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소설 『강남몽』의 배경, 강남을 가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 『강남몽』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강남(江南) 형성사에 대한 작품이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강남을 무대로 격동의 시대를 살아왔던 군인, 기업인, 정치인, 술집 마담, 조직폭력배, 소시민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담고 있다. 강남 개발사가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상징성을 생각한다면, 이 소설은 단순히 강남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대한민국 현대사 대하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너진 삼풍백화점, 무너진 대한민국
 

갑자기 비상벨이 울리면서, 건물 전체가 우는 것처럼 우르르하는 소리가 들렸다. 씨멘트 덩이와 벽돌이 떨어졌고, “무너진다, 어서 대피해!”하는 고함소리가 들리고 여자들의 비명소리가 사방에서 요란했다. 사람들은 한꺼번에 서로 밀치고 닥치며 출구를 향하여 달려갔다. 회오리 바람이 휙 몰아치면서 천장이 일시에 무너졌다.

소설은 1995년 삼풍백화점(소설 속 대성백화점)의 붕괴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2호선 교대역 6번 출구를 나와 쭉 올라가면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라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나온다. 이곳은 붕괴된 삼풍백화점이 위치했던 자리다. 삼풍백화점이 위치해있던 아크로비스타 인근에는 대법원, 대검찰청, 서울고등검찰청 등 주요 권력기관이 위치해 있다.

삼풍백화점은 곧 비리 백화점이었다. 공무원에 대한 뇌물과 용도 변경, 부실 공사와 무리한 설계변경 등 비리와 황금만능주의로 점철된 우리 사회의 그림자들이 겹쳐 사망자 502명, 부상자 937명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낳았다.  

불의를 감시하고 심판해야 할 법원과 검찰 바로 옆에서, 삼풍백화점은 추악한 탐욕과 범법을 바탕으로 자신의 황금빛 위용을 과시했고,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삼키며 스스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국가는 이 붕괴를 예단하지 못하고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그리고 이 비극은 2014년 세월호 참사로 되풀이됐다. 비리와 황금만능주의는 사라지지 않았고, 국가는 여전히 무기력했다. 삼풍백화점이 사라진 서초동의 스카이라인은 20년 새 많이 바뀌었지만, 우리의 대한민국은 1995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 기자의 마음은 씁쓸해졌다.


그들의 밤은 우리들의 낮보다 뜨겁다
 

이미 수년 전부터 강북 억제책으로 서울 도심지 거의가 재개발지구가 되었고 유흥가는 특정시설제한구역에 묶여 타격을 받았다. 조 회장이 북창동에서 영동지구 쪽으로 업소를 옮겨간 것도 그 맘 때 였으며 한강 남쪽의 신사동, 논현동, 압구정동, 역삼동 일대는 아무런 규제도 없고 각종 세금도 감면해주었으며 (중략) 신흥 시가지에는 서부 개척지처럼 눈 먼 돈이 날아다녀서 물장사에 그만이었던 것 같다.

대한민국 경제 1번지 강남은 대한민국 유흥 1번지이기도 하다. 60-70년대 정부는 강남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강북지역에 신규 유흥업소 개업을 금하고 강남 지역의 유흥업소 사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이러한 이유로 강남 대로변에서도, 뒷골목에서도 룸살롱 등의 유흥업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늦은 밤, 검은색 승용차들은 가게 앞에 매끄럽게 멈춰서며, 중년의 남성들을 토해낸다. 이들은 네온사인 조명 아래로 가볍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날 밤에도 강남 어딘가 술판 위에서는 돈과 감투와 성(性)이 오갔을 것이다. 정경(政經), 정언(政言), 경언(經言)의 유착이 수없이 이뤄졌을 것이다.

『강남 좌파』라는 저서로 유명한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대한민국을 ‘룸살롱 공화국’이라고 표현했다. 룸살롱을 위시한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폐쇄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실력’, ‘공정’, ‘정의’가 아닌 ‘끈’, ‘청탁’, ‘스폰서’ 등이 영향력을 발휘했다. 여전히 대한민국의 밤은 진화하는 모습으로 대한민국의 낮을 움직이고 있다.

지난 2015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일명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2016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 없는 금품 수수도 처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정직한 사람들이 땀 흘리는 낮이 끈과 청탁으로 점철된 밤보다 찬란해지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밥벌이의 존엄함과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씁쓸함
 

첫 월급을 받아오던 날, 정아는 당시 젊은이들이 하던 대로 부모님 내복을 사고 순아를 위해서는 생일도 아닌데 큼직한 케이크를 샀다. 순아가 어릴 적에 한번 먹어보고는 늘 잊지 못하던 것이었고 사실은 정아도 먹고 싶었다.

소설 속 정아는 삼풍백화점의 점원이다. 어려운 형편이지만 누구보다 성실히 일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후 건물 잔해에 갇힌 후에도 끝까지 견디며 결국에는 새로운 삶을 얻는다. 그리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소설이 끝난 이후에 정아는 어떠한 삶을 이어갔을까. 오늘날 강남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풍경에서 정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강남.

졸린 눈을 비비며 학원으로 향하는 청년들, 담배 한개비에 입으로 커피를 털어넣는 샐러리맨들, 고된 노동에도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아르바이트생들.

제각기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삶에 몸을 내던진다. 그리고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각자의 길로 나아간다. 각자도생이 삶을 이어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에.

강남은 존엄하다. 강남은 씁쓸하다.


 

 

글 김지성 기자 
speedboy25@yonsei.ac.kr

사진 천시훈 기자 
mr1000sh@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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