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의 바둑은 현대 바둑의 완전체. 승부욕에 있어선 전신(戰神)* 조훈현 9단,
파괴력에 있어선 유창혁 9단,
끝내기에 있어선 신산(神算)** 이창호 9단에 버금가는 장점을 모두 다 갖춘 기사”

이는 이세돌 9단에 대한 김성룡 9단의 말이다. 이세돌 9단은 12세의 나이로 입단하여 불패소년이라 불리며 32연승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이후 입단 8년 만에 입신(入神)의 경지라 불리는 9단으로 승격해 한국기원 최단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 바둑계의 전설이라 불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목 뒤에 세 개의 점이 바둑돌처럼 생각돼 탄생됐다는 ‘세돌’이라는 이름은 그와 바둑과의 범상치 않은 인연을 보여준다. 지난 1995년 입단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승부사의 정신으로 도전하는 그, 이세돌 9단을 만나봤다.

 

 

이세돌 9단의 원동력, 가족

 

어린 시절 이세돌 9단에게 가장 먼저 바둑을 가르친 스승은 바로 아버지다. 그가 고향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에서 서울에 올라오기 전까지 바둑을 포함해 인생의 철학 모두를 아버지께 배웠다고 한다. 아버지외에도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입단 생활을 하면서도 이세돌 9단에게 가족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이세돌 9단은 “타지에서 홀로서기를 하는데 있어서 형이란 존재가 없으면 어려웠을 것”이라며 “가족이 바둑을 둘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라며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제는 한 아이의 아버지인 이세돌 9단은 “아이 교육에 있어, 지나친 경쟁사회에 휩쓸리지 않고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며 “자신만의 철학, 장점보다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가는 세상 속에서 자기만의 무엇인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며 교육관을 전했다.

이세돌이 진 것이지,
인간이 진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9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와의 대국은 인간과 인공지능이라는 세기의 대결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세돌 9단은 당시 승부보다는 일종의 테스트라고 생각하고 대국에 쉽게 응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실제로 대국에 들어가니 알파고쪽은 이긴다고 생각을 하고 승부를 한 것이었다”며 “다시 제안이 들어온다면 이러한 오판을 하지 않을 것이고 결과도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세돌 9단은 “바둑 자체만 보면 알파고가 결코 나 자신보다 고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컴퓨터는 무한한 집중력과 컨디션 조절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 대국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세돌 9단은 경기를 하는데 있어서 정신력이 부족했던 점이 아쉬웠다고 한다. 이세돌 9단은 “붙어볼 만한 바둑이었지만 알파고에 대해 오판을 했기 때문에 1국과 2국을 지고 3국에는 정신적으로 무너져버렸다”며 “다시 뒀을 때 이긴다고 확답할 수는 없지만, 만약 내가 아닌 정신적으로 더 뛰어난 기사가 준비를 잘한다면 승산이 있는 경기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이세돌 9단은 “사람이 두는 바둑이 아니란 점이 굉장히 생소했지만, 두 번째부터 지고 나니까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대국의 결과가 이렇게 나왔을 뿐, 인공지능으로 인간이 두려움을 가질 정도는 아니라고 당부한다. 이세돌 9단은 “인공지능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를 풍요롭게 하는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알파고와의 대국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자기 확신을 갖고,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6살 때 바둑을 시작한 이세돌 9단에게 바둑은 ‘기억이 존재하는 순간부터 함께하는 인생의 동반자’다. 한평생 바둑과 함께한 이세돌 9단은 바둑의 매력을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지적인 게임’이라고 말했다. 바둑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바둑을 두는 자신이 책임져야 하며, 졌다는 결과도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세돌 9단은 바둑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한다. 우선, 대국에 들어가기 전 이세돌 9단은 ‘자신감’을 가장 중시한다. 이세돌 9단은 ”경기에 들어가기 전에 가상으로 바둑을 둬보면서 자기 최면을 건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신감을 높여 정신 무장을 한 이후 이세돌 9단이 실전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자기 확신’이다. 무수한 선택의 상황인 바둑에서 자기 확신에 따른 결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세돌 9단은 “길을 선택할 때, 5대 5의 확률이긴 하지만 ‘이게 맞는 길이다’라고 확신하는 경우는 다르다”며 “수많은 바둑의 길에서 확신이 없을 경우 실수하고 잘못된 길로 가지만, 확신이 있는 선택은 거의 맞는 길로 간다”고 전했다.
이어 승부의 결과에 대해서 이세돌 9단은 “지는 것을 무서워하지 마라”고 전한다. 바둑이라는 것은 숱하게 지는 과정을 거치며 10판을 두면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고 할지라도 2~3판은 지게 된다. 하지만 이세돌 9단은 “바둑의 본질에 있어서 승패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당부한다. 승패에 집착을 하다보면 좋은 바둑을 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세돌 9단은 경기 이후 복기까지 거친 후에야 진정으로 경기를 끝맺는다고 한다. 이세돌 9단은 “바둑은 복기까지 거친 후에 실제로 다 끝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과정은 지나가고 단지 승패만이 더 부각된다”며 “어떻게 보면 바둑은 예술에 가까운 것인데 이런 현상은 바둑의 본질이 흔들리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정상에서 찾아온 슬럼프

하지만 승패를 초월해 바둑 그 자체를 즐기는 것같은 이세돌 9단에게도 슬럼프는 존재했다. 바로 지난 2003년도에 이창호 9단을 처음으로 이기고 세계대회 2관왕이 되면서 생긴 자만심 때문이다. 하지만 슬럼프로 인해 당시 이세돌 9단은 70%대의 승률은 유지했지만, 춘란배, 응씨배 등 주요 세계대회에서 1, 2회전 탈락을 겪었다. 이세돌 9단은 “당시에 1인자인 이창호 사범님, 조훈현 국수님은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지 않았다”며 “이 때 단순히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는 꾸준한 노력이 존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이런 생각이 들자 이세돌 9단은 슬럼프로 인해 풀어졌던 마음이 점점 ‘이대로 끝날 수도 있겠다’는 초조함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후 이세돌 9단은 “바둑 자체가 엉망이 돼있던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독하게 이 악물고 노력했다”며 “주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았고, 운이 따라서 회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바둑과 함께 성장한 이세돌 9단

바둑과 함께 성장한 이세돌 9단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둑을 보는 관점도 달라졌다고 한다. 이세돌 9단은 “어린 시절에는 국지적으로 봤지만 커가면서 판을 보는 눈이 생겼다”며 “전체를 보다보니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되고 발전해 나가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이세돌 9단은 어린 시절처럼 강한 폭발적인 기풍이 드러나지 않는 점이 아쉽다고 전했다. 이세돌 9단은 “어린 시절에는 심적인 동요가 크지만, 이것이 폭발력으로 작용한다”며 “지금은 평균적으로는 더 괜찮아졌을지는 몰라도 어린 시절 만큼의 강한 폭발력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성장기를 거치면서 이세돌 9단의 기풍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그만의 독창적인 바둑 스타일은 항상 화제가 된다. 이세돌 9단의 바둑에서는 자신만의 철학을 중시하는 이세돌 9단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에 이세돌 9단은 “과거에는 기보만 조금 봐도 어떤 기사의 바둑인지 알 수 있었다”며 “인터넷의 보급과 공동 연구의 진행 등으로 지금의 바둑계가 기사들이 서로 비슷해진 경향이 있지만, 나만의 스타일은 당연한 것”이라고 전했다.


승부사로서 이세돌 9단의 미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세돌 9단은 승부사로서 40살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한다. ‘바둑을 두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그의 말에서 바둑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세돌 9단은 “아직은 6년 가까운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천천히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40살이 넘으면 전성기가 끝날 수도 있고 승부로는 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분간은 승부를 계속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또한, 올해는 바둑 성적을 중요시하는 시기라고 한다. 이세돌 9단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알파고와의 대국은 어떻게 보면 인간 대표로서 둔 것인데 이런 인간 대표가 대국 이후 승부가 좋지 않다면 그 대국 자체의 의미가 퇴색될 것 같다”며 “올해는 바둑 승부 쪽을 가장 중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 5월 10일 이세돌 9단은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뜻인 입신인 9단 중에서도 상위권의 24명만 참가해 벌이는 대회인 맥심커피배에서 통산 5번째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런 이세돌 9단의 다음 목표는 제8회 응씨배 우승이라고 한다. 항상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세돌 9단의 모습에서 승부사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지나친 경쟁 사회 속에서 우리가 원하는 일에 도전하는 승부사가 되기란 쉽지 않다. 이세돌 9단은 “힘들다는 것이 피부로 와 닿지만 너무 힘들게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항상 생각 자체를 창의적으로 해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또한, 이세돌 9단은 취업에 좌절하며 항상 힘들다는 생각만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세돌 9단은 “항상 좌절하며 힘들다는 생각만 하게 되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며 “지나친 경쟁 사회 속에서 다들 힘을 낼 수 있도록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한다”고 말한다.
항상 도전하는 이세돌 9단. 청춘들이 그의 모습처럼 자신만의 무언가를 갖고 현재를 살아간다면, 삶의 힘든 역경들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전신 : 전투의 신.
**신산 : 형세판단이 매우 정확하여 틀림이 없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이창호 9단의 별명이기도 하다.

 

 

글 남유진 기자
yujin221@yonsei.ac.kr

사진 한동연 기자
hhan58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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