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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은 눕고 우리는 울었다고 백남기 민주사회장의 현장을 가다
  • 박혜지, 홍란 기자, 이청파, 박은우 기자
  • 승인 2016.11.13 19:08
  • 호수 1782
  • 댓글 0

지난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현장에서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백씨가 사망한 지 41일 만인 지난 5일에 거행됐다. 백씨는 1968년 중앙대에 입학했을 때부터 줄곧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에 몸담아왔다. 하지만 정치‧경제적으로 본래 사회적 인지도가 낮았던 사람이 특정한 계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후 민주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지는 것은 고 이소선*씨의 사회장 이후 4년만으로 이례적이다.

민주사회장으로 그를 떠나보내다

<사진제공 한국일보>

사회장은 국가나 사회에 공을 남긴 저명인사의 장례를 사회 각계의 대표가 자발적으로 모여 거행하는 것이다. 국장과 국민장은 법적 절차가 있으며 국가 주도로 거행되는 반면 사회장은 국가 차원의 장례인 국장, 국민장과는 달리 법적, 행정적 절차가 필요하지 않다. 대신, 시민사회단체의 대표, 회원들로 ‘장례위원회’를 구성하여 장례명칭을 결정하고 장례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민주화운동에 힘썼던 인사들의 경우 민주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그동안 민주사회장으로 장례식을 치른 인사는 4·19 혁명의 학생운동 대표였던 고 이기택씨, 노동운동가 고 이소선씨, 5‧18 민주화운동의 마지막 수배자였던 고 윤한봉씨 등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국가의 부당함에 온몸으로 저항했다는 것이다. 백씨의 사인에 대한 논란이 아직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백씨의 장례식이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 것은 주최 측이 그 자체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
백씨의 민주사회장을 주최한 단체인 백남기투쟁본부 최석환 사무국장은 “백남기 농민의 국가폭력 사건은 역행하는 민주주의에 시민사회가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싸웠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며 “그래서 장례를 시민사회가 함께 치르고 민주주의 회복을 염원한다는 의미로 ‘민주사회장’으로 치르게 됐다”고 밝혔다. 백씨의 장례식은 지난 5일 아침 8시 발인으로 시작됐으며, 장례식 하루 전인 4일에는 ‘추모의 밤’ 행사가 있었다.

그를 기억할 사람들

▶ 지난 4일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3층에서 열린 故 백남기 농민 추모의 밤 행사

지난 4일 밤 9시 서울대학병원 장례식장 3층에서 ‘백남기 농민 추모의 밤(아래 추모의 밤)’ 행사가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김정열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약 3백여 명이 참석한 추모의 밤은 백씨를 기리는 노래와 연설, 묵념으로 시작했다. 묵념 도중 장내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고인을 위한 묵념이 끝난 후 중앙대 정찬(사회·16)씨와 노동당 이갑용 대표, 민중연합당 김창한 대표가 추모사를 시작했다. 내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던 정씨는 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백남기 농민의 사망 사건은 완전한 해결이 되지 않고 아직 진행 중인 일”이라며 “그렇기에 더욱 기억해야 하고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조금 뒤 무대에 올라 중앙대 대표로 「발걸음」이라는 헌정시를 낭독하며 추모사를 했다. 정씨의 추모사를 듣던 안지혜(39)씨는 “주변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아 농민의 권익을 위해 앞장섰던 백남기씨의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며 “그래서 이번 일이 더욱 안타깝고 속상하다”고 속내를 내비쳤다. 이 대표와 김 대표 역시 백씨의 뜻을 따르겠다는 의지가 담긴 추모사를 낭독했다. 이후로 짤막한 공연들이 이어졌다. 민중가요가 들리는 와중에 참석자들은 ‘우리가 백남기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백씨의 죽음이 개인의 죽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했다.

중간의 공연 이후 백씨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백씨와 친밀했다는 전 팔당생명살림 회장 유영훈씨는 “그는 농민가의 ‘춤추며 싸우는 농민’이란 가사대로 이 세상을 살다 가셨다”고 추모의 말을 전하며 “여전히 전국에 많은 백남기 농민이 농업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추모의 밤 말미에 백씨의 막내딸 백민주화(29)씨가 ‘아버지께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낭독했다. 백민주화씨는 눈물로 읽어내려가던 편지에서 “당연한 것들이 당연시되지 못하는 세상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내게 돼 한스럽다”고 말했다. 이념이나 사건에 대한 의혹을 떠나 아버지를 향한 딸의 슬픔과 그리움으로 인해 행사장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피켓을 든 채 백민주화씨의 편지 낭독을 듣던 이제희(56)씨는 “‘분노하지 않는 민족은 야수와 같은 적에게서 승리할 수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며 “우리는 분노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된 땀방울 함께 흘러
드넓은 평화의 바다에
정의의 물결 넘치는꿈

추모의 밤에 참여한 조문객들이 유족들에 대한 슬픔을 함께 나누는 동안 어느새 행사는 점점 끝을 향해 갔다. 이소선 합창단은 ‘사랑은 길게 흐른다’, ‘그날이 오면’, ‘천리길’을 부르며 농민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그때까지 굳게 백씨의 뜻을 이어 가겠다는 다짐을 보였다. 공연을 지켜보던 시민 김모씨는 “부검 진행을 국민의 힘으로 막아낸 것 같다”며 “최근 부검 강제 진행은 헌법상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끝으로 백남기투쟁본부 박석운 공동대표는 “많은 분이 정성을 모아주셔서 극복할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광화문 광장으로 향한 수많은 발걸음,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

▶ 故 백남기 농민의 딸 백도라지 씨가 지난 5일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된 영결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지난 5일 낮 2시에 광화문 광장에서 백남기 농민의 영결식이 수많은 사람이 참가한 채 거행됐다. 또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참여연대를 비롯해 연세민주동문회 등의 단체들도 영결식에서 조문했다.
영결식은 정현찬 상임장례의원의 발언으로 시작했다. 이후 테너 임정연씨의 추모곡이 광장에 울려 퍼졌고, 추도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추도사에서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처음으로 추도사를 한 사람은 3백만 명의 농민을 대표하는 김영호 상임장례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온 국민은 아름답고 뜨겁게 살다 가신 백남기 농민을 슬픔에 젖어 보내드리고 있으며 추모에 멈추지 않고 분노하며 희망의 시대로 달려가고 있다”고 발언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김종훈 국회의원 또한 최소한의 사과조차 하지 않는 정부를 규탄했다. 고려대 천예지(행정·16)씨는 “백남기씨에 대한 진압이 지나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김승태(65)씨 또한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를 비롯해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조문객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광화문역 9번 출구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백씨의 민주사회장이 우리 사회에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지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가슴팍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던 권오선(45)씨는 “만약 국가로부터 고통받은 사람이 백남기씨 한 분이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의 걸음을 이곳으로 이끌 수 없었을 것”이라 답했다. 백씨의 민주사회장은 최근의 사태에 대한 질책과 분노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계속 이어진 추도사에서 제주도의 시민지킴이 이준혁(19)씨는 “책임자들을 처벌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도사를 한 이씨를 비롯해 광화문 광장에서는 인근의 청소년 시위에 참여한 뒤 조문을 온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후 옥중의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의 추도사를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이 대신 읽으며 추도사는 끝났다. 추도사가 끝난 뒤에는 추모 공연이 이어졌다. 추모 공연에서는 백씨의 생애를 담은 영상 상영과 무용가 김미선씨의 살풀이춤이 진행됐고, 장례위원회의 결의문이 발표됐다. 그 이후 백씨의 유족들이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살림합창단이 마지막으로 추모공연을 했으며 조문객들의 헌화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이날 백남기투쟁본부는 “책임자를 반드시 처벌하겠다”며 다짐했다. 이렇듯 영결식이 진행되는 날은 물론, 지금까지도 백남기 농민의 사망 사건에 대한 책임 소재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영결식에서 만난 많은 조문객은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공권력의 과잉진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민주사회장을 치르는 기준이 공권력에 의한 핍박이나 그에 대한 저항의 여부만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사회장의 역사를 논하면서 공권력에 대한 저항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고 백남기씨의 장례가 국민적 관심 속에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졌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또한 현 정부는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민주사회장의 현장에서 현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백남기 농민의 장례는 치러졌지만 백씨의 죽음이 국가폭력에 의한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의혹으로 남아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관련된 일련의 논쟁은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논의돼야 할 부분이다.

*이소선 : 노동 운동가 전태일의 어머니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사진 박은우 기자
silver_rain@yonsei.ac.kr
이청파 기자
leechungpa@yonsei.ac.kr
<자료사진 한국일보 신지후, 정반석 기자>

박혜지, 홍란 기자, 이청파, 박은우 기자  silver_rai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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