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훈 편집국장 (철학·14)

어지러운 시국만큼이나 그 시국에 대해 선언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전국 각지의 대학 총학생회(아래 총학)들이 연이어 시국선언을 하는 가운데 대학사회에서는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대학교 신촌캠 총학 <Collabo>의 시국선언에 대한 세간의 호평은 여러 시사점을 남긴다.


우리신문의 설문 결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총학의 시국선언에 우리대학교 학우의 58%는 ‘매우 만족’ 또는 ‘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기사 2면 ‘시국선언 이후, 연세의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이처럼 총학의 시국선언이 호평을 받는 것에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된다. 민주주의의 주권자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했기 때문에 잘 했다는 것이다.


총학은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연세인 의견 수렴’이라는 제목의 구글 독스를 올리면서 학우들의 의견 수렴을 위한 제스처를 취했고, 1천500여 명이 여기에 참여했다. 그리고 ‘연세인 여러분의 솔직한 의견을 들려주십시오’,‘총학생회는 이에 부응하여 행동하겠습니다’라던 총학은 시국선언을 결정했다.


그런데 이렇게 겉보기에 좋아 보이는 이 과정은 어떤 ‘쎄함’을 남긴다. 과연 이 구글 독스는 연세 학우의 의견을 제대로 담아냈을까. 외부인이 참여할 수 있었다는 등 시스템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애초에 학우들의 의견을 다 수렴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결국에 마지막에 가서는 누군가의 ‘선택’이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착각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 때나 민중총궐기 때와 다르게 모두가 한 마음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세월호 참사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늘 우리는 한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부딪힌다. 민주주의란 ‘다름’을 서로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구글 독스는 문제를 온전히 해결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더라도 구글 독스에는 의미 있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완전한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해서 소통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사실 어쩌면 대중들이 원하는 건 소통이 아니라 ‘소통한다는 느낌’일지 모른다. 기존에 정치의 효능감을 느끼지 못하던 대중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정말 내고 싶을 때, 원래 관심 없던 사람들이 관심이 생겼을 때, 바로 그때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진다는 느낌. 그것이 바로 구글 독스였다.


그리고 구글 독스의 '소통한다는 느낌'은 나아가서 대중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자신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진다는 느낌은 대중들의 강한 지지와 거리로 나오는 원동력이 됐다. 총학의 행동이 '나와 다른 집단'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이 됐기 때문이다. 결국 총학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구글 독스는 더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구글 독스는 특히 대중과 멀어져버린 운동권 등 기존 학생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물론 총학이 구글 독스로 의견 모으기만 하는 의견 수렴 기구에만 그쳐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생사회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중과의 소통이 절실하다. 더 많은 사람을 끌어안아야 한다. 적어도 ‘운동’이라는 것이 대중과 함께 하는 것이라면 소통을 포기해선 안 된다.


물론 ‘다름’을 편향적이라는 이유로, 너무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배척하고, 그들의 의견 표명을 막아서는 ‘운동권 혐오’는 지양돼야 할 ‘정치 혐오’다. 하지만 박근혜와 최순실이 준 기회에서 우린 좀 더 부딪히고, 성장할 수 있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대학사회가 변하고 있다. 대학민주주의가 역사적인 순간을 맞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린 변화하는 대중과 함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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