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운동을 하던 백남기 씨가 결국 숨졌다. 그가 농민운동을 했든 노동운동을 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국민이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행사하며 참여한 시위에서 경찰이 쏟아낸 고압의 물대포에 쓰러져 중태에 빠진 후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이 세상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고 백남기 농민에게 뿌려졌던 고압살수가 그의 목숨을 해칠 의도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아니 그렇게 상상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의도하지 않았던 고압살수로 인해 사경을 헤매는 국민을 두고 정부가 보인 태도는 심히 실망스럽다. 경찰은 고압살수로 인한 피해를 축소하고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에만 급급했다. 또한 그들은 살수차를 기자들에게 공개하며 그렇게 강하게 살수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곧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이 최근 자동화된 장치를 사용하지 않고 수동으로 살수차를 조종해왔음이 드러나기도 하면서 경찰의 해명은 자신들의 잘못을 덮기 위한 구차한 변명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사과요구를 거부하고 “원인과 법률적 책임을 명확히 한 이후에” 사과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발언하여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정부를 대표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는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국민의 자유와 복리를 증진”할 것을 선서한다. 집회 및 결사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로 민주공화국의 근본을 이루는 원리이다. 이러한 권리를 행사한 국민이 경찰의 불법적인 고압살수에 의해 사경을 헤매다가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등에 대한 대책 마련 등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가 원수로서의 의무에 소홀히 했음은 물론 정권 측근들에게 쏟아지는 부정부패 의혹을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고 백남기 농민의 사체를 부검하겠다는 경찰의 뻔뻔스런 태도이다. 우리 국민은 국민의 사체 부검이 의미하는 바를 지난 민주화 운동 시기의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과거 경찰은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사망 사건이 불거지곤 할 때 사체를 서둘러 부검하고 화장을 해 추후 검증을 무력화시키는 행위를 여러 번 저지른 바 있다. 사체를 화장하는 것은 객관적 사인을 밝히기 위한 증거를 인멸하는 손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러한 스스로의 과거 행위를 묵과한 채 가증스럽게도 고 백남기 농민의 사체 부검을 위한 영장을 두 번이나 신청했다. 법원 또한 결국엔 부검영장을 발부하며 애매한 조건을 붙여 부검 집행 여부에 대한 해석을 분분케 만듦으로써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부검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서울대 병원에 집결해 부검 영장을 집행하려는 경찰에 맞서 대치하고 있다. 이는 정상적인 국가에서는 절대로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많은 이들이 경찰의 행위에 분노하고 정부의 태도에 실망하고 있다. 정부는 시민들의 분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경에서 아벨의 소재를 묻는 하나님의 질문에 엉뚱하게 내가 어떻게 아냐고 딴청을 부렸던 가인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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