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합의인가

 

▲ 류한수 (정경경제·11)

지난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인’ 합의가 한일 양국 간에 이루어 졌다. 즉, 더 이상 해당 쟁점에 대해 양국 정부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추가적인 요구를 하는 것을 원천 적으로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이라는 문구 를 통해 이번 합의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우선 일본정부가 당시 일본군의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일본정부의 책임을 명문화한 것은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아베총리의 직접 적인 사과 역시, 그간의 우경화 행 보를 고려한다면, 작은 성과로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참혹한 역사가 정치 적 ‘합의’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 인가? 아니다. 이는 역사의 성격을 완전히 무시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란 연속적인 흐름이다. 따라서 당시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완전무결한 배상은 곧 그 역사를 계속 해서 기억해 나가고, 되새기며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완전한 종결로써 위안부문 제를 다룬다는 것은 일본정부뿐만 아니라 한국정부의 역사인식이 매 우 잘못되어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하고 계 속해서 기억하며 이를 반면교사로 삼는 자세가 기본이 될 때 진정한 의미의 애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 한 기본이 없다면 극우적이며 편협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힌 생각을 조국에 대한 긍지로 포장하는 것 이다. 따라서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 면서 위안부 문제를 종결지은 것은 큰 실책이다. 현실적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은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배상은 앞서 언급했듯 계속해서 기억하고 반성하는 것이지, 10억 엔이라는 구체적인 액수로 환 산할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저 10억 엔이 아무 대가없이 오는 돈이 아니라는 점 역시 상 기해야 한다. 이미 대가성 거래로 위안부 문제를 덮어가려는 태도에 서부터 단단히 잘못된 일이지만, 지불해야할 대가 역시 거래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녀상이 전문제가 그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일 양국간의 온도차가 나온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소녀상 이전/철거에 대해 “관련단체와의 협 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도의 입장을 취 했지만, 기시다 외상은 “위안부 소 녀상에 대해 적절한 이전이 이뤄 질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내비췄다. ‘일본정부가 10억엔을 주고 소녀상을 샀 다’ 는 씁쓸한 뒷말이 나오는 배경 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점은 이 협 상과정에서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 가 대한민국 국민을 대표하는 집단으로써 위안부 피해자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당 사자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협상이 체결된 다음날이 되어서야 일방적인 통보와 함께 이해를 구 하는 외교부 차관을 만났다. 반면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벌써 1246주째 수요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분들을 그 이전에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못’ 부정문을 ‘안’ 부정문으로 고쳐야 마땅한 처사다. 이런 수치스러운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의 후진적인 역사인식과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 정부의 우익사관이 함께 만든 것이다. 이는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협상이후 최악의 정치적 야합이며, 향후 차기 정권의 대일 외교정책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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