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늘어나는 것 보소”, “멈출 수 없는 매운맛”, “극한의 매운맛에 도전”

위 문구들은 최근 SNS에서 음식 사진과 함께 자주 등장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넘칠 듯 얹어진 치즈와 새빨간 양념은 맛있는 음식이 되기 위한 일종의 보험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에 The Y에서는 요식업계의 식지 않는 바람,‘캡·치 경향’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맛있다’ 아닌 ‘맵다’가 주는 만족감

오픈마켓 ‘옥션’은 지난 8월 8일부터 21일까지의 고춧가루와 캡사이신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4%, 14%가량 늘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매운맛의 인기는 일 년 새 더욱 높아졌다. 왜 사람들은 매운 음식에 열광하는 걸까?
홍익대 권은교(행정·16)씨는 “평소에는‘맛있게 매운’ 음식을 찾지만,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극한의 매운맛’을 찾는다”고 말했다. 또한, 고려대 강민성(식품자원경제·15)씨 또한 “평소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데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매운 음식 생각이 난다”고 전했다. 즉, 맛있어서 먹을 때도 있지만 주로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강한 자극을 찾는다는 것이다.
한편, ‘매운맛’에 관한 사람들의 기준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12년 출시된 ‘불닭볶음면’은 최근 ‘덜 매워진 것 같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이에 대해 삼양식품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매운 음식을 먹을 때 점점 적응되는 것처럼, 소비자들이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에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소비자의 입맛이 매운맛을 더 바라게 됨에 따라 지난 8월 출시된‘불닭볶음면’ 후속작 ‘불닭볶음탕면’은 전작보다 매운맛이 5%~10%가량 추가됐다.
한편, 매운맛은 도전 대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프랜차이즈 브랜드 ‘짚신매운갈비찜’은 주문할 때 10%부터 100%까지 맵기의 단계를 정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권씨는 “맵기 단계 50%가 가장 맛있다고 느끼지만 승부욕 때문에 100%를 주문하게 된다”며 “매운 걸 참으면서 오기로 다 먹고 나면 왠지 뿌듯해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단맛에 도전하거나 짠맛에 도전하는 경우는 없는데, 이처럼 매운맛만은 다르다. 매운 음식은 음식인 동시에 모험 대상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치즈 인 더 트랩

쭉 늘어나는 고운 치즈의 자태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지경이다. 음식점 광고 사진의 전면을 차지하며 어딜 가나 사랑받는 치즈. 그러나 정말로 치즈가 맛있기만 해서 먹는 것일까?
지난 2015년 12월 롯데리아의 치즈 메뉴 ‘모짜렐라인더버거’가 출시됐을 때, 롯데리아는 모짜렐라 버거 속 치즈를 얼마나 길게 늘어뜨리는지로 등수를 매기는 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가 시작되면서 SNS에서도 인증샷이 줄지어 게시됐다. 사람들은 해당 메뉴의 맛보다 길게 늘어진 치즈의 모습에 시각적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처럼 치즈는 미각을 넘어 시각까지 사로잡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매운 음식과 치즈가 인기를 끌자 요식업계에는 크고 작은 메뉴 변화가 일어났다. 다른 치킨 업체와는 달리 ‘고소하고 담백한 맛’을 내세우던 굽네치킨은 신메뉴로 ‘굽네 볼케이노’를 내놓았다. 굽네 볼케이노 홍보 자료에 따르면, 굽네치킨은 바비큐 향의 신제품을 개발하면서 ‘차별화된 매운맛’을 선택했다. 또한, 해당 업체는 매운 음식에 치즈를 추가해 먹는 식문화를 반영해 ‘볼케이노 모짜렐라 치즈’ 등의 신제품을 개발했다.
지난 1981년부터 35년간 자체 개발한 양념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온 닭갈비 프랜차이즈 브랜드 ‘유가네’ 또한 지난 2014년 치즈에 닭갈비를 찍어 먹는 신메뉴 ‘치즈퐁닭’을 들고 나왔다. 매콤한 맛으로 주목받던 ‘죠스떡볶이’ 역시 지난 3월 신메뉴로 ‘치즈떡볶이’를 내놓았다. 이 밖에도 치즈 곱창, 치즈 순두부, 치즈 소갈비 등 치즈는 거의 모든 음식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치즈를 먹어서 맛있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인다.

‘스파이시-’ 와 ‘치즈-’의 울타리에 갇힌 혀

한편, 음식이 몇 가지 특징들로 유행을 타는 상황이 좋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있다. 강씨는 “치즈는 맛 때문이라기보다는 시각적으로 맛있어 보여서 추가하게 된다”며 “사실 느끼한 음식을 즐기지는 않는다” 고 말했다. 우리대학교 신지홍(국문·15)씨는 “치즈 메뉴가 워낙 많아서 먹게 되기는 하지만, 때때로 과한 치즈가 음식 고유의 맛을 죽이는 것 같다”며 “음식에서 치즈를 걷어낸 뒤 먹으면 맛이 없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재료 본연의 맛보다 치즈가 우선시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고 말했다.
또한 매운 음식 열풍도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는 김은혜(국문·15)씨는 “요즘은 매운 음식이 워낙 많다 보니 외식 메뉴를 정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낀다”며 “최대한 맵지 않게 조리를 부탁해도 기본적으로 음식들이 맵기 때문에 선택지가 너무 좁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몇 년째 요식업계를 평정하고 있는 두 주인공, 캡사이신과 치즈. 그 뒤에는 ‘맛’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 소비자들은 매운 음식과 치즈를 통해 ‘맛있음’을 넘어서 시각적 욕구를 충족 받고 있으며, 심리적 탈출구를 제공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 메뉴 선택의 폭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소비자들의 혀는 캡사이신과 치즈의 울타리에 갇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매운 음식과 치즈가 없으면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없는 것일까? 매 끼니가 치즈와 매운 맛 사이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봄직하다.

최서인 기자 kekecathy@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