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왕은 만민 위에 군림했고, 모든 국가질서의 중심에 서 있었다. 하지만 체통을 지키며 위엄 있게 명령을 내리는 왕의 모습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화를 못 참고 욕설을 하거나 사냥에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지는 등 너무나도 인간적인 왕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 조선의 왕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벽하고 이상적인 존재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기자는 왕들의 숨겨진 ‘찌질함’을 파헤쳐 『찌질한 왕조실록』을 작성해 봤다.

왜란 겪으며 찌질해진 선조(宣祖)

찌질함은 다양한 상황에서 발현된다. 원래부터 찌질한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은 특별한 상황을 계기로 급격하게 찌질해지기도 한다. 선조(宣祖)가 바로 그런 경우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꽤 유능한 왕이었던 선조는 임진왜란을 겪으며 그 전까지 쌓아온 이미지를 완전히 잃고 만다. 전쟁 이후 육상에서 조선군이 잇따라 패퇴(敗退)하자 선조는 백성을 등지고 명으로 망명할 계획을 세운다. 비록 명이 망명을 거부해 선조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후 왕에게 버림받은 조선 땅이 왜군에게 짓밟혔음은 당연한 일이다.
선조의 찌질함은 전후에 행해진 논공행상(論功行賞)*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피난을 떠날 때 자신을 보필했던 신하와 내시들에게는 무엇이든 선물하려 바빴지만, 목숨 걸고 왜적과 싸운 장수들과 의병장들에게는 너무나도 인색했다. 심지어 선조는 ‘이번 왜란에 적을 평정한 것은 오직 중국 군대의 힘이었다’며 전쟁 승리의 공을 전부 명에게 돌리기까지 한다. 이는 당시 선조가 느낀 자격지심과도 연관이 깊다. 전쟁 과정에서 보여준 무능함으로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잃은 선조와는 달리 이순신 등의 장수들은 전쟁에서 활약하며 백성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고 있었다. 선조는 자신과는 달리 전쟁에서 활약을 보여준 무신들에게 질투를 느꼈고, 끝까지 그들의 활약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인조(仁祖)의 찌질함이 백성을 울리다

전쟁 과정에서 찌질함을 보여준 왕은 또 있다. 인조(仁祖) 역시 두 번의 전쟁을 겪으며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인조가 즉위할 당시에는 오랜 기간 중국을 지배해 온 명이 몰락하고 청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당시 청의 국력은 중국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강력한 수준이었다. 이렇게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시점에서 인조는 쓰러져가는 명을 끝까지 상국으로 섬기며 청에 대한 명확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름만 있고 실속은 없는 중립 정책을 유지하며 우물쭈물하는 사이 청은 조선을 거세게 공격해왔다. 마땅한 대응책 없이 맞이한 전쟁의 결과는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평가되는 삼전도의 굴욕이었다. 삼전도에는 청 태종이 옥좌에 거만하게 앉아 있었고, 인조는 청 군사의 호령에 맞춰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 의식을 마쳤다.
청에게 패배를 당한 뒤 수많은 백성이 청으로 끌려가 수모를 당하게 되었고, 정절을 잃은 뒤 조선으로 돌아온 부녀자를 일컫는 말이었던 환향녀(還鄕女)는 ‘화냥년’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왕 하나의 찌질함이 수많은 백성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다.

세종(世宗)과 성종(成宗), 성군도 찌질했다

앞의 두 사례처럼 심각한 찌질함은 아니지만, 성군으로 추앙 받는 세종(世宗)도 생활 습관에서는 찌질함을 보였다. 운동을 싫어하고 육식을 즐긴 탓에 각종 성인병을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버지인 태종이 죽고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고기를 끊고자 했는데, 밥상에 고기가 없으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또 다른 성군인 성종(成宗) 역시 재미있는 일화가 존재한다. 성종은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특히 동물 기르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왕실에서 기르는 원숭이에게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선물하려 했을 정도다. 이에 신하들이 반발하자 ‘내가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며 어설픈 변명을 했다. 실제로 성종 재임 기간 내내 신하들로부터 성종의 취미에 대한 상소가 끊이지 않았고, 그때마다 성종은 어쩔 수 없이 주장을 굽혀야만 했다. 그럼에도 성종의 취미는 계속돼 매 사냥을 하다가 신하들에게 구박받고, 그림을 구경하다 핀잔을 듣기도 했다. 부모님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잔소리를 듣는 오늘날의 학생들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존재하던 왕. 그들에게도 분명 찌질함은 존재했다. 완전한 존재로 여겨지던 왕에게서 이런 찌질함을 보며 우리는 그들 역시 인간이었음을 깨닫는다. ‘찌질함’이라는 것은, 시대와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특성이 아닐까. 어쩌면 찌질함은 우리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특성인지도 모른다.

*논공행상: 공적의 크고 작음 따위를 논의하여 그에 알맞은 상을 줌
**삼배구고두: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땅에 댄 다음 머리를 땅에 닿게 3차례 조아리는 청 고유의 경례 방식

 

최형우 기자 

soroswan@yonsei.ac.kr
<자료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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