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미 사회부장 (글로벌행정,정외·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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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1778호 제작이 한창인 9월 23일에서 24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가까운 시각이다. 정기전 취재를 마치고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돌아와 리라잇을 하고 농구 후속보도는 잠시 미뤄둔 시각. 지금 드는 생각은 사실 그냥 자고싶다. 피곤하다. 이번 주에 대체 하루 4시간 이상을 잔 날이 있던가? 나는 왜 이렇게 힘들다고 하면서도 춘추에 닿은 끈을 끊어내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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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번째 제작인지 헤아리기를 포기하고 남은 제작을 헤아리는 게 더 빠를 때쯤, 나는 왜 이곳에 와있나 생각해봤다. 하루하루 보람보다는 버티게 돼버린 나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물음이었다. 나는 어쩌다 연세춘추에 들어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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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욱 글쓰기를 바래왔던 것 같다. 그리고 대판에 꾹꾹 눌러담은 그 글씨들과 거기에 담긴 내 노력과 내 시간과 내 애정들을 사랑했다. 기자 생활 내내 생각했던 건, 내 이름을 걸고 부끄럽지 않을 것. 기사가 지면이 아깝지 않도록 하는 것. 오로지 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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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매체의 위기, 신문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라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내려간 글이 주는 그 힘을 늘 믿어왔다. 인간이 생애를 살면서 가장 많은 지식을 얻는 감각은 바로 ‘청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각이 주는 정보와 메시지가 휘발성이 강하고 정확도나 깊이의 한계가 극명한 반면, ‘글’이라는 매체는 전혀 다른 특징을 지닌다. 그 ‘다름’이 내가 글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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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과연 그러한 사람이었는가, 생각하면 여전히 부끄러움이 남는다. 학보는 세상을 바꾸기에는 너무 마이너했다. 설령 80년 전통을 지닌 연세춘추여도, 대한민국 최고의 사학 연세대의 이름을 달고 있어도 힘든 게 사실이었다. 물론 학보라서 내가 그 일을 해내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요컨대 내 능력 부족이 확실했다. 춘추에서 내 이름이 새겨진 기사는 총 32개. 그 중에 내 능력을 다 해 쓴 기사, 그리고 내 마음에 드는 기사, 내 대표기사라고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될까. 심량해보니 몇 개 안된다. 그게 4학기 째인 지금에서야 눈에 들어온다. 그게 이제야 또 새삼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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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에서는 통상 4학기가 되면 ‘부장’급이다. 데스크진으로 기사 에디팅이 주업무가 된다. 일종의 ‘절필상태’다. 그래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또 아쉬운 건 내가 남의 기사를 편집해주고 우리 부서를 총괄하는 역할을 하기에는 많은 부족함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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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인간이라는게 어떻게든 다 해나가게 되니까 인간이기는 한데, 여러모로 이번 학기는 시작부터 많은 한계에 부딪힌 느낌이다. 심적으로도 많이 지쳐있고 몸도 많이 지쳐있다. 잘 해내고 싶은데, 그게 안된다. 요컨대 내가 힘들면 남이 힘든 걸 신경 쓸 수가 없다. 부장이라고 해도 나는 언제나 똑같은 ‘박은미’였다. 그래서 실수를 했고, 다투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많은 고난과 부끄러움과 함께 걸어온 4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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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건, 윤종신의 「지친하루」 가사처럼 ‘믿어준 대로 해왔던 대로 처음 꿈꿨던 대로’ 하는 것이다. 지친다고 해서 모든 걸 다시 되돌리고 포기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기에, 그렇기에 나는 춘추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치고 두렵고 부담되지만, 절대적인 옳은 길은 없다. 내가 걷는 이 곳이 곧 나의 길이길 바라는 수밖에.

 

 

 

박은미 사회부장
eunmiy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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