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단상

지난 2015년 개봉해 화제를 몰고 온 영화 『트럼보』는 1950년대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천재 영화작가 트럼보의 이야기다. 60여 년 전의 실화를 다루는 이 영화는 오늘날 미국인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더 큰 공감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예술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살고 있을까? 
 

지난 10월 11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청와대가 문화예술계에서 검열해야 할 인사들을 정리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유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9,473명의 문화예술인이 포함된 이 명단에는 안도현, 백낙청, 공지영 등의 문인들부터 송강호, 김혜수 등 유명 연예인들까지 실려 있었다. 블랙리스트는 세월호 정부 시행령 폐기 촉구선언, 세월호 시국선언,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박원순 후보 지지선언 등에 참여한 문화예술인들로 구성됐다.

문화예술인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해 발언한다.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문화예술인들을 검열의 대상으로 삼은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들을 반역자로 규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이번 사태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준 이유는 단지 어떤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내거나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의 통제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문화연대와 한국작가회의 등을 주축으로 한 예술행동위원회 ‘우리 모두가 블랙리스트 예술가다’는 지난 10월 18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블랙리스트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진상 규명 전까지 행동을 멈추지 않겠다’며 ‘즉각 국회 청문회를 시행하고 블랙리스트 작성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현 정부 하에서 예술가들의 작품은 빈번히 강한 압박을 받아 왔다. ‘대한민국 효녀연합’이라는 이름으로 예술 활동을 벌여 온 홍승희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한 그래피티 작업을 했다가 지난 10월 21일 1년 6개월의 징역을 구형받았다. 또한 2015년에는 영화 『다이빙벨』 상영 논란을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가 파행을 빚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화연대 최준영 사무처장은 우리신문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정권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예술작품들은 모두 검열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시국선언, 1인 시위, 토론회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은 본질에서 좌파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에 실린 표현의 일부다. 예술은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치거나 어두운 면을 다룰 때가 많다. 정치 논리를 예술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적용한다면 수많은 예술이 반역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정치 논리로 인해 예술과 반역의 경계에 서 있다. 판단은 개인의 몫이다. 당신이 오늘 본 그 예술작품은, 과연 예술일까 반역일까?


연세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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