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저서는 과연 진실이었나

13세기, 한 베네치아 상인이 몽골 제국에 도착한다. 쿠빌라이 칸은 이 상인의 말재주에 감탄해 그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 덕에 상인은 칸의 극진한 보호를 받고,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이 베네치아 상인, 혹시 아는가? 신비로운 동양 세계를 탐험했던 남자, 그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다. 

폴로는 다양한 체험을 바탕으로 『동방견문록』이라는 책을 작성했고,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동양 세계에 매료됐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폴로의 탐험기록과 그의 책 집필에 관해 의문점이 존재한다. 과연 그를 둘러싼 의문점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의문점 1 : 『동방견문록』, 누구에 의해 쓰였나?

폴로의 체험담을 토대로 한 내용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가 직접 책을 집필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실 폴로가 직접 쓴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책을 써줬던 것일까? 

칸의 사랑을 받았던 폴로는 쿠빌라이가 붕어한 후 그곳에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베네치아로 돌아온 지 4년 후에 베네치아와 제노바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 그 전쟁의 포로가 돼 폴로는 제노바의 감옥에 갇힌다. 감옥에 있는 동안 폴로는 피사 출신의 작가인 루스티켈로를 만났다. 폴로는 그에게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줬고, 이를 바탕으로 루스티켈로가 작성한 것이 그 당시 『세계의 기술』이라고 불렸던 『동방견문록』이다. 

『동방견문록』이 완성된 해인 1301년에 폴로도 감옥에서 풀려나게 됐다. 그의 책이 출간됐지만, 그의 여행기를 입증해 줄 사람이 없어 사람들은 그를 ‘허풍쟁이’ 취급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폴로가 백만 가지의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전했다고 해 그를 ‘백만 선생’이라고 불렀다고도 한다. 이런 이야기만 보더라도, 사람들이 그의 말을 얼마나 믿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폴로가 죽기 전까지 그의 여행기는 입증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됐다. 그가 죽을 당시, 그의 친구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거짓말임을 고백하고 회개하기를 권했다. 그러나 폴로는 친구들에게 ‘나는 내가 본 것의 절반도 채 전하지 못했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의문점 2 : 폴로의 말은 진실인가요?

 

폴로의 여행기에 대한 의혹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나폴리 대학의 다니엘 페트렐라 교수가 이끄는 고고학 연구팀은 ‘그가 동방을 여행한 적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페트렐라 교수 연구팀은 ‘폴로가 쿠빌라이에게 당시 일어났던 두 차례에 걸친 일본 침략 (1274년과 1281년)을 서술한 부분이 있으나 첫 번째 탐험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됐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 1281년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기억할 수 없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네이버 캐스트 「인물 세계사 편 : 마르코 폴로」를 통해 ‘폴로는 자신이 양저우(揚州)에서 관리로 일했다고 주장했지만, 그 어떤 사료에도 폴로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표씨는 폴로가 ▲젓가락 사용, 한자, 전족 풍습, 만리장성 등을 언급하지 않은 점 ▲여행 일정 중 상당 부분이 누락된 점 ▲ 자신이 몽골인들에게 알려줬다던 ‘투석기 제작법’이 중국 기록에는 아랍 기술자의 도움으로 표기된 점 등을 통해 의혹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경북대 사학과 최윤정씨는 2011년 인문노총 제65집에 실린 자신의 논문 「몽골제국 유산 찾기와 마르코 폴로를 위한 변명」에서 ‘중국 전적에서 그의 사적이나 이름이 보이지 않는 것 (중략) 만리장성, 차, 한자, 전족 등을 언급하지 않은 점을 거론하는 것은 700년 전이라는 시대와 폴로의 관심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몰역사적이고 편협한 인식’이라고 주장했다. 최씨에 따르면 폴로는 장사꾼이었기 때문에 연도나 인물 계서에서는 착오가 있을 수 있으나 정치적 사건이나 ‘뱃길’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나타냈다는 것이다. 우리대학교 마이클 호프(Michael Hope)교수(UIC‧몽골사) 또한 “대부분의 몽골 전문가들은 그의 체험에 기반해 작성된 『동방견문록』을 단순히 꾸며냈다고 보지 않는다”며 “그가 전했던 정보는 페르시안 또는 중국 문서에 실제로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한 “몽골 제국의 성장이나 칭기즈 칸의 자식들 간 일어났던 내전, 쿠빌라이 칸이 서아시아의 몽골 통치자들에게 공주를 보냈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그가 볼 수 없었던 문서들에 기록돼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호프 교수는 “루스티켈로가 이야기를 더 재미있게 하는 과정에서 과장했을 수는 있으나 폴로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거나 거짓말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마르코 폴로, 동서양의 다리를 놓다

 

20세기에 많은 사람이 동방 세계를 여행하면서, 폴로가 이야기했던 사실들이 상당 부분 옳았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여전히 폴로의 『동방견문록』이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의 체험에 기반을 둔 저서가 서양인으로 하여금 동방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갖도록 했다는 것이다. 『동방견문록 : 마르코 폴로의 길을 걷다』에 따르면, 그가 죽고 난 후 동방견문록은 유럽에서 성경 다음으로 인기 있는 책이었다고 한다. 현재 루스티켈로의 원본은 남아 있지 않으나, 수많은 사람이 필사를 했고, 인쇄술이 발전한 이후로는 다양한 판본이 제작돼 많은 사람이 이를 통해 동방세계의 신비로움에 매료됐다. 

동방견문록의 의의는 단순히 유럽 사람들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켰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폴로가 묘사하는 중국 왕조는 당시 몽골족이 세웠던 가장 영향력 있는 ‘제국’이었다. 미지의 세계였던 동양에서 이러한 강력한 군주가 탄생했음을 이야기로 접한 사람들은 이곳을 탐험해보고자 했고,『동방견문록』은 이들을 위한 ‘지침서’가 됐다. 호프 교수는 “폴로의 책은 많은 후대의 외교관들 및 탐험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며 “실크 로드의 주요 무역지를 설명하고자 한 베네치아 상인이었던 페골로티(Pegolotti)나 발틱 해부터 중앙아시아까지의 육로를 정리해놓고자 한 앤서니 젠킨슨(Anthony Jenkinson) 등 다양한 탐험가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전했다. 또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신대륙 아메리카를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가 동방견문록을 그의 여정에 가져가서 영감과 자신감을 얻기 위해 자주 읽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콜럼버스가 읽었던 동방견문록을 보면, 빽빽하게 메모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은 폴로와 그의 이야기를 담은 저서 『동방견문록』. 의문점은 남지만 많은 사람에게 큰 영향을 줬던 것은 사실이다. 그의 말이 얼마나 진실이었는가도 중요하지만, 한 상인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연결고리가 됐다는 점은 그 자체로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연세춘추
chunchu@yonsei.ac.kr
<자료사진 The Salviati Architectural Mosaic Datab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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