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뭇 달라진 광장의 분위기, 10월 29일 청계광장 촛불집회를 가다.

지난 10월 29일 토요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상 규명과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경찰 추산 1만 2천여 명, 주최 측 추산 3만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집회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열린 첫 도심 집회로, 이날 거리에는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하나둘 집 밖으로 나온 각계각층의 시민으로 가득했다. 그중에는 처음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 아래 있었던 여타 집회와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공권력의 대응 또한 사뭇 달랐다. 우리대학교의 많은 학생들도 시민으로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가운데, 그날의 이야기를 「연세춘추」가 담았다.

청계광장을 밝힌 수많은 촛불

낮 5시 40분, 총학생회의 주관 하에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신촌캠 정문에 모였다. 학생들은 해가 저무는 시간의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함께 신촌역으로 향했다. 우리대학교의 행렬에는 올해 입학한 16학번 학생들도 많았다. 시청역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박한결(HASS·16)씨는 “평소에 친구들과 사회적인 이슈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지만 특별한 활동은 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최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보고 더 이상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씨의 옆에는 시위 행렬에서 서로 처음 만났다는 다른 16학번 학생들도 있었다. 이석주(건축공학·16)씨는 “나라가 국민의 손으로 뽑은 정부가 아니라 사조직에 의해 돌아가는 것이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시청역을 거쳐 종각역에 내리자 날은 완전히 저물어 이미 깜깜해진 뒤였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청계광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소리를 따라 움직였다. 청계광장으로 들어서자 많은 촛불들이 그곳을 메우고 있었다. 대학생, 직장인, 학부모 등 촛불을 든 사람들은 다양했지만, 이들이 모여 촛불을 밝힌 이유는 하나였다. 한국외대의 시위 행렬에 앉아 있던 한국외대 박민기(영문·10)씨는 “이 비상식적인 사태는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며 시위에 참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 옆에 촛불을 들고 서 있던 이승아(44)씨도 “대통령이 다른 사람의 지시를 받고 국정운영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청계광장에서는 시민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었다. 연단 주위로 사람들이 점차 모여들자 시위대 사이에서 ‘다치지 않게 움직이지 말아 달라’는 부탁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온건한 분위기에서 진행된 이번 촛불 집회에서는 1명의 부상자를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서로 손을 맞잡고

발언이 끝나자 시위대는 일제히 뒤로 돌아 행진하기 시작했다. 행진 중에도 시위대의 외침은 끊이지 않았다. 비록 구호가 통일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외침은 한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다. 행진 중 한 이화여대 학생은 “헌정 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이러한 근간 질서의 붕괴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지고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뒤로도 행진은 계속됐다. 애초에 시위대는 광교에서 보신각과 종로2가를 거쳐 북인사마당까지 약 1.8㎞를 행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조계사 근처의 경찰차벽(아래 차벽)을 발견하고 종각 인근에서 방향을 바꿔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계획에 없었던 방향 전환이라 혹시 모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시위대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손을 잡고 5인 1조를 이뤄 행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화문 광장으로 가는 세종대로 르메이르종로타운 부근에서 시위대는 또다시 차벽과 마주쳤다. 차벽 사이에는 좁은 틈이 있었다. 시민들은 느리지만 차분하고 평화롭게 차벽 사이를 빠져나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평화롭게 차벽을 빠져나온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잠시 대오를 정비하고 행진을 이어나갔다. 우리대학교 총학생회의 깃발을 보고 중간에 합류하는 학생들 또한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세종대로를 향해 나아갔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죽어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윤동주 시인의 시에 음률을 더한 「서시」라는 노래였다. 수백 명에 달하는 우리대학교 학생들이 어떠한 마음에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역사 앞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모여 촛불을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 만난 김태수 동문(정외·88)은 “민주주의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저항해야 한다”며 “이처럼 저항하는 것도 국민의 권리”라고 역설했다. 또한, 김 동문은 이번 집회에 대해서 “1980년대에는 쇠파이프와 각목 등이 등장하는 폭력적 시위가 많았다”며 “오늘 촛불집회는 평화적으로 잘 이뤄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험생들 또한 거리로 나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20일가량 남겨둔 시점에서 이들의 시위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가지는 사회적인 파장을 가늠케 했다. 수능을 준비 중이라는 서울대 이상원(물리교육·16)씨는 “이런 시국에서 책상 앞에만 앉아있을 수 없었다”며 “이렇게 불안한 국정 운영을 하는 정부를 학생들에게 물려주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들을 둘러싼 시민들은 박수를 치고 시험에서의 행운을 기원하는 등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그중에서 어떤 중년 남성은 ‘기성세대로서 미안하다’고 외치기도 했다.

그들은 행동하는 시민이 두렵다

행렬은 어느덧 광화문 광장으로 접어들었다. 등을 환하게 밝힌 광화문이 멀리 보였다. 청와대는 어둠 속에 갇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 묻히기 어려울 만큼 크게 울렸다. 주권자로서의 분노를 청와대에 고하고 있었다. A(54)씨는 “집회 또한 의사 표현의 일종이고 의사 표현을 해야 정치인들이 시민을 두려워한다”며 이날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유를 밝혔다. 분노는 진영과 세대를 가리지 않았다. 팔순을 바라보는 한 노신사는 “선출되지도 임명되지도 아니한 사람이 국정을 농단했다”며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옆에서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했다. 수차례 경찰의 해산방송이 흘러나왔다.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더 이상 도로를 점거하거나 폴리스 라인을 훼손하는 행위는 평화적인 시위의 모습이 아닙니다...(중략)...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이럴 때일수록 경찰의 안내에 따라 더 이성적으로 행동해주십시오.’
기존의 해산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던 말들이었다. 주권자들의 지엄한 분노를 경찰도 조금은 느끼는 것 같았다. 시민들은 목소리를 크게 높였지만, 집회는 평화적으로 진행됐다. 
저녁 8시 45분, 우리대학교 학생들은 공식적으로 이날의 집회를 마쳤다. 박수를 치며 추운 날씨에 거리로 나선 서로를 응원하고 격려했다. 더 남아서 자리를 지킨 학생들도 있었다. 이 날 집회는 큰 인명피해 없이 밤 11시 가량 많은  시민이 해산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번 집회에는 처음으로 시위에 참여한 남매도 볼 수 있었다. 서울대 윤진녕(생명과학·15)씨는 “대학생인 누나와 뜻이 맞아 처음으로 시위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윤씨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듯 이번 집회에는 그들의 결심을 처음으로 행동에 옮긴 시민이 많았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번 사태는 주권자들이 조금 더 행동하도록 함으로써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하는 데 기여했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정치성향과 세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시민이 뛰어나왔다. 번져나가는 촛불 속에서 진영을 가리지 않는 민심의 이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태껏 정부는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시민의 분노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오는 12일에는 청계광장에서 대규모 집회가 또 한 번 열릴 예정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이 피흘려 지켜 온 문장이다. 그런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가치를 파괴했다. 전근대적인 행태로 주권자들을 시민(市民)에서 신민(臣民)으로 전락시키려 했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대통령을 포함한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민들의 분노와 행동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우리가 살아갈 대한민국은 왕정이 아닌 민주 공화정이기 때문이다.

글 김지성 기자
speedboy25@yonsei.ac.kr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홍란 기자
nancho@yonsei.ac.kr
사진 박은미 기자
eunmiya@yonsei.ac.kr
<사진제공 고려대 주현민(사회·14)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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