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청년실업률’은 8.5%로,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 통계에서 제외된 취업준비생과 통계적으로 취업자에 포함된 아르바이트생까지 고려하면 실제 청년들이 체감하는 취업난은 그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취업률이 최저치를 기록한 가운데 특히 인문계열 학생들의 취업난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난제로 남아있다. 지난 2014년 처음 등장한 신조어 ‘문송합니다’ 즉 문과생이라 죄송한 현실은 여전히 우리사회에 팽배해있다.

 인문계열 학생의 취업 지표 현실
기업들은 어떤 채용 공고를 내나

한국교육개발원의 정기간행물 『교육개발』 190호에 따르면, 2014년 일반대학 취업률은 ▲의약계열 72.1% ▲공학계열 65.6% ▲사회계열(상경계열 포함) 54.1% ▲자연계열 52.3% ▲교육계열 48.7% ▲인문계열 45.5% ▲예체능계열 41.4%로 인문계열 취업률은 공학계열 졸업생들의 취업률에 비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우리신문은 실제로 취업에서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불이익이 있는지, 현재 취업시장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자 지난 10일을 기준으로 온라인 취업 포탈 사이트 ‘잡코리아’에서 정규직 신입 채용 공고 245개를 전수조사 했다. 잡코리아는 해당 날짜에 등록된 취업공고 수가 가장 많은 중개사이트였다.
조사결과, 전체 31%에 달하는 75개 기업의 경우 인문계열 졸업생은 사실상 지원이 불가했다. 인문계열 졸업생이 지원 가능한 나머지 170개 공고에서도 인문계열 단일전공자가 지원할 수 있는 기회의 폭은 매우 적었다. 170개 공고조건을 조사한 결과 ▲전공무관 82개 ▲관련 자격증 소지자 우대 58개 ▲상경계 우대 12개 ▲특정 인문계열 학과(외국어학과, 교육학과 등) 우대 12개 ▲특정 인문계열 학과 지원 가능 4개로 밝혀졌다. 지원 조건이 ‘전공 무관’으로 표시돼 있더라도 이공계 우대 조건이 따로 명시돼 있으면서 특정기술을 요구할 경우는 문과대가 지원 불가능한 기업으로 분류했다.
뿐만 아니라 인문계열 졸업자가 지원 가능한 69%의 기업 공고조건마저도 자세히 살펴보면, 인문계열의 실질적인 채용 가능성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관련 자격증 소지자 우대’ 항목의 경우 CCNA 자격증 소지자를 비롯해 C++, Unix 등 소프트웨어 운용 가능자에 대한 우대가 과반수로, 인문계열 단일전공만으로는 습득이 어렵기 때문에 사실상 이공계 우대와 다름없는 조건들이 많았다. 또한 기업의 업종에 관계없이, 재무나 기획, 회계 관련 부서를 모집하는 경우 상경계열을 우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인문계열 출신 지원자를 우대하는 경우도 대부분은 특정 외국어 구사능력이나 교육 자격증 관련으로만 한정돼 있었다.
이에 취업준비생인 김민영(심리·10)씨는 “아예 문과대를 배제한 채용공고들 때문에 문과대 학생으로서 겪는 고충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학생 때는 학문의 정수인 인문학을 배우는 입장에서 자랑스러웠다”며 “그러나 취준생이 된 뒤에는 인문학이 허울 좋은 쓰레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고 토로했다. 임용고시를 염두에 두고 있는 유미주(영문·15)씨는 “문과생들 중 다수가 CPA나 행정고시처럼 학과에 구애되지 않는 시험을 통해서 취업할 길을 찾으려 한다”고 전했다. 김기훈(컴과·14)씨의 경우 올해 국문과에서 컴퓨터과학과로 전과했다. 김씨는“‘LG전자’에 근무하는 멘토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문과대생은 아예 서류를 보지도 않는다는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며 “원래 전공에 크게 흥미가 없던 나로서는 졸업하면 손에 남는 것이 없을 것 같아 전과를 택했다”고 전했다.

일자리 불균형, 이공계로 기울어진 취업시장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125개사를 대상으로 ‘채용 시 이공계 출신 지원자 선호 여부’를 조사한 결과 응답한 기업의 62.4%가 이공계 출신 지원자를 ‘선호한다’고 답했다. 조사결과 ▲제조/생산 ▲연구개발 ▲IT/정보통신 분야 순으로 이공계열 구직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이는 특정 학과를 전공하지 않고서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업무 능력을 갖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삼성전자서비스 2017년 대졸 신입사원 공고’에 따르면 지원 자격이 ‘전자 · 통신 · 컴퓨터공학 관련 학과 전공자’로 제한되는데, 업무가 전문성을 요구하는 만큼 타과 전공생들의 지원 배제는 필연적이다.
이러한 이공계열 직종의 전문성 선호 현상은 당분간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 산하 조사기관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2014년과 2024년 사이에 공학계열에서는 구인 인력수요가 인력공급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인문계열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인문계열 10만 1천명 ▲사회계열 21만 7천명 ▲사범계열 12만명 ▲자연계열 5만 6천명의 인력이 초과 공급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공학계열은 21만 5천명 ▲의약계열은 3천명의 인력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으로 예측됐다.
최근에는 이러한 이공계 선호 현상이 인문계열 출신자 비율이 높은 직군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금융, 언론, 출판 등은 전통적으로 인문계열 출신들의 안마당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직종들은 최근 ‘기업 내 다양성’을 추구함에 따라 이공계열을 포함해 다양한 전공자들을 뽑으려는 경향이 일고 있다. 우리은행 인사과 권영민 과장은 “업무를 할 때에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다양성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특정 전공을 선호하기보다는 다양한 전공의 사람을 뽑는 것을 선호한다”며 “그러나 이미 기업 내에 인문계열 인물이 많고, 그에 비해 이공계열 지원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인재의 다양성 측면에서 채용 시에 이공계열 졸업자들을 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애시당초 인문계열 학생들이 이공계열 직업을 갖는 데에 한계가 있는 가운데 인문계열 직종마저 이공계 우대채용을 하면서 인문계열 학생들의 취업난은 더더욱 어려워졌다.

인문학, 정말 취업에는 쓸모없나?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도 최근 기업에서 인문학을 취업에 도입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채용 과정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하는 인재선발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에서는 지난 2014년부터 인문학 프로젝트인 ‘지식향연’을 진행하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서는 강연이나 독서 퀴즈 등 인문학 교육을 진행 할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인재들에게는 신세계그룹 계열사 신입 공채 시 서류전형과 1차 면접 과정을 면제받는 특혜가 제공된다. 신세계 인력개발과 관계자는 “인문학적으로 소양이 풍부한 학생들을 선발하고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 프로그램의 취지”라며 “인문학적 인재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채용에까지 연계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빅데이터 회사 ‘다음소프트’는 언어학과 사회학, 인류학 전공의 직원들을 다수 채용하고 있다. 다음소프트의 송길영 부사장은 자신의 저서 『여기에 당신의 욕망이 보인다』에서 “이공계적 요소들은 수단일 뿐 목적은 인문학에 있다”며 세상의 흐름을 읽기 위해서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매년 7~8만명 가량의 취업준비생이 응시하는 삼성직무적성검사(GSAT)가 2013년부터 인문계와 이공계 시험 문제의 구분을 없애고 역사 등 인문상식 문제를 늘렸다는 사실 또한 인문학의 본래적 가치에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뿐만 아니라, 인문학은 다양한 콘텐츠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고전문학과 콘텐츠’ 과목을 강의하고 있는 국문과 허찬 강사는 “인문학연구자들의 연구방법과 콘텐츠 개발의 과정이 매우 유사하다”며 “결국 인문학 연구성과의 토대 위에서 대중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동서양의 오랜 이야기들도 새로운 콘텐츠로 개발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를테면 내년 방영 예정인 드라마 『역적 홍길동』 또한 홍길동을 둘러싼 문헌 연구에 기반한 것이다. 실제로 KBS에서 PD로 근무하고 있는 박정환(사학·06)씨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 전공이 도움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사학과 재학 시절 사료를 다루고 그에 대한 생각을 도출하던 경험이 시사 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고 컨텐츠 개발의 발판이 된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가치를 담고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에 팽배한 이공계 선호현상으로 인해 문과생들은 취업의 불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듯 ‘문송한’ 현실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취업시장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할 것이다.


최서인 기자
kekecathy@yonsei.ac.kr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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