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처음 시작하는 친구들에게 우린 말한다. “너무 좋아하지 마,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괜찮은’ 척, ‘쿨’한 척, 연애에서 ‘을’이 되지 않으려 발버둥 친다. 모두들 속은 시커멓게 타고 있지만, 겉으론 멀쩡한 척한다.
이런 이들을 위로 해주는 건 다름 아닌 영화와 드라마 같은 미디어일지 모른다. 다양한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찌질한’ 연애의 민낯은 수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곤 한다. 이번 기사에서는 우리들이 주인공과 함께 웃고 울었던 영화와 드라마를 짚어보며 우리들의 연애가 왜 찌질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봤다.

최근 재개봉한 『500일의 썸머』의 주인공 톰은 얼핏 보면 사랑에 미친 풋내기다. 아주 순진하게도 그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톰에게 마치 ‘운명처럼’ 다가온 썸머는 환상과도 같은 존재. 그녀를 두고 톰은 혼자 사랑하고 아파한다. 썸머는 영화에서 초지일관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진지한 관계는 싫다하지만, 그러던 그녀도 결국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자신의 운명이라며 그와 결혼한다. 결국 관객들에게 썸머는 ‘나쁜 년’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데 과연 이 연애에서 톰은 진정한 ‘을’이었을까? 톰은 운명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자신의 감정을 사랑하기 급급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길 두려워했다. 그 흔한 고백도 제대로 하지 못한 그는 그녀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고, 그녀의 가치관,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톰은 찌질했고, 찌질한 톰은 그렇게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는 재개봉 후 10년 전의 기록을 깼을 만큼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만큼 이들의 현실적인 연애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린 어느새 찌질한 남자 주인공 톰과 공감하고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실제 현실 속 우리들의 연애는 어떨까? 우린 여전히 ‘을’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 많이 사랑하고 표현하는 것이 ‘을’이 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린 계산적인 사랑을 한다.

“우연,
그건 항상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톰은 마침내 기적 따위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운명 같은 건 없다.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없다.
그는 알았다. 지금 그걸 확신했다.”

-영화 『500일의 썸머』 中

한편, 이런 찌질한 연애의 모습은 드라마에서도 변용돼 나타난다. JTBC 드라마 『청춘시대』를 보면 사랑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승연(정예은 역)이 나온다. 자신이 애인을 좋아하는 만큼 사랑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아는 그녀는 솔직하게 감정표현을 하지 못한다. 약속시간에 늦는 남자친구에게 화는 못 낼망정 자신도 늦는다는 거짓말을 한다. 제대로 사랑받고 있지 못하지만 ‘쿨’한 척을 하고 친구들 앞에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연인인 마냥 스스로를 속인다. 한 번이라도 본인이 더 좋아하는 연애를 해 본 사람이라면 이런 그녀를 씁쓸하게 바라보게 된다. 유독 사랑 앞에서만 찌질한 그 모습이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방영된 tvN 드라마 『또!오해영』에서도 연애의 찌질한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사랑에 매달리는 서현진(오해영 역), 그런 그녀를 밀어내며 자신의 감정을 재고 계산하는 에릭(박도경 역). 두 사람 중 누가 더 찌질한지는 모르는 일이다.

연애할 때마다 찌질해지는 우리, 정말이지 왜 그런 걸까? 『청춘시대』에서 한승연(정예은 역)은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을 좋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수만 가지, 그러나 그 사람을 좋아해도 되는 이유는 딱 한 가지. 좋아하니까. 너무너무 좋아하니까” 그렇다. 대답은 단순하다. 우리가 찌질해지는 이유는 상대방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찌질하게 변해가는 내 모습을 알면서도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찌질하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찌질하다는 것은 그만큼 풋풋하고 순수하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500일의 썸머』에서 톰은 사랑 앞에서 너무나 미숙하고 찌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스럽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톰은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사랑은 운명보단 행동이란 것을 깨달은 그는 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잡게 된다. 그러니 내 찌질한 모습이 애인을 떠나게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미워하지 말자. 그리고 실패한 연애를 두고 너무 오랫동안 마음 아파하지도 말자. 또 한 번의 경험을 통해 우린 성장했고 앞으로의 성숙한 연애를 맞이할 수 있게 될 테니까!

조승원 기자 

jennyjotw@yonsei.ac.kr
<자료사진  영화  『500일의 썸머』  스틸컷, JTBC  『청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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