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문학 교육의 현황을 진단하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고 진리를 좇는 고등교육기관이다. 학문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인문학은 인간 본연의 가치를 탐구하는 근본적인 학문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돈이 되지 않는 학문, 이학은 돈이 되는 학문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는 가운데 문과는 죽이고 이과는 살리는 정책들도 나오고 있다. 현재 우리 대학사회에서 ‘인문학의 상아탑’은 무너진 지 오래다.
 

대학가의 문과 ‘밀고’, 이과 ‘당기기’

▶▶교육부가 대학에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자 대학이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프라임 사업을 통보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학 교육은 기술의 발전을 추구하는 현실과 맞지 않는 학문으로 여겨지면서 교육부조차 프라임 사업을 추진하는 상황이 됐다. 프라임 사업은 이공계열을 확충하고 인문계열을 축소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결국 이공계에 집중된 취업시장에 학문의 전당인 대학이 따라가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지난 3월 우리대학교 원주캠은 교육부의 프라임사업에 참여를 결정했지만 최종 탈락했다. <관련기사 1768호 4·5면 ‘프라임·코어사업, 대학사회에 닥친 위기인가 기회인가’> 한편 ▲건국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한양대 에리카 캠퍼스 등 21개 대학은 프라임 사업에 선정돼 정원감축과 학과통폐합 등을 실행하게 됐다. 프라임 사업 선정 이후 약 6개월이 지난 현 시점의 대학가는 프라임 사업 이행으로 분주하다. 현재 건국대는 프라임 사업 선도학과인 ‘KU융합과학기술원’을 통해 ▲미래에너지공학과 ▲화장품공학과 ▲줄기세포재생공학과 등 8개의 학과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건국대는 오는 2017학년도부터 ▲경영대 ▲문과대 ▲상경대 ▲예술디자인대 등의 인문계열 전반에서 정원 감축을 하고, 신설된 프라임 학과와 ▲기계공학과 ▲전기공학과 ▲화학공학과 등 이공계열에서 정원을 늘렸다. 이에 해당 학과들에 신입생을 약 333명을 추가로 선발할 예정이며, 2018학년도까지 최대 480억 원을 지원받는다. 
숙명여대 또한 4개 프라임 관련 학과가 신설됐다. 숙명여대 또한 전체 입학정원에서 인문계와 예체능계 정원을 각각 159명, 33명씩 감축했고, 자연계의 정원 192명을 증가시켰다. 이처럼 현재 대학들은 프라임 사업을 통해 문과는 축소하고 이과는 확대시키고 있다. 교육부의 「프라임사업 선정 대학의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공과계열정원은 4천856명이 증가한 반면 인문사회계열에서는 2천626명이 감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은 ‘정원이동 감소’ 분야에서 대학 순수학문 정원이 76.7%를 차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대학가의 인문학 경시현상에 대해 숙명여대 교육학부에 재학 중인 박모씨(23)는 “누구보다 인문학 육성에 앞장서야 할 대학이 프라임 사업에 앞장선다면, 학문을 연구하는 대학의 본질을 잃은 것”이라고 전했다. 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현재 문과 출신의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은 교육부의 잘못된 정책 기조에서 기인한다”며 “대학의 사회적 역할은 사회 수요에 맞는 인재를 길러내는 것뿐 아니라 사회 변화를 이끌어내는 인재를 창출하는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외에는 오랜 시간 인문학을 중점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대학들이 존재한다. U.S. 뉴스(U.S. News)에서 발표한 2016년 ‘인문교양대학 순위’에 따르면 ▲윌리암스 칼리지(Williams College) ▲앰허스트 칼리지(Amherst College) ▲스워스모어 칼리지(Swarthmore College)가 상위권에 자리했다. 
특히 미국 뉴욕 주에 위치한 세인트 존스 대학교(St. John’s University)는 인문교양대학(Liberal Arts College)으로서 명망이 높다. 세인트 존스 대학에는 오직 인문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교과과정만 있고, 특정 직군을 목표로 하는 학과나 전공이 없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 발표한 「인문학 교육 실태 분석 및 진흥 방안 연구」에 따르면 세인트 존스 대학 졸업생의 인문학 박사 취득 순위는 미국 내에서 5위를 차지한다. 또한 세인트 존스 대학은 지난 1992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내 인문학 및 영문학 박사 취득률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또한 학부에서 배운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해 졸업생의 81%는 ▲교육 ▲공학 ▲법학 ▲의학 등의 여러 분야에서 종사하는 등 하나의 학문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인문학을 적용시키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도 인문학 경시 현상은 무시할 수 없는 논란거리다.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International New York Times)에 따르면 인문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 줄어드는 것이 전 세계적인 추세이며 특히 지난 2011년의 인문학 연구개발비는 과학기술 분야의 0.5%에도 미치지 않는다. 해외의 인문교양대학들은 여전히 인문학 연구를 포기하지 않고 있지만, 한계점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대학의 벽을 넘은 인문학 경시현상

▶▶수험생 A양이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문과를 선택할 지, 이과를 선택할 지 고민하고 있다. 대학 내에서 문과와 이과가 처한 환경이 대조적이다.

문과회피현상은 대학을 넘어 입시시장에서도 발생한다. 이는 고등학생들에게 문과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주입해 문과회피현상이 지속되게 만들고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주로 이공계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응시하는 수학B형(2017년은 가형)과 과학탐구 선택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고등학생들은 취업에 대한 걱정이나 사회적 인식 등으로 문·이과 선택에 있어 고민에 빠지고 있다. 거제중앙고등학교 양태우(17)군은 “문과로 가면 취업을 하기 힘들다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는 상관없이 이과로 진학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학입시컨설팅 ‘ㄱ’ 업체의 관계자는 “프라임 사업처럼 이공계열을 지원하는 대규모 사업도 생기고, 이공계가 취업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생겼다”며 “교육계 전반에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같이 고등학교에서의 문과 기피 현상은 결국 차별까지 양상하고 있다. 수학과학특성화 고등학교를 다녔던 동국대 백승권(미디어커뮤니케이션·16)씨는 “고등학교 자체가 수학·과학에 중점을 두다보니 문과 학생은 변변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고등학교 2학년 서모양(18)도 “선생님께서 공부는 이과생이 더 잘한다는 등의 문과생에 대한 차별이 담긴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신성호 참교육실장은 “고등학교 내의 이 같은 차별은 사회의 풍속도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며 “근본적 원인은 취업만을 강조하는 사회 구조에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인문학을 경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문·이과 간 차별은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지난 2014년부터 서울시교육청은 문·이과 통합교육을 위해 ‘학교 간 협력 교육과정’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올해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시범 운영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중등교육과 이임순 장학사는 “교육청 차원에서 문·이과로 나뉘는 이분법적인 교육과정 보다는 대학처럼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들을 수 있는 탄력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게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장학사는 “개방-연합형 종합캠퍼스 교육과정**을 통해 많은 고등학교에서 학생 진로 지향적 교육을 위한 시범운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 참교육실장은 “현 대학 입시 체제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학생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문송합니다’.  처음에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시작했던 말이다. 그러나 이제 ‘문송’은 피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 돼 버렸다. 창의력을 강조하면서 인문학은 배제하는 아이러니한 세상에 우린 불시착했다. 하지만 문과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웅크려야 하는 사회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문송합니다’를 외치는 문과생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는다.

 

*‘2017학년도 수능 응시원서 접수결과 보도자료’와 ‘2016학년도 수능 응시원서 접수결과 보도자료’, ‘201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원서 접수 결과 보도자료’
**개방-연합형 종합캠퍼스 교육과정 : 서울시교육청이 올해부터 일반고등학교와 자율형공립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시범적으로 추진하는 학교 간 협력 교육과정으로 이 정책에 따라 학생들은 문·이과 구분 없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심소영 기자
seesoyoung@yonsei.ac.kr
양성익 기자
syi0403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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