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메마른 땅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다

▲길 위의 강아지들

비행기로만 30시간.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 지구 반대편의 나라, 칠레. 기자는 지난 여름, 그 멀고도 긴 여정에 오를 기회가 생겼다. 이번 여행의 핵심지는 바로 아카마 사막. 사막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심장은 요동쳤다. 비록 비행기 공포증이 극심한 기자이지만 죽기 전에 언제 또 사막을 가보겠냐는 심정으로 설렘 반 두려움 반 비행기에 올랐다. 세계 여행자들의 버킷리스트 중 꼭 하나로 뽑히는 아타카마 사막, 그곳의 신비함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황야를 달리며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던가. 아타카마 사막으로 가는 길은 정말이지 고생길 그 자체였다. 지난 6월 22일 오후 5시 경 인천에서 출발, 미국 댈러스 공항을 거친 기자는 30시간의 비행 끝에 6월 23일 오전 6시 경, 칠레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30시간을 날아왔는데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니. 날짜변경선 덕분에 마치 시간 여행을 한 듯한 기분이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기자는 그곳에서 기다리는 그리운 가족들의 얼굴을 보고, 무사히 도착했음에 안도했다. 
하지만 휴식도 잠시, 며칠 뒤 기자는 칠레 북부에 위치한 아타카마 사막으로 가기 위해 또 한 번 비행기에 올라탔다. 드디어 아타카마에 도착. 공항을 나오자 뜨거운 태양과 모래의 비릿한 냄새가 기자를 반겨주는 듯했다. 
곧이어 기자는 아타카마의 시내에 위치한 숙소로 가는 차에 탑승했다. 차를 타고 넓디넓은 황야를 달리는 기분은 마치 서부 영화 속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된 듯한 기분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감상도 잠시, 기자는 도로변의 무언가에 시선을 뺏기고 말았다. 좀 더 자세히 보자니 일종의 추모소 같았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채 결국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알고 보니 그것은 교통사고로 죽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해 사고 장소에 ‘추모의 집’을 지어놓는 것이었다. 칠레에 깊게 자리 잡은 가톨릭 문화와 칠레 고유의 토착 문화가 결합한 이곳의 추모소를 보니 위대한 자연 속에서의 인간의 존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사뭇 진지해진 채 기자는 다시 숙소를 향해 길 위를 달렸다. 
길 위를 달리면서 한 가지 들었던 생각은, ‘과연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였다. 차창 밖으로 내다본 아타카마는 정말 황폐했다. 수분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몇 년 전 기적적으로 내린 비 덕분에 드문드문 갈라진 땅 틈으로 나 있는 마른 풀 넝쿨 정도가 다였다. 이런 땅에 마을이 있다니,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의 ‘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 마을은 멀리서 보기에도 푸르렀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라곤 흙산의 오색빛깔 지층과 메마른 땅뿐이었는데, 어느 순간 나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막 속의 오아시스인 것이다. 
 

메말라 갈라진 땅의 모습
 

산 페드로 마을은 그렇게 신비하게 다가왔다. 마을의 입구를 지나 중심지로 들어가자, 갈수록 기대감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 흙으로 빚은 길과 벽, 길 위에서 나뒹구는 동네 강아지들, 배낭을 멘 여행객들까지…. 그 소소함이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사실 이 마을은 하나같이 흙으로 빚어져 처음 방문하는 방문객들이 보기엔 똑같아 보이는데 글씨만이 어떤 곳인지를 짐작하게 해줄 뿐이다. 반면 현지인들에게 산 페드로는 그 어디보다도 익숙한 자신들만의 동네이자, 번화가, 그리고 삶의 터전이었다. 기자는 마을을 돌아다니며 서로서로 아는 체하는 음식점 주인들, 동네 강아지들의 이름을 부르며 먹이를 챙겨주는 상점주인들, 심지어 서로 인사하는 부랑자들까지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어느새 출출해진 기자는 음식점에 들어가 앉았다. 메뉴는 피자와 샐러드. 집에서라면 전화 한 통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세상과 동 떨어져 있는 듯한 이 마을에서 음식을 접하니 괜스레 감사한 마음이 들어 ‘Propina(팁)’라고 쓰여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팁을 넣어두고 다시 길거리로 나왔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여행객들은 하나 둘 길거리로 나와 그 유명한 ‘달의 계곡’의 장관을 보기 위해 여행사 건물 앞에 줄을 서고 있었다. 기자도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짐을 챙겼다. 

▲사랑하는 사람들 기억하는 추모소


달의 계곡
 

‘Valle de la Luna’, 뜻 그대로 ‘달의 계곡’이라는 말이다. 아타카마는 전반적으로 평야로 이루어진 사막이지만, 호수에서 퇴적된 지층이 융기한 산들이 그 평지를 둘러싸고 있다. 그중 가장 큰 장관은 바로 닐 암스트롱이 달의 표면과도 같다고 감탄한 ‘달의 계곡’이다. 기자는 이곳에 오기 전부터 달의 계곡에 비친 석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해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에 해가 질 저녁 즈음에 달의 계곡을 방문하기로 했다. 식사를 마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달의 계곡 전망대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준비해 와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자도 카메라를 꺼내 들고 차에서 내렸다. 저녁 사막의 차가운 공기가 기자를 맞이했다. 
해가 저 멀리 산의 뒤편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달의 계곡은 정말 지구의 공간이 아닌 것 같았다. 지층의 각기 다른 색깔이 노을빛을 받아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빛깔을 내뿜었는데, 순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김수현이 나타나 인사를 건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것만 같이 이색적인 풍경이었다. 아무리 카메라에 그 광경을 담아 보려 해도 담을 수가 없어, 기자는 몇 번의 셔터 소리 후 카메라를 도로 가방에 넣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본 전망대에선 바닥에 앉아 서로 기대는 연인의 뒷모습이 눈을 끌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그들의 행운에 부러움을 느끼며 기자는 다시 마을로 돌아가는 차를 탔다. 
 

▲석양이 지는 달의 계곡

숙소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니 누런 물이 씻겨 내려갔다. 온종일 맞은 모래바람이 이렇게 씻겨 내려가는 걸 보니 그제야 사막에 온 것이 실감이 났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창밖이 보이는 침대 위에 몸을 뉘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맞은 여름밤은 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릴 듯 아름답게 빛났다. 생애 첫 사막, 아타카마 사막은 메마른 겉모습과 달리 생명력과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밤하늘의 별들마저 이를 증명하는 듯했다. 
 

글 · 사진 조승원 기자
jennyjotw@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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