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예술가 오태정(랔탱)과 그의 작품들.

“염색 어디서 하셨어요?”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돌곶이역을 나오며 기자가 그녀에게 던진 첫 질문이다. 바다를 수놓은 듯 화려한 머리칼이 한없이 예뻤기 때문이다. ‘내가 저 머리를 했다간 연희관 파란 머리로 불리겠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혼자 했어요” 라며 웃는 오태정 작가(23)는 그녀의 작품처럼 색색이 빛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요즘 하태핫태!

 

오 작가의 예명은 ‘랔탱(rakTang)’으로, ‘낙서’의 첫글자 ‘낙’과 그녀의 이름을 줄인 ‘탱’의 합성어다. 아트토이 아티스트로 데뷔한 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력은 다채롭다. 대만 타이페이에서 열리는 토이 페스티벌에 벌써 2회째 참여하고 있으며, 지난 4월 국제문화산업박람회 크리에이티브 엑스포 타이완(Creative Expo Taiwan)은 ‘탤런티드 100(Talented 100)’에 그녀를 선정해 초청한 바 있다. 타이페이가 디자인 산업계에서 아시아의 용으로 불리며 2016년 세계디자인수도에 선정된 것을 생각하면 매우 산뜻한 출발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지난 5월, 16만 명의 방문객 수를 기록한 ‘아트토이컬쳐2016’에도 전시했으며 지난 7월에는 아트토이 ‘몰리’로 유명한 홍콩 아티스트 케니(Kenny)와 콜라보레이션 전시도 진행했다. 이외에도 그녀의 캘린더는 수많은 전시 준비 및 콜라보레이션 작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른아이, 영원히 어른이 될 수 없는 어른

 

오 작가가 즐겨 쓰는 소재이자 현재 전시 중인 작품의 주요 주제는 ‘어른아이’다. 그런데 그녀의 어른아이는 다소 독특하다. 일반적인 어른아이의 이미지와는 달리, 정신적 문제로 어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그녀는 “제가 만든 캐릭터들이 정신적 장애를 가졌다 해도 다들 귀여워하잖아요. 전 현실에서도 사람들이 지적 장애인을 봐도 낯설어하지 않고 편견 없이 봐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창작의도를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작품의 이름도 짓지 않았다. 이름이 붙는 순간 그녀의 캐릭터는 ‘장애인’이라는 보통명사의 의미에서 벗어나 고유명사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외의 불특정 다수를 바라보는 시선이 같길 바라요”라고 말하고는 쓸데없이 철학적인 게 자기 특징이라며 웃었다.

그녀의 작품 소재는 한결같다. 버려진 토끼 인형, 가정폭력에 희생된 소녀, 벌목림에 사는 토끼 등 우리 사회 속 약자들을 다룬다. 그녀는 세상의 편견을 깨는 일에도 서슴없다. 다음 소재라며 꺼내 든 ‘미소녀’의 스케치는 기자가 알고 있던 미소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통통한 볼살에 주근깨, 들창코 그리고 빼족한 눈은 퉁명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심지어 속옷이 다 비치는 투명 세라복을 입고 가터벨트까지 차고 있었다! 그녀는 “이건 제가 실제로 ‘예쁘다’고 생각하는 요소들이에요”라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섹스어필 요소가 빠지고 순수하게 제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을 담았죠”라고 말했다. 그녀를 쏙 빼닮은 이 캐릭터는 마치 너희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존 패러다임의 폭력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술에 대한 지원, 활발해졌으면

 

이렇듯 바쁘게 활동 중인 그녀지만, 작품활동을 통해 버는 수입은 아직 적다. 일체의 외부적 지원 없이 모든 제작비용을 사비로 충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예술 분야에 대한 후원 사업이 대부분 유명작가 위주로 편성돼 있다. 그래야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의 아트토이문화는 예술성이나 참신성보다는 하나의 유행으로 소비되고 있다. 때문에 아무리 촉망받는 신진작가라도 판매가 부진한 실정이다. 이에 작업까지 고되고 힘들다 보니 많은 이들이 해당 분야로의 진출을 포기하고 있다. 반면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에는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신진작가 발굴사업체계가 잘 정비돼 있어 피규어 산업이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현재 오 작가는 극단이나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는 수입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우리나라의 여건상 수익창출은 어려운 문제인 것 같지만 다들 하는 만큼 인정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속마음을 내비쳤다.

 

오 작가의 미간 아래 콧잔등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방독면에 눌린 자국이었다. 그녀는 제작 과정에서 생기는 분진 때문에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폐병으로 죽기 딱 좋다며 웃었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행복해요”라는 그녀를 보며, 그녀가 종횡무진 전개해나갈 가까운 미래에는 우리가 아트토이를 하나의 예술로서 소비할 수 있길 바랐다.

글 장혜진 기자 
jini14392@yonsei.ac.kr
사진 정윤미 기자 
joym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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