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익명을 요구한 13명의 서울시내 마을버스 기사들과 진행한 면담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며, 모두 사실에 기반해 서술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나는 마을버스 기사입니다. 이 일을 시작한 지는 4개월이 지났습니다. 지금 내 꿈은 오직 하나, 시내버스 기사가 되는 것입니다.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시내버스는 민영제로 운영되는 마을버스보다 벌이가 두 배 정도 좋습니다. 처우도 여기보다는 훨씬 낫죠. 저희끼리는 ‘로얄직’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시내버스 기사가 되려면 버스운전경력이 필수입니다. 그래서 버스업계에 처음 발을 디딘 신입들은 주로 저처럼 마을버스 회사에 입사하곤 합니다.
 

그럼 정규직이냐고요? 아닙니다. 1년 단기 계약직입니다. 쉽게 말해서 비정규직이죠. 비정규직 마을버스 기사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저같이 시내버스를 꿈꾸는 단기 계약직이고 다른 하나는 촉탁직입니다. 촉탁직은 정년퇴직 이후 생계를 위해 운전대를 잡은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근무형태는 격일제와 오전•오후 교대 근무제가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오전•오후 교대 근무제를 택하고 있습니다. 오전 근무는 새벽 5시 정도부터 낮 2시까지이며, 오후 근무 조는 낮 2시 전후로 출근해 자정이 넘어 일을 마칩니다. 그럼 지금부터 저희 마을버스 기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마을버스 ‘1탕’

 

탕은 마을버스 기사들의 은어다. 노선을 한 바퀴 도는 것을 하나의 ‘탕’이라고 한다. 기자들이 직접 서울 동부권의 한 구에서 마을버스를 운전하는 정두철(가명)씨의 1탕을 살펴봤다. 이 날 정씨는 오후 근무를 맡았다.

13:10 기점에서 버스에 탑승했다. 이미 노선을 한 바퀴 돌고 온 정씨는 쉴 겨를도 없이 바로 출발한다. 이들에게는 몇 분의 휴식시간조차 사치인 듯하다.

13:14 마을버스는 시내버스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고 구불구불한 길로 올라간다. 마을 구석구석을 다녀야 하기에, 마을버스 기사들에게는 더 숙달된 운전 실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경험이 적은 기사들이 더 어려운 길을 운전하고 있다. 

13:22 방금 버스가 신호를 위반했다. 지금은 불법 유턴 중이다. 정씨는 “신호위반이나 불법 유턴을 하지 않고서 배차간격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이라며 “불법 주·정차된 차량을 피해 운행을 하다 보면 중앙선 침범도 예삿일”이라고 말한다. 기사와 승객이 모두 위험에 노출돼 있는 상황이다.

13:24 “목이 마른데 물도 마시지 못 해요.” 소변이 마려울까봐 물 마시는 것도 머뭇거리는 정씨. 휴게시간이 따로 없어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다.

13:30 코스를 한 바퀴 돌아 종점에 도착했다. 정씨는 배차일보를 작성한 후 바로 운전대를 잡는다. 촉박한 배차간격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차에서 잠깐 내려 한숨 돌리고 싶지만, 사치인 거 같네요.”

13:31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마을버스 기사, 그들의 이야기

 

#1. 서울 동부권의 마을버스 기사 이영덕(가명)씨에게는 하루 딱 한 번, 20분에 불과한 식사시간이 주어진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10시간 근무를 할 경우 그사이에 두 끼의 식사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겠지만, 이씨에게 여유롭고 배부른 식사는 꿈같은 이야기이다. 식대로는 총 4천 원이 주어진다. 근무시간을 고려했을 때 끼니 당 2천 원의 식대를 받는 셈이다. 빵과 우유조차 사 먹지 못하는 돈이다. 이씨는 오늘도 몇천 원 사비를 보태 근처 분식집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2. 서울 A구의 마을버스 기사 김장환(가명)씨는 어제 막차 운행을 끝내고 퇴근해 새벽 1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 4시 50분, 김씨는 첫차 운행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차고지로 향한다. 3시간 정도 자고 바로 나온 셈이다. 이렇게 막차 운행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첫차에 투입되는 것을 ‘꺾기’라고 부른다. 김씨의 회사에서 꺾기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오늘도 이들은 졸음을 참으며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다.

#3. 서울시 동작구의 마을버스 회사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박용우(가명)씨는 계약 당시 근로계약서를 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 제17조에 의하면, 사용자는 근로계약 체결 및 변경 시 서면 형태로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근로자에게 교부해야 한다. 박씨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측은 박씨가 받아야 할 근로계약서를 주지 않았고, 박씨는 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재계약을 생각했을 때, 회사에 밉보여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노무법인 율현의 장성희 노무사는 “사용자는 단기계약직을 고용할 경우 노동자가 요구하지 않아도 근로계약서를 교부해야 한다”며 “이를 위반했을 시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전했다. 사측이 명백한 위법행위를 저지른 것이다.

#4. 금천구의 마을버스 회사에서 근무하는 남영규(가명)씨가 몰던 버스 안에서 한 승객이 넘어져 경미한 부상을 당했다. 남씨는 이 승객에 대한 치료비를 자비로 부담했다. 원칙대로라면 사측에서 사고처리 비용을 부담해야 하지만, 마을버스 기사들은 이를 회사에 쉽게 요구하지 못한다. 사고비용을 사측이 처리할 경우, 해당 기사의 사고 경력이 버스공제조합**에 등록이 된다. 이는 시내버스 회사에서도 열람이 가능하다. 시내버스 기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을버스 기사들에게 무사고 경력은 매우 중요하기에 이들은 불가피하게 자비로 사고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 마을버스 업체들 역시 기사들의 약점을 알고 있기에 사고비용의 자부담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5. 서울 남부권의 마을버스 기사 김정국(가명)씨는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한 후 생계를 위해 마을버스 운전대를 잡았다. 즉, 김씨는 촉탁직으로 고용이 됐다. 김씨는 열악한 근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아래 노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씨와 같은 마을버스 기사들에게 노조는 꿈같은 이야기다. 직업 특성상, 버스를 교대로 운행하기에 근로자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으며. 인원 또한 소규모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시내버스 진출을 희망하는 계약직 기사들의 경우, ‘몇 년만 참고 시내버스로 가자’는 생각으로 자신들의 권익 증진에 소극적이다. 노조 경력은 시내버스로의 전환을 생각할 때 해가 되기 때문이다. 마을버스 기사들은 노동권익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다.




*준공영제: 민간운수업체가 서비스를 공급하는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지자체 주도의 노선입찰제, 수입금 공동관리제 및 재정지원 등을 통해 버스 운영체계의 공익성을 강화한 제도.
**버스공제조합: 버스 운행 중에 발생하는 사고에 즉각적으로 대처하여 사고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고 신속한 보상과 발생한 손실액을 안정적으로 지원할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공익법인.



 

글 김지성 기자
speedboy25@yonsei.ac.kr
주은혜 기자
gracecho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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