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범수 아나운서의 삶이 던지는 질문

KBS의『열전! 달리는 일요일』,『퀴즈탐험 신비의 세계』,『가요톱10』,『아침마당』,『1 대 100』….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시청했을 이 프로그램들의 MC를 모두 진행한 아나운서가 있다. 바로 손범수 동문(경영·82)이다.
지난 1990년 KBS에 입사한 손씨는 7년 뒤 프리랜서를 선언했고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독보적인 프리랜서로 자리매김했다. 손씨는 어떻게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하게 됐을까? 그리고 손씨에게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손씨의 삶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그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손씨를 만나서 그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질문들을 들어봤다.

질문으로 그린 ‘미래’의 밑그림

손씨에게 대학 시절은 ‘끊임없이 질문하는 시간‘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군대를 마칠 때까지 그의 청춘은 질문으로 가득했다. 수많은 질문들 중 그를 깊은 상념에 빠지게 했던 것은 미래에 대한 고민이었다. 손씨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 어떻게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진로에 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하면서 손씨는 자신이 무엇을 했을 때 가장 행복했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이에 손씨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연세교육방송국(아래 YBS)’이었다. 손씨에게 YBS는 사회성을 기를 수 있었던 곳이자 자유로움의 상징이었다. 손씨는 “대학 시절에 전공 공부보다도 더 열심히 했던 YBS의 기억들이 되새겨지면서, 내가 방송과 잘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확신을 바탕으로 손씨는 전역 후 4개월간의 언론고시 준비 끝에 KBS의 아나운서가 됐다. 손씨는 탁월한 진행력을 바탕으로『열전! 달리는 일요일』,『가요톱10』,『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등의 프로그램들을 줄줄이 맡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시기에 손씨는 1992년 KBS 우수프로그램 진행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민의 사랑을 받던 지난 1997년 손씨는 돌연 프리랜서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나운서라는 안정된 생활을 뒤로 한 채 사표를 낸 배경에는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손씨는 “그 당시 아나운서 출신들은 진급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손씨는 이러한 1990년대 중반의 조직 내 직업별 위상 격차를 경험하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 것이다. 손씨는 “개인의 성장을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KBS라는 안정된 조직의 보호막을 벗어나 진정한 프로페셔널이 돼 보자고 생각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프리랜서 선언 후 손씨의 태도는 진정 프로다웠다. 수많은 방송사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지만 손씨는 자신이 진행하고 있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손씨는 “나를 뽑아준 KBS와 시청자에 대한 예의라고 판단했다”며 당시의 결정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그렇다면 프리랜서 선언 이후 손씨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이에 대해 손씨는 “프리랜서 선언 이전에는 회사에 속해 수동적인 업무를 했다면 선언 이후에는 나의 삶을 능동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즉, 손씨가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그의 삶을 도전과 성공으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 돼 준 셈이다.

'삶의 의미'에 대해 묻다

손씨의 인생을 변화시킨 두 번째 질문은 바로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손씨는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삶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이었다면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그 밑그림을 채색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지난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손씨가 진행했던 KBS의『사랑의 리퀘스트』는 그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한 전환점이 돼줬다.
손씨가 진행했던 시사·교양 프로그램『사랑의 리퀘스트』는 불우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하고, 이들을 돕기 위해 성금을 걷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시청자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소년소녀 가장과 독거노인 등의 애틋한 사연을 접했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했다. 시청자들의 따뜻한 전화 한 통이 모여 1억 원이 넘는 기부금이 조성되기도 했는데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손씨는 ‘십시일반의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손씨는 자신의 진행을 통해 시청률이 오르고 모금 액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고 더 나아가 자신의 재능이 사회에 환원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손씨의 생각은 곧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손씨는 유년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기독교의 나눔과 실천 사상에 대해 꾸준히 배워왔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시작된 기독교 교육은 손씨가 공적 활동에 재능을 기부하게끔 만들어주는 데 일조했다. 손씨는 이웃 사랑 실천을 위해 가장 먼저 ‘유니세프’ 활동에 나섰다. 손씨는 지난 1991년에 유니세프 행사 사회를 맡은 것을 인연으로 지난 2015년까지 약 25년간 유니세프와 함께했다. 나아가 손씨는 현재 ‘글로벌케어’, ‘다일복지재단’, ‘한국여성재단’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의 홍보대사를 맡는 등 방송 외적인 활동도 이어나가고 있다.
이 활동들을 통해 손씨가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아픔’이었다. 유니세프 필드트립*에서 몽골 어린이들의 삶을 현장에서 목격한 손씨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맨홀 아래서 잠을 자고, 결식을 당연하게 여기는 어린이들을 보며 손씨는 스스로에게 또 한 번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손씨는 ‘열 개를 받으면, 하나를 나누어야 한다’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하며 묵묵히 사회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봉사활동과 방송활동을 병행하며 쉼 없이 전진한 손씨는 어느덧 아나운서와 MC계의 완전한 프로가 됐다. 이런 그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이웃들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자신이 즐거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그것을 통해 보다 나은 사회를 바라보는 것. 그것이 손범수 아나운서가 그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가 아닐까?

* 유니세프 필드트립 : 유니세프 지원국 실상 파악을 위한 현장 견학 프로그램.

노원일 수습기자
양성익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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