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처럼 나눔을 이어가는 최일도 목사를 만나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바닥에 앉아 냄비 하나에 라면을 끓이던 처음처럼….'

-28년 전 처음 라면을 끓이던 냄비 옆에 최일도 목사가 써 넣은 문구.

▲ '밥'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최일도 목사.

88서울올림픽으로 시끌벅적했던 해의 초겨울날, 청량리역에서 굶고 있는 노인을 위해 한 목사가 작은 냄비에 라면을 끓였다. 목사는 이를 시작으로 ‘밥퍼본부’, ‘다일천사병원’, ‘꿈퍼’ 등을 설립하며 나눔을 더 크게 실천해나갔다. 그리고 길에서 굶고 있는 노인을 위해 끓여준 라면 하나로 시작된 무료배식활동은 어느새 전 세계 10개의 지부를 둔 공동체로 발전했다.
이렇듯 다일공동체*를 통해 가장 소외당한 사람들을 위해 애써온 최일도 목사. ‘항상 처음처럼만’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오늘도 열심히 밥을 퍼내고 있다. 언제나 처음처럼 나눔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삶을 따라 나눔의 의미를 되새겨봤다.

밥에 담긴 인간의 존엄성

최씨가 시작한 밥퍼나눔운동(아래 밥퍼)은 우리나라의 소외된 사람들이 존엄성을 회복하고 밥을 굶지 않는 세상을 만들자는 취지로 설립된 운동이다. 자원 봉사자들의 지원으로 운영되는 밥퍼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운영하며 매일 아침 11시부터 낮 12시 반까지 한 시간 반가량 배식을 진행한다. 청량리의 한 굴다리에서 14년 동안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나누던 밥퍼는 지난 2002년 8월, 서울시의 지원으로 청량리 굴다리 옆에 밥퍼본부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밥퍼는 더 큰 다일공동체의 일부로서 해외로까지 뻗어 나가고 있다.
‘밥퍼 목사’로 통하고 있는 그는 “밥은 사람이 사는 데 최우선이 되어야 할 필수 조건이며 밥을 나누는 행위에는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 개입될 필요가 없는 선한 행위”라고 말하며 밥을 나누는 심정을 전했다. 최씨가 그 무엇도 아닌 ‘밥’을 먼저 나누기 시작한 데에는 밥 자체가 생명이고 평화라는 신념이 있었다. 그가 자주 듣는 질문 중 “목사님,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줘야지, 물고기만 줘서야 되겠습니까?”라는 질문이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그는 “자신의 힘으로 절망을 딛고 일어서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인 신체적 욕구, 즉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답한다고 한다. 굶주림을 먼저 해결할 수 있어야지만 그다음 단계인 교육과 재활훈련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답변에서 그의 확실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 최씨와 공동체 일원들이 밥을 나누는 모습.

그렇다면 28년이라는 시간을 바쳐온 밥퍼는 다른 무료 급식들과 어떻게 다를까? 다일 밥퍼 만의 놀라운 점은 바로 ‘자존심 유지비’였다. 바로 밥값으로 100원을 받는 것이다. 굴다리에서 배식을 하던 시절, 한 노숙자에게 ‘무료’ 배식이라는 말이 마음을 상하게 한다고 전해들은 최씨는 “100원 하나라도 식대로 받아달라는 그분의 생각에 따라 자존심 유지비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자존심 유지비가 있어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 ‘돈을 내고’ 당당하게 먹을 수 있다고 전하는 최씨의 모습은 밥퍼가 단지 최소한의 ‘밥’만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고민을 함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런 최씨에게도 몇 차례의 어려움이 있었다. 함께 식탁공동체를 이뤘던 행려자, 노숙자로부터, 또 지역 폭력배들로부터 고초를 겪었고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최씨의 어머니는 최씨의 아내가 천주교라는 것에 큰 불만감을 보였고, 최씨가 봉사를 계속 하는 것에도 난색을 표했다. 큰 최씨는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었지만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이 상처받고 고통받을 때 내 자신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전했다. 드디어 어머니의 인정을 받은 최씨는 “지금은 가족들이 가장 큰 후원자이자 협력자가 됐지만 그 당시는 매우 힘든 경험 이었다”고 밝혔다. 그 당시 받았던 고통과 아픔이 더 넓은 사랑이 돼 28년간 소외된 이웃을 위해 힘쓸 수 있던 원동력이 됐다고 한다.

나눔, 굶는 이 없는 세상을 위해

밥퍼에 이어 ‘다일천사병원’과 ‘꿈퍼’ 등, 하나의 ‘다일공동체’가 구성된 최씨의 봉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널리 희망이 되고 있다. 그러나 봉사가 국경을 넘어 세계적으로 뻗어 나간 계기는 특별한 것에 있지 않았다. 최씨는 “제3세계 이웃들의 아픔을 보고 신음을 듣고도 그들을 찾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목사로서 큰 죄”라며 공동체의 일은 “빈곤이 있는 한 마땅히 해야 한다”는 뜻을 전했다. 한편 부쩍 커진 규모만큼이나 늘어났을 책임감과 부담에 대해서는 ‘부담은 다일공동체 가족의 사명’이라고 답했다. 본인들은 주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이고, 따라서 외부의 음성들보다는 내면의 양심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돼준다는 것이다.
한편 최씨는 ‘나눔’ 자체에 대해서도 보통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시각을 보였다. 그는 나눔이 필요한 이유를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찾았다. 누구라도 혼자서는 잘 살 수 없고, 서로 섬기고 나눠야 모두가 풍성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씨는 “나눔은 나눔을 낳고, 나눔은 분명한 기적”이라고 강조하며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신념이 사회 공원 지속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특히 최씨는 다른 무엇보다도 갱생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던 사람들이 ‘밥퍼’의 밥을 먹고 변화하는 것을 보며 가장 큰 감동을 받는다고 전했다. 그들이 재기에 성공해 정상적 사회생활 궤도에 진입하고, ‘밥퍼본부’에서 봉사를 시작하기도 하는 등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때 자신도 함께 삶의 희열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을 지속하고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최씨. 그러나 그는 여전히 삶의 목표를 가지고 쉼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밥이 답’이기 때문에, 이 땅에 밥 굶는 이가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밥을 짓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다. 최씨는 “밥은 생명의 역사이므로,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소외된 이웃들을 살리는 것이 다일공동체의 정신”이라며 “빈민촌 사람들을 위해 밥을 짓고, 천사클리닉을 세우고,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모든 사람이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 최씨 뒤로 보이는 그의 목표이자 다일공동체*의 정신인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청량리 앞, 굶고 있는 노인을 위해 끓였던 라면 한 그릇이 시간이 지나 전 세계를 아우르는 밥 한 그릇이 됐다. 혼자 잘 사는 세상이 아닌, 함께 더불어 잘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최씨는 항상 처음과 같이 밥을 퍼드리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씨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길 바란다”는 말을 남기며 밥을 짓기 위해 앞치마를 둘렀다.

*다일공동체 : 다양성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기독교 사회기여단체.
*청지기 : 주인을 대신해 여러 가지 일을 맡아보는 하인. 종교적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의 것인 재물과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 최일도 목사가 2000년에 지은 책의 제목으로, 자신을 바쳐 어려운 사람들을 살리겠다는 그의 신조이기도 하다.

글 신용범 수습기자
박은우 수습기자
조승원 수습기자

사진 박은우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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