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EEK(Accreditation Board for Engineering Education of Korea) 인증제는 지난 2001년부터 한국공학교육인증원(아래 인증원)에서 공학 교육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 국제 협약에 따라 시작한 제도다. 각 대학교의 공과대 소속 학과가 인증원이 제시한 기준에 맞춰 학사 제도를 제출하면 인증원은 이 학사 제도를 심사한 뒤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ABEEK 인증제 승인을 받은 학과를 졸업한 학생은 자연스럽게 ABEEK 인증을 취득하게 된다. 인증원에 따르면 ABEEK 인증을 취득하면 국내 대기업 서류 면접 시 가산점이 부여되며, 국제 협약을 맺은 국가에 유학을 갈 경우 해당 국가의 학사 자격을 인정받는다.

우리대학교는 공학교육 세계화 추세에 맞춰 지난 2007년 ABEEK 인증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우리대학교 공과대는 ABEEK 인증제를 승인받기 위해 자체적으로 MSC(Math Science Course)와 공학소양 수업을 개설했다.

그러나 ABEEK 인증을 시행하고 있는 ▲화공생명공학과 ▲전기전자공학과 ▲건축공학과(건축공학 전공) ▲토목환경공학과 ▲기계공학과 5개 학과 학생들은 ▲MSC ▲공학소양 수업으로 인해 필수교양 분야에서 원하는 수업을 수강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ABEEK 인증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들도 학내 사회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필수교양보다 MSC·공학소양,
배보다 큰 배꼽

우리대학교 필수교양 분야는 문학과 예술, 인간과 역사, 언어와 표현, 가치와 윤리, 국가와 사회공동체, 지역사회와 세계, 논리와 수리, 자연과 우주, 생명과 환경 총 9개 영역으로 구성돼 있다. 학생들은 졸업 전까지 필수교양 9가지 영역 중 8가지 영역, 즉 24학점 이상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하지만 MSC와 공학소양으로 인해 ABEEK 인증제를 채택한 학과의 학생들은 대부분의 필수교양 영역들에서 들어야 할 수업이 사실상 지정돼 있는 상황이다.

우선 MSC로 인해 공과대 학생들은 필수교양 수업의 선택권이 줄어든다. MSC에 해당하는 모든 수업은 ▲논리와 수리 ▲자연과 우주 ▲생명과 환경 영역에 포함돼 있다. ABEEK 인증을 선택한 학과의 학생들은 ‘논리와 수리’ 영역에서 ‘공학수학’을, ‘자연과 우주’ 영역에선 ‘공학물리’와 ‘공학화학’을, 그리고 ‘생명과 환경’ 영역에선 ‘공학생명과학’을 의무적으로 수강해야 한다. 정보산업공학과에 재학 중인 박씨는 “해당 필수교양 역역 중 기호에 따라 수업을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MSC로 인해 해당 영역 내 다른 수업들을 듣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따라서 ABEEK 인증에 해당하지 않는 다른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한편, 공학소양 수업은 필수교양 선택권 제한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공학소양 수업은 ABEEK 인증제를 실시하는 학과의 학생들이라면 의무적으로 9학점 이상 수강해야 하며, 공학소양 수업을 수강할 시 ‘국가와 사회공동체’, ‘지역사회 세계’ 영역의 학점으로 인정해 준다. 이 때문에 학생들은 해당 영역에서 다른 교양 수업을 듣기보다는 공학소양 수업을 선택한다. 그러나 공학소양 수업들이 ‘공학투자분석’, ‘기술 및 제품 마케팅’과 같이 공학적인 내용에 치중돼 실질적인 교양수업이라고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줄어드는 ABEEK 인증 학과…
공과대 차원에서 학사 제도 재논의해야

ABEEK 인증 도입 이후 공과대 학생들과 학생회에서는 꾸준히 불만을 제기해왔다. 지난 2014년 51대 공과대 학생회 <NEWRUN>이 ABEEK 인증제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을 당시 공과대 학생의 70%가 ▲무리한 이수 요건 ▲경직된 커리큘럼 ▲제한적 가산 혜택 등을 이유로 인증제를 철회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관련기사 1741호 1면 ‘ABEEK 인증제, 학교-학생 입장 차 수년째 지속’> 현 53대 공과대 학생회장 홍가근(정산공·12)씨는 “140학점의 졸업 이수 학점 중 전공 수업, RC 필수 과목 등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하는 학점이 126학점이다 보니 사실상 한 학기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학점은 2~3학점에 불과하다”며 “ABEEK 인증으로 인해 학생들이 원하는 수업을 듣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ABEEK 인증제가 실제로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들도 제기되고 있다. 인증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삼성그룹을 포함한 국내 ABEEK인증 혜택 기업 67개  중 8개의 기업만이 정확한 혜택 비율을 게시하고 있다. 나머지 기업들의 혜택은 단순히 ‘서류전형 우대’나 ‘입사지원서 표기’ 등에 그쳤다. 화공생명학과에 재학중인 이씨는 “현장에 나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 ABEEK 인증이 취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며 “ABEEK 인증제에서 배우는 내용이 실질적인 기업 실무와도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러한 여론 속에서 ▲도시공학과 ▲정보산업공학과 ▲신소재공학과는 ABEEK 인증제를 취소했으며 ▲컴퓨터과학과 또한 16학번부터 내국인 신입생은 인증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대학교에서 ABEEK 인증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공학교육혁신센터 측은 아직 명확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학교육혁신센터는 현재 학사제도는 인증원의 기준 하에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공학교육혁신센터 강소연 교수(공과대·교육학)는 “‘국가와 사회’, ‘지역사회와 세계’에 속한 모든 과목을 공학소양 과목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교수들의 부담 탓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교과목을 공학소양 과목으로 인정하려면 해당 과목 교수들이 과목 설명 포트폴리오와 과목 운영에 대한 저널을 추가로 써야 하다 보니 모두가 꺼린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리대학교 학사제도에 대해 인증원 측은 “ABEEK 인증제 하에 학사제도를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순전히 학교의 몫”이라며 “학교 측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자율적인 운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양대 공과대는 ABEEK 인증제에서 학생들의 보다 자율적인 교양 과목 수강을 보장하고 있다. 한양대 서울캠 공학교육혁신센터장 박종현 교수는 “학생들의 선호도를 반영해 교수들이 교양 수업을 개설하고 있다”며 “MSC는 핵심교양이 아니라 따로 분리된 영역이며 공학소양이라는 것 자체는 아예 없다”고 말했다. 한양대에 재학 중인 이찬진(산업공학·16)씨는 “지정 핵심교양 4개 영역에서 각각 두 과목 이상을 이수해야해 다양한 주제의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며 “또한 타 단과대 학생들과 함께 자유롭게 교양 수업을 들을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한편 우리대학교 공학교육혁신센터 측은 여전히 인증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강 교수는 “ABEEK 인증제는 공과대에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며 “특히 외국계 회사 취업과 해외 유학이 많아진 상황에서 ABEEK 인증제는 우리대학교 공학수업의 질을 외부에 증명해주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ABEEK 인증제로 인해 공과대 학생들은 수업 선택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인증제의 취업 혜택 또한 불투명한 상태다. 혜택이 ‘협약 국가 유학 시 학사 자격 인정’ 외에 증명된 것이 없는 상황에서 학교 측은 일방적으로 ABEEK 인증제 유지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ABEEK 인증제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사 제도에 관한 학교 본부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노원일 기자 
bodobono11@yonsei.ac.kr
 

제1공학관 공사 완성 조감도. <사진제공 공과대학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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