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신촌역사

잘 지어진 ‘랜드마크’ 하나는 해당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 된다. 영국의 빅 벤, 프랑스의 에펠 탑,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 등의 랜드마크는 오랜 시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신촌 하면 떠오르는 명소를 꼽으라면 대부분 빨간 잠수경 정도를 떠올리겠지만, 이외에도 신촌에는 사실 많은 랜드마크들이 존재한다. 이에 기자가 직접 신촌의 여러 랜드마크들을 탐방해 봤다.


역사에서 시계탑으로, 이번엔 잠수경으로
 

어느 지역이든 기차역은 만남의 광장이 될 때가 많다. 교통이 편리하고 보통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후문에 위치한 경의선 신촌역사는 신촌에서 꼭 들러봐야 할 랜드마크 중 하나다. 
경의선 신촌역사는 192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그 후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타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또한 신촌역사 건물은 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 방식을 잘 보여줘 지난 2004년 등록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06년 7월 12일부터 신촌 민자역사의 영업이 시작되며 신촌역사는 역의 기능을 상실한 채 관광안내소로 쓰이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신촌역사는 쇼핑몰이 들어선 거대한 민자역사 앞에서 쓸쓸해 보이기만 한다.
지난 1984년 신촌에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된 뒤부터는 2호선 신촌역 부근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촌이 지금보다 훨씬 더 번성했던 1990년대에는 신촌역 1번 출구 앞의 현대백화점 시계탑이 약속 장소로 널리 쓰였다. 휴대전화가 거의 보급되지 않았던 당시에 사람들은 시간을 확인하기 편한 시계탑에서 약속을 잡았고, 그로 인해 시계탑 주위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시계탑은 옛날의 위상에 비해 많이 초라해진 상태다. 현재 신촌의 중심지가 연세로 쪽으로 옮겨 갔고,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더는 시계탑에서 시간을 확인하지 않게 됐기 때문이다.
최근 신촌에서 시계탑의 위상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유플렉스 앞의 ‘빨잠(빨간 잠수경)’이다. ‘빨잠 앞에서 만나자’는 말이 시계탑 앞에서의 설렘을 대신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신촌에서 약속을 잡을 때 가장 애용하는 장소가 빨간 잠수경인 만큼 빨간 잠수경이 있는 유플렉스 앞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그렇다면 이런 빨간 잠수경은 대체 누가 만든 것일까? ‘빨간 잠수경’은 설치미술가 육근병 작가의 작품으로, 원제는 「생존은 역사다」이다. 윤 작가는 거울을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시선을 담아내려 했다고 한다. 한편 사람들에게 불리는 ‘빨간 잠수경’이라는 이름은 고객 공모전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신촌 거리에서, 빨간 잠수경은 사람들을 안내하는 등대처럼 서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신촌의 명소
 

랜드마크는 도시 이미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일부 랜드마크들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빨간 잠수경 옆에 위치한 빨간색 버스 모양의 ‘신촌 플레이버스’는 지난 2014년 12월에 완공된 복합 문화공간이다. 이층버스를 리모델링해 만들어진 플레이버스는 서대문구청이 추진한 신촌 랜드마크 사업을 통해 제작됐다. 제작 전 시민 선호도 조사를 실시해 시민들의 의견을 디자인에 반영했고, 최종적으로 빨간색 이층버스 모양의 디자인으로 확정됐다.
플레이버스는 ‘추억’을 담고 있는 공간을 표방하며 만들어졌다. 플레이버스는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음악 체험 공간 ▲음향시설이 완비된 DJ부스 ▲신촌의 모습을 보여주는 갤러리 존 등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플레이버스 내부에 설치된 스튜디오에서는 일반 시민들도 누구나 개인 인터넷 방송을 할 수 있다. 
한편 플레이버스가 위치한 유플렉스 쪽에서 신촌역 2번 출구 방향으로 걸어가다 보면 길거리에서 종종 피아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홍익문고 앞에는 낡은 피아노가 놓여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길거리 연주를 하는데, 이 피아노가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피아노는 비영리단체 ‘달려라 피아노’가 주관하는 캠페인의 일환이다. 중고 피아노를 기증받아 새롭게 디자인해 거리에 설치하는 이 캠페인은 선유도공원, 서울대공원 등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실시돼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신촌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는 언제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신촌역을 벗어나면 숨은 명소들을 더 찾을 수 있다. 신촌역에서 서강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예식장 케이터틀(구 거구장) 앞에 두 아이의 모습을 한 동상이 있다. 겨울이 돼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두 아이 동상에 목도리나 털모자 등을 씌워 주기도 한다. 동상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전달하는 셈이다. 
우리대학교 내에도 유명한 랜드마크가 존재한다. 중앙도서관 앞 백양로 광장에 있는 독수리상은 우리대학교를 방문한 사람들이 꼭 들르는 곳 중 하나다. 독수리상은 우리대학교의 상징인 독수리를 캠퍼스 안에 세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지난 1970년, 직접 700여만 원의 기금을 모아 세운 것이다. 날아오르기 직전의 모습을 한 독수리의 모습처럼, 독수리상에는 비상을 꿈꾸는 학생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신촌 플레이버스


뉴욕 월스트리트의 황소 동상은 월스트리트의 이미지와 조화를 이루며 매년 수많은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잘 만들어진 랜드마크는 단순한 만남의 광장 이상으로 해당 지역 이미지를 재창조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신촌에는 아직도 숨겨진 명소가 많다. 주변에 관심을 갖고 신촌을 둘러본다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랜드마크가 탄생할지도 모른다.

최형우 기자
soroswan@yonsei.ac.kr
<자료사진 문화재청,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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