제1왕녀이자 통치자인 마누아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군주의 표본이다. 그 외 아름다운 스와르다, 운명의 딸 샤르휘나 등 매력적인 자매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하지만 우리의 타이틀이 ‘군주상’인 만큼 마누아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마누아는 군주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인물인 것처럼 보인다. 아르미안의 여왕을 의미하는 ‘레·마누’와 이름이 비슷한 데다 실제로 혹독한 군주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누르는 일이 익숙하다. 최우선순위는 항상 조국이다. 그녀는 아르미안을 위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아끼는 동생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그녀는 딱 한 번 사사로운 감정을 정치에 개입한다. 귀족의 대표와 같은 장로회를 제압할 때다. 장로회는 과거 그녀의 친부를 내쫓고, 친모인 전 여왕을 압박해 다른 남자와의 동침을 강요했다. 이에 앙심을 품고 있던 마누아는 아르미안의 부국강병을 도모하는 동시에 장로들의 숙청을 실행해 나간다. 

하지만 이는 장로회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집단이었더라면 시행하지 않았을 계획이다. 그들이 왕실 중흥의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에 제약을 건 것이다. 마누아는 절대 개인사만으로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 그녀는 개인이 아니라 오로지 일국의 군주로서 삶을 살아간다.

아르미안의 이야기 속에서 시민은 등장하지 않는다. 마누아가 시민을 이용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철저하게 위정자의 희생을 통해 조국을 지킨다. 그녀 손에 아르미안을 떠나야만 했던 세 동생 모두 왕실의 일원으로서 조국을 지킬 책임이 있었다. 물론 냉혹한 그 모습이 마냥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제 주변 챙기겠다고 시민사회를 고통스럽게 하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그리 나쁜 일만도 아니다 싶다.


마누아의 일생은 그녀를 대신할 여왕이 나타나면서 끝난다. 그녀는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왕좌를 넘겨준다. 군주로서의 운명이 끝나가고 있음을 예견하고 인정한 것이다. 비록 가슴속에는 자신을 여기서 끝내려는 운명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들끓었지만 마누아는 아르미안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현실 애인 만나 고생하느니 2D 덕질*하는 편이 좋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거듭된 소개팅 끝에 짝 찾기에 실패한 지인A의 푸념이었겠지만, 이 2D찬양론이 연애를 넘어 정치현실에도 적용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봉건사회는 절대 사양이다. 다만 현실이 이럴진대 마누아 같은 여왕 덕질* 쯤은 해도 되지 않을까.

*2D덕질: 만화 속 캐럭터에 열광해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찾아보는 행위

장혜진 기자 
jini14392@yonsei.ac.kr

<자료사진『아르미안의 네 딸들』 >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