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여성들

2012년에 일 년간 전 세계에서 발생한 2억 1천만 건의 임신 중 40%에 달하는 8천 5백만 건은 계획 없는 임신이다. 이 중 50%는 낙태로 이어진다.* 계획 없는 임신은 불가피하게 피임을 못하거나 피임에 실패한 경우에 발생한다. 콘돔의 피임률은 사실상 약 86%라고 하니, 피임을 한다고 해도 임신하지 않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피임실천율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임 실패 비율은 감소하지 않고 있다.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낙태죄


임신계획 여부와는 무관하게, 임신과 출산의 결과와 영향은 모든 부모에게 찾아온다. 더군다나 출산은 여성의 신체 변화와 더불어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수반하며, 평생에 걸친 희생의 시작이다. 여성은 태아를 수태하는 본인이라는 점에서 남성과 달리 이를 결코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 없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여성의 인생에 막대한 희생을 요구한다. 따라서 여성은 자신이 처한 다양한 환경을 스스로 검토하고 임신이 수반하는 피해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형법」제269조, 제270조에는 ‘낙태죄’가 존재한다.「모자보건법」제14조 제1항의 ▲본인·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혹은 준강간에 의한 임신 ▲임신이 해당 여성에게 해로운 경우 등 명시된 사유가 아닌 경우의 낙태를 결정하면, 여성들과 시술한 의사는 3년 이하의 징역을 받는다. 이 때 남성은 처벌 대상이 아니며, 「모자보건법」에 따라 낙태할 때조차도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편, 지난 9월 보건복지부가 불법 낙태수술을 집도한 의료인의 자격정지 기간을 기존 1개월에서 최대 1년으로 늘리는 내용의 의료관계 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논란이 불거졌다. 이를 두고 ‘직선제 산부인과의사회’는 입법 이후 낙태 수술을 않겠다고 나오고 있다.

여성이 낙태를 고려하는 데는 이미 자녀가 너무 많을 때, 임신으로 정신적·신체적인 피해를 입거나 태아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 경제적 이유 등 다양한 요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낙태와 관련한 법률에 따르면 사유나 환경에 무관하게 낙태는 죄다.

이에 대해 한국 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노선이 활동가는 “여성들에게 임신과 출산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결정권이 없고 ‘생기면 낳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암암리에 의료 사각지대가 생길 것이고, 사고나 실수가 있어도 문제제기를 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 서지영 활동가는 “이번 개정안은 낙태에 수반되는 남성의 협박, 금전적 요구, 관계 유지 등의 상황맥락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이번 개정안에 대해 의사들이 시술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결국 국가의 처벌이 강화될 때마다 여성들이 피해를 보게 돼 있는 구조”고 말했다.

이는 입법 과정과 개정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아 발생한 문제다. 낙태와 출산의 주체인 여성들의 목소리가 관련 법안을 다룰 때 충분히 반영했다면 낙태의 책임 대부분을 여성에게 전가하는 법률은 생기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페이스북 페이지 ‘바람계곡의 페미니즘’ 관리자는 “누군가에게 다른 누군가의 삶을 연장시키기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며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일그러진 삶을 살아갈 여성들을 고려하지 않은 낙태죄는 도덕적 자위 수단에 가깝다”며 분개했다. 또한 노 활동가는 “여성들이 낙태 이전에 자신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많이 마련돼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검은 시위, 그리고 법 이후의 이야기

 

보건복지부의 개정안 예고 소식을 접한 여성들은 지난 10월 15일을 시작으로 서울 종로의 보신각 앞에서 ‘검은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모았다.

검은 옷을 입고 모인 여성들은 ‘나의 자궁, 나의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여성의 재생산권과 임신에 대한 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개정 철회를 요구했다. 임신한 여성의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들은 보건복지부의 개정안 철폐에 나아가 형법에서의 낙태죄 조항도 삭제돼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검은 시위는 서울뿐만 아니라 부산, 경남 진주, 대전, 광주, 전북 등 전국 곳곳에서 연이어 이뤄졌다. 페이스북 페이지 ‘강남역 10번 출구’의 관계자 방혜린씨는 “낙태 이슈를 건강권과 신체에 대한 결정권 등 여성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의 측면에서 다루는 관점이 생겼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며 “이번 시위가 여성 권리의 역사에서 유의미한 족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폴란드 여성들도 시위에 대한 지지성명을 내며 페이스북 페이지에 한국의 ‘검은 시위’를 지지한다는 뜻을 보냈다. 폴란드 여성들의 경우 지난 10월 3일 폴란드 정부의 낙태 전면 금지안 발의에 파업과 시위로 대항한 바 있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향상을 위해 낙태 이슈에서 논의돼야 할 사항은 법률뿐만이 아니다. 여성이 낙태를 결정하기까지는 법률적인 제약뿐만 아니라 ‘낙태한 여자’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장애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 활동가는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국가의 지원이나 환경이 부족한 현실”이라며 “그런데도 낙태 이슈를 다룰 때 국가의 역할이나 남녀 공동의 책임보다 먼저 ‘이기적인 여성’이라는 낙인이 먼저 등장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결국 성차별적 문화 자체가 해결되어야 그 기반 위에 여성 인권도 견고히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낙태가 ‘죄’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임신에 대해 결정할 권리를 잃은 여성들의 가치는 ‘아이를 낳는 존재’ 이상으로 뻗어나가기 어렵다. 법률 개정 문제를 넘어 성차별 문화에 대한 성찰이 바탕이 돼야 여성의 권리를 지킬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가족계획에 관한 저널지 ‘Studies in Family Planning’에 2014년 실린 Gilda Sedgh, Susheela Singh, Rubina Hussain의 논문 ‘Intended and Unintended Pregnancies Worldwide in 2012 and Recent Trends’을 참고했다.

 

최서인 기자 
kekecathy@yonsei.ac.kr
신유리 기자 
shinyoori@yonsei.ac.kr
<자료 출처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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