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회사의 달갑지 않은 배려들

▲류은채 (인예영문·11)

보건복지부는 오는 12월 23일부터 담뱃갑 상단에 들어갈 경고그림 등의 표시내용 고시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26일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은 담뱃갑 앞면과 뒷면, 옆면에 들어갈 10종의 경고그림 도안과 경고문구를 담고 있으며, 이 도안과 문구들은 담뱃갑 상단에 위치해야 한다고 명시되었다. 또한 담배사업자는 경고그림은 담뱃갑 면적의 30% 이상, 경고문구와 함께 게시된 면적은 50% 이상이 되도록 게시해야 한다. 개정안에는 전자담배와 씹는 담배, 물담배, 머금는 담배 등 연초담배가 아닌 담배에 대한 경고그림과 문구 또한 정한 상태이다.

이번 보건복지부의 개정안은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되어 약 1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시행 예고된, 아주 멀고 험한 길을 거쳐 온 금연정책이다. 현재 담뱃갑 경고그림 금연정책은 전 세계 180개국이 이행을 약속한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 제11조에 해당하는 사항으로 대다수의 협약 당사국들이 이미 이 정책을 도입했거나 도입 추진 중에 있는 상황이다. 또한 경고그림 금연 정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은 이미 눈에 띄게 흡연율이 줄어들고 있으며 청소년들의 흡연 시작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에도 높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혐오의 정도’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담배포장의 건강경고는 강력한 이미지를 포함하여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전달하는 매우 비용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하였다. 경고그림이 포함된 담뱃갑을 프린팅만 하면 되는 것이니, 효과에 비해 최소한의 비용이 들어가는 셈이다. 또한 그림이나 사진, 도식 등을 활용한 건강경고는 위험을 알리고 행동변화 촉진에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이미 경고그림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커뮤니케이션 연구에서 밝혀진 결과이다. 특히 이미지가 포함된 텍스트는 더 높은 관심을 유발하여 경고메시지 정보처리와 회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 바가 있다.

학계의 연구결과와 실제 시행하고 있는 나라들의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담배회사와 일부 흡연자들은 경고그림 정책도입에 대한 반대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첫 번째, 흡연 경고그림을 모두 똑같이 담뱃갑 상단에 위치시키면 담배회사의 디자인 권한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제대로 경고하지 않고 디자인의 권리를 앞세운다는 이야기는 신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해물질에 대해 아름답게 디자인할 권리를 요구한다는 의미와 같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신체에 흡입되고 있는 유해물질이 정확히 어떤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구입할 권리가 있다. 특히 아름다운 디자인에 현혹되어 흡연을 시작하는 청소년들의 비율이 적지 않은 만큼, 담배회사의 담뱃갑 디자인에 대해 규제할 명분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주장은 담배 진열에 대해 제한을 두는 것은 판매점의 영업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는 담뱃갑을 진열할 때, ‘경고그림이 명확히 보일 수 있게’ 진열을 해야 한다는 시행령에 대한 반대 의견이다. 하지만, 그 어떤 판매점도 ‘상단’이 ‘하단’으로 오게 하는 ‘거꾸로’ 진열을 하진 않을 테니, 이 의견 역시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세 번째 주장은 과도하게 혐오스러운 경고그림은 판매점 상인 뿐만 아니라 비흡연자들의 정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인데,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반대 주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논란’이라는 점은 어느 정도의 혐오까지 수용할 수 있을 것 인가에 대한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경고그림 도입 정책에 반대하기 이전에 이 정책의 목적을 흐릴 위험성이 높다. 이 정책은 정확히 흡연에 대해 ‘혐오감’과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정책이지, 혐오감을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정책은 아니다. 이들이 말하는 ‘정도 있는’ 혐오감은 금연 정책 효과를 떨어뜨리자는 주장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주장하는 과도하게 혐오스러운 경고그림은 이미 의학적으로 입증된 흡연과 각종 암들의 상관관계를 시각화시킨 것이며, 따라서 이 질병들에 대한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사진들이 들어갈 뿐이지 과도하게 혐오스럽게 조작해서 넣은 사진들이 아니다. 더욱이 담배회사는 흡연자, 비흡연자, 그리고 판매자들의 정신건강까지 걱정하기 이전에 그들이 제조, 판매하고 있는 악성 유해 물질들이 인간의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부터 걱정해야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담배회사들이 주장하고 있는 소비자 선택권, 정신건강 유해설 등은 배려의 탈을 쓴 이익집단의 기만행위와 다를 바 없다.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