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라는 이름의 폭력

▲이상원 (역사문화·15)

대다수의 우리학교 학생들은 ‘추석’을 알고 있을 것이다. 추석맞이 이벤트, 추석 상여금, 다른 공휴일과는 다른 ‘3일 연휴’ 등 추석은 모두의 주목을 받는, 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명절이기 때문이다.

추석은 1989년부터 설과 함께 ‘3일 연휴’로 제정된 이후 명실상부한 한국의 가장 큰 명절로 자리를 굳혀 왔다. 연휴 제정 이전에도 기업체에서 발 벗고 나서서 자체적으로 3일에서 5일의 휴가뿐만 아니라 100%에 가까운 수여금까지 지급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명성답게 추석에는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는 등, 서로 함께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만큼 이 ‘민족의 대명절’은 한국인들에게 큰 의미가 있는 명절이다.

하지만 요즈음 이 연휴는 모두에게 마냥 즐거운 명절이 아니다. 민족의 즐거운 명절문화가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성인 1009명을 대상으로 추석에 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약 30%의 응답자가 추석 명절이 다가오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응답했다. 즐겁지 않은 이유들은 ▲경제적 부담(47%) ▲가사부담(15%)이 대다수로 명절에 오고가는 선물비용뿐만 아니라 수십만 원에 달하는 차례 비용, 차례 준비 등이 힘든 이유로 지적됐다. 차례를 비롯한 추석의 여러 관례가 이제는 ‘반드시’라는 부담감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특히 차례 문화는 이러한 부담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조율이시’, ‘홍동백서’와 같은 어려운 차례상 예절부터, 다 처리하기도 힘든 명절음식, 그리고 그 음식을 만드는 것을 강요받는 집안 여성들의 고생까지. 이제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악습’이 되어가고 있다. 조상을 추모하고 가족의 화합의 계기가 되었던 명절과 차례 문화가 오히려 부담과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고생’들은 전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문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전통문화에 관한 한국에서 가장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성균관 관계자들 역시 ‘차례상을 차리는 데 언급되는 규칙은 근거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실제로 차례상 양식의 근거로 흔히 제시되는 ‘주자가례’나 ‘격몽요결’ 등 에서도 ‘조율이시’, ‘홍동백서’와 같은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대신 소박한 차례상을 권장하고 있을 뿐이다. 여성들의 의무로 여겨지는 차례상 준비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과거에는 차례상 준비를 남성이 전담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이 차례를 지낼 때 배제된 것 역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불편함이 사실은 현대에 만들어진 문화인 것이다.

실제로 현대사회에서는 이렇게 ‘만들어진’ 근거 없는 전통이 많다. 에릭 홉스봄의 저서 󰡔만들어진 전통󰡕은 대부분의 전통이 일정한 필요성인 사회통합, 소속감, 충성심, 애국심 등에 의해 생산된 산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과거라는 권위에 기대며 그것이 ‘과거’부터 내려온 것 이라는 주장 자체만으로 정당하다고 간주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만들어진 전통’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제 과거의 문화는 현재의 모습과 다를 가능성이 농후하며, ‘전통’이라는 이름의 ‘허례허식’은 ‘과거’를 무기 삼아 우리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 과거 선조들의 삶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선조들이 지낸 추석의 모습은 ‘추석 선물세트’나 ‘홍동백서’, ‘조율이시’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달빛 좋은 날 일가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여 회포를 풀고, 조상을 기억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크게 다를 것 없이 중요한 일일 것이다. 바쁘고 멀어진 현대 사회에서 일가친척이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여, 회포를 풀고 돌아가신 집안 어른을 기억하는 것이 우리가 기념해야 할, ‘선조’들이 기념했던 명절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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