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습니까?’
‘아뇨,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구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
- 1994년 9월 17일자 MBC 뉴스 중, 시민 인터뷰

인류는 등장한 뒤 200만년의 시간 동안 대부분을 알몸으로 지냈다. 그런 인류가 모피 등의 의복을 입게 된 이유에 대해 일종의 전승기념물, 즉, 용맹함의 증거로 착용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니까, 남들에게 자랑하려고 입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비키니, 바다가 없어서 못 입을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이지혜(22)씨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이것은 원시시대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옷을 입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어 SNS에 ‘#데일리룩’ 해시태그를 달아 올리고, 철마다 옷을 새로 사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취향, 내 기분대로 옷을 입는 데 종종 제약을 겪는다. ‘네가 그렇게 입은 것을 보기 싫다’는 사람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가령, 매 여름마다 많은 여성들은 입고 싶었던 비키니를 입지 못한다. ‘예쁜 몸을 가지지 않은 여자의 비키니 차림’을 고깝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이 ‘예쁜 몸’이라는 기준이 순전히 자의적 해석임은 물론이다.  
많은 이들이 남의 차림새에 이리저리 말을 놓는 사람들 때문에 불쾌한 경험을 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아르바이트 면접에 간 신모씨(21)는 ‘짧은 옷은 천박해 보이니 삼가 달라’는 말을 들었다. 신씨는 “합격은 했지만 의상 때문에 ‘천박하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차림새에 대한 지적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원진(18)군은 중학교 때 안경 대신 렌즈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외모에 관심이 생겨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군은 ‘화장하는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곤욕을 겪을 때가 많다. 이군은 “’남자가 무슨 화장이냐’, ‘고추 떼라’는 등의 성적인 조롱을 들을 때마다 속상하다”며 “남자도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자유가 있는데 아직까지도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한탄했다.
이지혜(22)씨는 프릴이 달려 있는 등 인형 옷 같은 모양의 원피스를 즐겨 입는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이씨의 옷차림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세모눈을 세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씨는 “간혹 ‘왜 다 큰 성인이 어린아이처럼 하고 다니냐’, ‘소아성애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렇게 입는 것이 내 눈에 예뻐 보이고 이렇게 입었을 때 가장 행복하기 때문에 입는 것”이라며 “내 옷차림과 내가 성인인 것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입고 싶은 옷을 못 입는 이유는 너무 많다. 추워서 못 입고, 더워서 못 입고, 비싸서 못 입는다. 그런데 옷차림에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사람들까지 있다니, 그야말로 지저스 크라이스트다. 오 신이시여.

네가 뭐라 하건, 나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다
 

‘#이렇게_입으면_기분이_조크든요’라는 해시태그는 ‘X세대*’의 패션을 다룬 1994년 9월 17일자 MBC 인터뷰 영상이 ‘1994년 X세대 패션’이라는 제목으로 트위터 등 SNS에서 재조명받으면서 등장했다. 해당 인터뷰 속 여성은 ‘남의 시선을 느끼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며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고 답했다. 
22년 전의 영상이 트위터 업로드 하루 만에 리트윗 수 1만을 넘어가는 등 다시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는 한 마디가 현재 청년들의 막힌 속을 뚫어주었기 때문이다. 입고 있는 옷 하나로 ‘어떤 사람인지’ 까지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레짐작과 ‘이런 사람’은 ‘이런 옷’을 입어야 한다고 주어지는 사회적인 틀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때문에 해시태그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는 차림새에 대한 오지랖과 편견을 무시하겠다는 젊은 세대들의 선언으로 여겨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라면, 어른이나 아이라면 으레 그렇게 입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이는 결국 ‘보편적인 옷’을 입지 않는 것이 개성이나 의지의 표현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짐작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편견에 대항하기 위해 이군은 1년 전부터 ‘원딘’이라는 아이디로 유튜브에 메이크업 영상을 올리고 있다. 이군은 “남자의 화장에 대한 편견이 있는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지혜씨는 인터뷰에 응하며 “한때 체형 때문에 남의 시선이 두려워 무채색의 긴 팔 옷만 입었다”고 고백했다. 이씨는 “옷차림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을 이겨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다”며 “누군가가 나를 보고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자는 소위 말하는 ‘남자다운’ 차림새를 해야 하고, 어른은 나잇값 하는 옷차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얕은가. 이와 같은 뿌리 깊은 편견들을 무시하고 ‘제가 입고 싶은 대로 입구요!’라고 외치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X세대: 무관심ㆍ무정형ㆍ기존 질서 부정 등을 특징으로 하는 1965년∼1976년 사이에 출생한 세대
 

최서인 기자 
kekecathy@yonsei.ac.kr
<자료사진 이지혜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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