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학자’가 아닌 ‘사람’을 양성하는 곳

 

이윤주(경영·14)

 

‘학교’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무슨 의미를 지닐까? 학교라는 단어를 떠올려보면 어떤 사람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치열하게 공부하던 모습을 생각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친구들과 어울리며 장난치던 것을 추억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운동장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색에 잠겼던 시간을 회상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학교는 두말 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명백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학교의 가장 큰 의미란 ‘사람들이 어울리면서 사회성을 길러나가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을 만나면서 차츰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학교는 학생들이 등교할 때만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해가 넘어갈 무렵에는 동네 주민들의 산책 공간으로, 주말 아침에는 아버지들의 조기축구회장으로, 눈이 오는 날에는 꼬마들의 눈싸움터로 변한다. 이렇게 학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회적 교류의 장이 되어 생각보다도 훨씬 큰 역할을 해내고 있다. 실제로, 유럽이나 미국의 많은 대학교들은 공간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기보다는 ‘마을’의 일부로서 여겨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문객들도 큰 위화감 없이 학교를 둘러보고 이용할 수 있고, 관광으로 인한 인지도까지 얻고 있다.
물론, 외부인의 출입을 허용할 경우 학생들이 겪는 불편함도 있을 것이다. 점심을 먹어야 할 시간에 사람이 많아 이용하기에 오래 걸린다든지, 가끔은 견학 온 청소년들로 인하여 통행이 다소 복잡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아주 사소한 불편이다. 학교가 ‘학생’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사람’들의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 당연하고 또 그를 통해 사회성을 기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학생들의 교내시설 이용이 많은 시간에는 학생들에게 이용 우선권을 부여하여 이러한 불편을 줄이는 절충안을 마련 할 수도 있다.
반면 학생들이 거의 학교를 이용하지 않는 주말이나 공휴일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할 경우 학교는 그야말로 ‘텅 빈’ 공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주말을 활용해 연세대학교를 구경하고 싶은 청소년들도 많을 것이고, 청송대를 산책하고 싶은 동네 주민들도 많을 것이다. 이러한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줄 수 있는 데도 학교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손실이라고도 볼 수 있다.
뿐만아니라 만약 교내에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다면 학생들은 현재 겪고 있는 사소한 것보다 더한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려면 기본적으로 ‘스피드게이트’나 그것과 유사한 통제 시스템이 적용되어야 할 텐데, 이로 인해 가해질 제약은 이동을 훨씬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이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나 이를 관리할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사용된 예산은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쓰이는 예산의 감소로 돌아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특히 도전과 창조, 소통과 공감, 나눔과 배려, 섬김과 존경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연세인으로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과 우리의 학교를 나누고 공유할 줄 아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한다. 학교는 나의 기쁨이고, 나는 이것을 나누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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