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가다

‘낭만의 나라 프랑스’는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연이어 발생한 테러는 더 이상 프랑스를 낭만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기자가 마주친 도처의 무장경찰들과 두 번의 총성은 이제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익숙한 광경일 것이다. 과거에는 당연했던 낭만이 이제는 사치가 되어버린 그들의 삶을 찾아서 기자는 지난 8월 프랑스로 향했다.
 

#1. ‘파리’만 날리는 파리?

 

고풍스러운 건축물 아래 지하도에는 여전히 구린내가 진동했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거지가 있는가하면 하이힐을 신고도 거침없이 낯선 여행자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주는 당당한 파리지엔느까지도. 3년 전 처음 마주했던 파리의 풍경은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였다. 언제나처럼, 프랑스인들은 느긋하게 와인을 마셨고 밤빛으로 물든 센 강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덕분에 악명 높은 파리 소매치기단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마음 속 한구석에 드는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만은 늦출 수가 없었다. 3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장총을 둘러맨 경찰들을 볼 수 있다는 것뿐이었다. 
기자는 잠시 테러의 기억을 잊기 위해, 파리에서 가장 낭만적인 곳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을 찾았다. 노트르담 성당의 타종소리가 고즈넉하게 들리는 이 서점은 생전에 헤밍웨이가 자주 방문했던 곳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비포 선셋』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몇 년 전부터 이곳은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점 1층에 있는 “The Old Smoky Reading Room”이라는 낡은 간판을 따라,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2층에는 손님들을 위한 독서공간이 마련돼 있다. 걷다가 지친 여행자들이여, 잠시 이곳에 들려 고서의 냄새와 그 속에 담긴 지혜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2. 아비뇽의 인연

 

아비뇽(Avignon)하면, 뒤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유수(幽囚).  ‘잡아 가둔다’는 단어의 본뜻은 다소 생소할지라도, 누구나 한번쯤 중학교 세계사 시간에 ‘아비뇽 유수’라는 사건은 배운 적이 있을 것이다. 책에서만 봐왔던 유적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를 안고 중세 프랑스의 중심도시 ‘아비뇽’으로 향했다. 아비뇽 중앙역에서 나와 눈앞에 바로 보이는 빛바랜 중세 시대의 성곽, 그 위로 저무는 붉은 해넘이의 광경은 여행 중반에 다다른 기자의 피로와 고단함을 단숨에 사그라들게 했다.
‘아비뇽 교황청’은 14세기 왕의 권력에 굴복하여 쓸쓸히 살던 교황의 성이라고는 믿기 힘들만큼 크고 웅장했다. 안내 책자에 따르면, 아비뇽 교황청은 시간이 흐르면서 증축되어 오늘날과 같은 규모의 외형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더욱이 성 안에는 지하보물창고, 대규모의 화랑 등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공간들도 숨어 있었다. 이러한 당시의 궁전 건축양식과 교황들의 업적을 토대로 오늘날 학계에서는 이 시기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일고있다.
한편, 아비뇽은 기자에게 잊지 못할 ‘인연’을 안겨준 도시다. 그 인연은 바로 파리행 야간버스를 놓쳐 울상이던 기자에게 손을 내민 어느 이름 모를 일본인 할아버지. 그는 본인을 “도쿄 근처에 있는 여자대학에서 영양학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소개하며 “학생이 마치 본인의 제자 같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늦은 밤 11시, 밤길을 뛰어다니며 기자를 위해 3성급 호텔을 잡아줬다. 고마운 마음에 성함과 연락처를 물어봤지만 할아버지는 끝끝내 밝히기를 거절했고, 마지막으로 “나로 하여금 한일 양국관계가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만을 남긴 채 유유히 사라졌다.

 

#3. 진정한 반 고흐의 팬이라면?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네덜란드는 그를 낳았지만 그를 천재로 만든 곳은 프랑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별이 빛나는 밤에」, 「해바라기」 등 많은 대표작이 바로 프랑스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 남부에 있는 ‘아를(Arles)’은 그가 생전에 사랑했던 도시로 고흐의 팬이라면 누구나 가보고 싶은 성지일 것이다. 아비뇽에서 버스를 타고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아를은 하루 안에 도보관광이 가능한 작은 도시다. 고흐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 외에도 원형경기장, 론강의 유람선 투어 등 즐길 거리가 많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만약 시간적 여유가 없는 여행객이라면 반드시 관광안내소에 들러 무료 가이드맵을 받아 보자. 친절한 안내소 직원으로 하여금 ‘반고흐 속성코스’를 소개받을 수 있다.

▲반고흐의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의 배경


버스에서 내린 순간 기자는 왜 고흐가 그토록 아를을 사랑했는지를 단숨에 알 수 있었다. 낡은 도시의 건물들은 고흐의 시간 속에 멈춰버린 듯, 그가 즐겨 쓰던 노란색의 옷을 입고 이방인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도시를 거니는 동안 기자는 마치 그의 작품 속 숨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황홀함에 취하기도 했다.
한편, 파리 근교에 위치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 이하 오베르)는 그가 죽기 전 70일동안 남긴, 대다수 걸작들의 배경이자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도르가 잠들어 있는 작은 시골마을이다. 하지만 아를에 비해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명 관광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관광안내소에 가면 ‘한국어 가이드맵’을 받을 수 있다. 파리의 유명 박물관에서도 받지 못하는 한글 서비스를 이곳에서 받을 수 있다니.
이에 대해 오베르 관광부서 관계자 캐서린 길리엇(Catherine Galliot)은 “오베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에는 한국인이 가장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난 2015년 여름 한 한국 학생의 도움을 받아 한국어 지도를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더욱이 “지도 디자인의 개선뿐만 아니라 박물관, 식당 등 여러 곳에 한국어 번역서비스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흐에 대한 사랑이 이곳 작은 마을까지 퍼졌다는 생각에 기자는 괜시리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관광안내소에서 나온 기자는 ‘오베르의 교회’를 지나 풀숲 사이로 난 샛길을 올라 ‘까마귀가 있는 밀밭’으로 향했다. 밀밭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면 마침내 마을의 공동묘지가 나온다. ‘반 고흐’의 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는 위대한 화가에게 주어진 대가라고는 고작해야 한 평 남짓한 조그마한 관뿐이다. 그에게 묻고 싶다. ‘다시 태어나도 그림을 그리고 싶냐’고.

▲오베르 마을 공동묘지에 위치한 반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도르의 묘

커다란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고 있는 여행자를 이제는 낯섦이 아닌 ‘공포’의 대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프랑스 사람들. 그들의 불편한 시선을 통해서 기자는 3년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무언의 ‘아픔’을 느낄 수 있었다. 자유·평등·박애의 나라에서 연이어 발생한 테러의 공포는 죄 없는 시민들의 가슴 속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쓰라림을 감추고, 위기에 처한 어느 이름 모를 동양인 여자에게 내민 그들의 용기 있는 손길에 기자는 진정한 똘레랑스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여행에서 기자가 본 낭만적이지만 강했던 프랑스의 모습이었다.

글•사진 정윤미 기자

 joym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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