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아픈 청춘들의 자화상


[위기의 세대-기획의도]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 현실에서 여유는 몇몇 이들의 특권일 뿐이다. 
우리나라 시장경제를 이끈다는 중년층. 이 사이에 청년과 노인이 낄 자리는 없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길은 없나?  위기의 세대. 청년과 노년층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 사회에서 지겹도록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근래 화제가 됐던 ‘수저 담론’ 얘기를 한 번 더 꺼내볼까 한다. 지금까지 수저 담론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수저를 물려준 부모님 세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느낌이 든다. 하지만 기성세대에만 초점을 맞춘 담론은 결코 힘든 청년들의 삶을 직접 해결해 주지 못한다. 이것이 청년들이 직접 그들만의 담론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이유다. 

 

 계속해서 고달픈 청년들, 출구는 어디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은 나는 돈이 없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돈도 시간도 다 가진 이는 건물주밖에 없는 것 같다. 
-『흙흙청춘』 中

 

지난 10월 6일 「경향신문」은 창간 70주년을 맞아 지면 1면에 컵라면과 삼각김밥 사진을 올리며 ‘이 시대 고달픈 청년들의 상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엄숙한 일간신문 위에 라면 국물과 김 부스러기를 놓는 파격적인 시도는 청년 문제가 더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음을 의미했다.

가장 근본적인 청년 문제는 역시 의식주와 관련돼 있다. 오늘날 청년들의 삶에서는 따뜻한 밥 한 끼 대신 1천500원짜리 밥버거와 차가운 편의점 도시락을  주식(主食)으로 삼으며 알바를 전전하는 생활이 반복된다. 이는 결국 청년 세대가 기본소득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일자리를 창출해 청년 소득을 높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청년 일자리 창출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은 높은 비용이 드는 데에 비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 왔다. 이에 『흙흙청춘』을 기획한 인문학협동조합 최병구 총괄이사는 우리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청년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청년수당 정책을 시행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럼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핵심을 놓치고 있다. 정치권은 청년 문제를 해결한다는 목적 아래 청년위원회, 각종 정당의 대학생위원회 등을 꾸려 청년들을 정치에 참여시켰고, 여러 청년 정치인을 양성해 냈다. 새누리당은 지난 2015년 전체 의원 중 일부를 의무적으로 청년으로 공천하자는 혁신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일부 청년 정치인은 그 특성상 진짜 청년들의 이야기를 대변해 내기 힘들다.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틀 안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자주적인 미래세대로 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기성 정치권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문화가 청춘을 그려내는 방법도 변화하고 있다. ‘청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더는 밝지 않기에, 오늘날 드라마나 영화에서 밝은 표정으로 캠퍼스를 걸어가는 ‘청춘 예찬’의 모습은 사라졌다. 이런 흐름 속에 오늘날 청춘들의 문화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자조적인 성격이 강해졌다. 가톨릭관동대 박준우(의료경영·16)씨는 “인터넷 문화에서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한 자조적인 유머가 인기를 끈다”며 “청년들이 힘든 현실에서 벗어난 도피처로 인터넷의 B급 문화를 택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청년 담론에는 청년이 필요하다

 

사실 우리 모두가 겪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어려움을 토로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살기에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의 삶.
우리는 자조적인 목소리로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른다. 
-『흙흙청춘』 中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청년 담론은 기성세대에 의한 동정과 연민이 주가 돼 왔다. 몇 년 전 유행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연발하는 힐링 문화의 유행도 이러한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모든 힐링 담론의 결론은 결국 ‘희망’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하지만 감정이 주가 되는 담론은 절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힐링 담론은 문제의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다. 단지 외부에서 청년의 상처를 덮어 보이지 않도록 포장할 뿐이다. 
기성 언론이 청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기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청년은 가난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오히려 기형적인 청년 담론을 양산해내고 있다. ‘청년 문제’를 사회적인 논제로 끌고 오는 과정에서 언론의 프레임은 이를 세대 갈등으로 비추는 경향을 보였다. 청년의 고민은 현재 한국 사회 전체의 맥락을 바탕으로 이해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그들의 청년기’에 비추어 현재 청년 문제를 진단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바람직한 청년 담론을 시작하려면 모두가 청년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세대 간의 이해와 연대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당사자인 청년들 스스로가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주거, 노동 등의 문제에서 정책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청년유니온’과 같은 단체가 생겨났다. ‘청년유니온’은 청년들의 ▲고용안정 ▲노동권 보장 ▲생활안정 등에서 입법 활동과 캠페인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론장도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지난 2012년 창간돼 우리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솔직한 생각들을 다루고 있는 잡지 「월간잉여」가 대표적인 사례다. 「월간잉여」 최서윤 편집장은 “청년들에게 자신의 삶을 거리 두고 보는 경험과 자신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진지하게 읽히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며 “잡지를 통해 다양한 청년들의 목소리를 접할 수 있어 반가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흙흙청춘』 역시 청춘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아낸 공론장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청년의 입장에서 세대 경험을 담론화하는 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이 책은 현재 청년 담론이 처한 문제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책의 내용이 청춘 중에서도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전체 청년 중 1/3가량에 달하는 고졸 학생들을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에만 국한돼 있는 담론은 그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흙흙청춘』으로 시작된 청춘들의 문제 제기를 바탕으로, 전체 청춘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성토장이 나오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청년들이 ‘헬조선’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청춘들은 ‘깊은 빡침’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청춘에게 가해져야 할 것은 동정이나 연민 따위가 아니다. 청년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청년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청년은 불쌍해서 지원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를 누리는 주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청년 정책은 청년 세대에 대한 연민으로 출발한 지원책이 돼서는 안 된다. 청년을 특별한 존재로 프레이밍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 생각할 때, 비로소 청년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일 것이다.

 

최형우 기자 
soroswan@yonsei.ac.kr

<자료사진 교보문고, 월간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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