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역사서, 『환단고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가 논란이 됐다.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이 아니라 하얼빈에서 서거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2년 전 박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나라는 인간에 있어 몸과 같고, 역사는 혼과 같다”라고 『환단고기』의 「단군세기」가 인용됐던 것이다.

『환단고기』는 삼국시대에서 조선 중기에 처음 서술됐으며 1911년 사학자 계연수가 처음으로 편찬했다고 전해지는 역사서다. 광복절 축사처럼 ‘애국’을 중요한 덕목으로 띄우려는 상황에서 『환단고기』는 흔하게 인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애국’의 중심에 있는 『환단고기』가 위서이며, 역사학계는 이를 유사 역사학으로 분류하고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환단고기』는 진짜다?

 

▲ 환단고기(1971)

 

단군 신화는 『삼국유사』에 최초로 소개돼 있지만 이를 본격적으로 다룬 역사서 중에는 위서 『환단고기』가 있다. 이 책은  단군의 치세, 삼한과 발해 등의 대외 관계사를 서술하고 있다. 그중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사로잡는 것은 우리 민족이 지배했다는 넓은 영토이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들이 원하는 ‘영광스러운 고대사’가 실재했던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봉자들은 어떤 근거로 『환단고기』를 신봉할까?

『환단고기』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환단고기』가 오성취루 현상이 재현되는 오차를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서라고 주장한다. 오성취루 현상은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다섯 개 행성이 천구에서 누성*에 근접한 위치에 모여드는 현상을 말한다. 고등과학원 천체물리학과 박창범 교수는 「삼국시대 천문현상 기록의 독자 관측사실 검증」이라는 논문에서 『환단고기』에 기록된 13대 단군 흘달 50년의 오성취루 현상이 실제로도 비슷한 날짜인 기원전 1734년 7월 13일 초저녁에 있었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는 『환단고기』의 저자 혹은 편찬자가 책에 나온 오성취루 현상에 대한 서술을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봉자들은 1911년에 이렇게 정확하게 천문 현상이 있었을 것이라 맞추기 어렵다며 『환단고기』가 진서라고 주장한다.

한편, 『환단고기』에는 ‘삼신’과 같이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말 이후에나 유입된 기독교 교리에서나 볼 수 있는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는 기존에 『환단고기』가 삼국시대에서 조선 중기에 쓰였다는 주장과 상충한다. 그러나 신봉자들은 ‘삼신’ 등의 용어들은 이미 우리 민족이 오래전부터 써오던 것으로 기독교만의 용어는 아니라고 반론한다.

 

『환단고기』는 위서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내용의 신빙성 ▲표절 ▲출판 시기의 모순 ▲근현대의 용어 사용 등을 근거로 위서라고 판명됐다.

먼저 이 책은 네 권의 역사서를 묶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네 권의 역사서 원본이 발견되지 않아 저자가 조작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유립**은 『환단고기』 초판이 중간에 분실돼 자신이 기억에 의존해 다시 썼다고 말해 신빙성을 잃었다. 그리고 네 권의 역사서를 묶었다면 부분마다 문체가 달라야 한다. 우리대학교 하일식 교수(문과대·한국고대사)는 “내가 읽어본 바로는 『환단고기』의 문장은 전근대 한문이 아니고 20세기 한문 투”라며 “또 여러 책을 모았다고 보기에는 한 사람이 작성한 듯이 문투가 가지런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환단고기』는 책의 서문에 쓰인 최초 편찬 연도 이후에 나온 책을 표절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은식의 『한국통사』를 베꼈는데 이 책은 1915년 상하이에서 집필됐다. 즉, 1911년에 편찬됐다는 것 또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박은식의 책은 1915년 당시 구하기 어려웠고 1975년에야 쉽게 구할 수 있었다”며 “『환단고기』를 조작한 사람이 적어도 1915년 판을 보지는 못했을 듯하다”고 말했다.

한편 『환단고기』는 처음 서술된 시기보다 늦은 시기에 출판된 도서를 인용하고 있다. 실제로 편찬자 계연수는 중국 사서를 인용하는 대목이 있다고 시인했다. 이때 『환단고기』의 편찬은 1911년에, 제작은 삼국시대에서 조선 중기 사이에 됐다는 주장은 어긋나게 된다. 인용한 사서가 북송 혹은 청나라 이후에나 발간된 역사서들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환단고기』가 삼국시대에서 조선 중기 사이에 처음으로 서술됐다는 주장은 시기적으로 틀린 주장이다.

『환단고기』의 서술 시기와 맞지 않는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근현대 용어가 빈번하게 사용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대철학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던 ‘자아’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하고, 청나라 이후의 지명까지도 등장한다. 하 교수는 “『환단고기』를 보면 ‘culture’란 뜻으로 쓰인 ‘문화’라는 말도 나오는데 전근대에서 이는 ‘글로 교화시킨다’는 뜻으로 쓰였다”며 “결국 완벽한 조작이 불가능했던 셈”이라 말했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학계에서는 이미 『환단고기』를 위서로 판명했다. 그러나 신봉자들은 여전히 『환단고기』가 진서임을 입증하고, 이를 믿게 만들기 위해 북 콘서트를 여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2013년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환단고기』가 인용됐다는 점이다. 이렇듯 우리는 은연중에 실제가 아닌 『환단고기』에 노출되고 있다.

 

영광스러운 고대사와
외면 받는 현실의 문제

 

그렇다면 어째서 고대사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대사를 이용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어두운 근현대사와 맞물려 있다. 『환단고기』는 일제강점기인 1911년에 편찬됐다. 수탈의 역사 속에서 무너진 민족의 자긍심을 돋우기에 손색없는 소재다. 그러나 넓은 영토를 가졌다는 것을 통해  무너진 민족의 자긍심을 회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넓은 영토를 가진 제국을 열망하는 마음이 담긴 위서 『환단고기』를 믿는 신봉자들의 논리는 수탈을 낳은 제국주의와 다를 것이 없다.

나아가 ‘영광스러운’ 고대사를 이용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영예로운 과거만을 이야기하면서 해결해야 할 많은 현실 문제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하 교수는 “특히 무작정 애국을 외치며 그 수단의 하나로 ‘고대의 영광’을 앞세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위대한 민족’, ‘우리는 하나’라는 환상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호도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확실한 것은 이 문제를 『환단고기』를 둘러싼 학계와 비(非)학계의 논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광복절 축사에 『환단고기』가 사용된 것은 이 문제가 사회적인 성격을 띤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래를 위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향해야 하는 곳은 영광스러운 고대사가 아니라 부딪히고 있는 현실 문제이다. 만들어진 애국으로는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누성 : 하늘의 적도를 따라 남북을 28개 구역으로 구분했을 때, 16번째 자리에 있는 별.
**이유립 :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단학회의 3대 회장.

 

글 박혜지 기자
pphhjj66@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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