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게임 유저가 말하는 게임 속 성차별

 

여성 캐릭터에 대한 성 상품화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던 게임 ‘서든어택 2’가 29일(목) 드디어 서비스 종료된다. 게임 유저이자 한 명의 여성으로서 성 상품화 게임의 몰락을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서든어택2’의 서비스 종료는 한국 게임의 수치로 기억될 만한 큰 사건이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남성중심적 게임 문화가 바뀔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사실을, 게임을 하면서 자주 깨닫는다.

 

1. 여자다!

나는 게임을 할 때 대개는 여자라는 것을 숨긴다. 사실 굳이 여자인 것을 밝히지 않아도 충분히 피곤한 상황이 많기 때문이다. ‘오버워치’에서는 팀보이스 채팅 기능을 지원하는데, 접속 시 ‘흠흠’하는 순간 ‘여자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게임하는 내내 참 다양한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여성 유저 이은지(22)씨는 “같은 팀 여성 유저가 캐릭터를 고르던 중 ‘그 캐릭터는 넣어두라’는 말을 했는데, 다른 남성 두 명이서 ‘깊숙이 넣어’라는 둥 성적인 농담을 했다”며 불쾌한 심정을 토로했다. 남성 유저들은 ‘여성분 목소리가 예뻐서 힘이 난다’, ‘져도 화가 안 난다’고 말하거나, 여성 유저를 보호해주려 하기도 한다. 이 역시 뒤가 구리기는 매한가지다. 이씨는 “게임상에서 실력과 전혀 관계없는 ‘목소리’로 칭찬받는 것이 썩 유쾌하지 않다”며 “포지션에 따라 팀원들이 서로를 지켜주는 것은 당연한데 ‘여성이라서 지켜준다’는 말도 이상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처럼 단지 여성 유저라는 이유만으로 팀원이 아니라 전리품, 보호해야 할 대상 혹은 ‘기쁨조’처럼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닉네임이 여자 이름인 것을 본 남성 유저들의 반응이다. 여성들은 닉네임으로 실명을 쓰는 것만으로 원치 않는 관심에 노출되기도 한다.

2. 아 여자네, 이 판 망함.

지난 8월 18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도 한 여성 유저가 겪은 불편한 사연이 게시돼 논란이 일었다. 익명의 제보자는 해당 게시물을 통해 ‘잘하는 팀원에게 칭찬했다는 이유로 ‘여왕벌’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게임 커뮤니티들을 기웃거리다 보면 ‘여자면 여왕벌이거나 버스다’라는 말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말은 여성 유저들은 남성 유저들을 거느리며 덕을 보려 하거나, 실력이 없어서 팀원들의 플레이에 편승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뜻이다. 이는 여성은 남성의 관심을 갈구한다는 착각과 여성은 남성보다 무능력하다는 편견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게임 실력은 (피씨방비/총지출)*100과 비례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성별과 관계없이 게임을 잘하는 사람은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여성 유저들은 게임 내에서 판단력이 부족하거나 조작이 미숙하면 마치 그것이 ‘여성’의 특성인 것 마냥 무차별적인 비하에 시달리게 된다. 이씨는 “한 여성 유저는 게임 진행이 미숙하다는 이유로 성별을 추궁당했고, ‘여자는 집안일이나 처할 것이지 왜 게임해서 민폐냐’ 등의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일례로 여고생 신분의 오버워치 프로게이머인 ‘게구리’ 선수는 프로 경기에서 믿기 어려운 수준의 게임 능력으로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했다는 누명을 썼다. 게임 커뮤니티에서는 일부 유저들로부터 ‘여자가 그게 가능할 리 없다’는 식의 윽박을 비롯해 ‘여자가 맞냐, 성기를 인증하라’는 폭력적 발언까지 자행됐다. 남자 선수였다면 겪지 않아도 됐을 억지 주장들이었다.

 

3. 여자니까 힐러 하겠지?

팀원들간의 협력을 통해 적을 무찌르는 AOS 게임에서 의사 역할인 ‘힐러’는 꼭 필요한 포지션이다. 그러니 누구든지 대여섯 명 중 한 명은 힐러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들이 힐러를 할 것’이라는 편견이 존재한다.

이 편견에는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한다. 돌격해서 길을 뚫고 다른 팀원들을 보호하는 탱커나 적팀에게 피해를 입히고 죽이는 딜러는 ‘여성스러운’ 역할이 아니기 때문에 여성들이 선호하지 않으리라는 짐작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성 탱커가 ‘하드 캐리’하는 판을 여러 번 보았다. 나 자신도 여자 딜러이며, 대표적인 여성 프로게이머인 ‘게구리’ 선수도 서브탱커이다. 여자라서 겁이 많고 더 안전한 플레이를 추구할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아리송하다. 전투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고 팀원들을 보조하고 치유하는 힐러의 특성이 흔히들 생각하는 ‘내조’와 닮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여자를 뒷선에 두고 지키겠다’는 생각인지는 알 길이 없다.

 

4. 여자가 무슨 게임이냐?

여성 게임 유저는 이처럼 게임 내에서 성희롱과 차별적 언행을 종종 겪는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여자가 게임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이퍼즈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익명의 게시자는 ‘무슨 여자애가 피시방에 게임하러 오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또한, 대전격투 게임인 ‘철권’을 즐기는 A씨는 “연락하던 남성이 있었는데, ‘철권을 즐긴다’고 말하자 놀라더니 단번에 관심이 식고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이처럼 환상과 선입관으로 이뤄진 ‘여성’의 이미지를 피부로 느끼고 그에 맞춰 재단당할 때 그 불쾌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피시방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왠지 눈치가 보이고, 구석 자리를 찾아 들어가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시선 때문이다.

이런 모든 불편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도 게임을 할 것 같다. 재미있으니까. 하지만 위와 같은 편견들 때문에 나는 아마도 게임 할 맛 안 나는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게임하는 동안 나는 팀원들의 전우이지 애인도, 공주님도, 짐 덩어리도 아니다. 이런 상식이 통하는 깨끗한 게임판을 바라 본다.

최서인 기자
kekecathy@yonsei.ac.kr
<자료사진 트위터 '미애는번데기', 오버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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