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희생은 당연하지 않아요

그녀의 직장은 그녀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느끼지 않았다.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 그녀의 삶은 서서히 피투성이가 돼갔지만, 공장에게 그녀는 수많은 노동자들 중 한 명일뿐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그녀가 사회의 그늘진 어딘가에서 다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그 누구도 불법 파견 노동자(아래 파견 노동자*)인 그녀의 삶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녀와 그녀에게 닥친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청 먹이사슬 속 노동자는 ‘파리 목숨’

지난 2015년 12월 말, 경기도 부천시에 위치한 스마트폰 부품 가공업체에서 일하던 20대 여성 노동자 김미연(28,가명)씨는 자신의 몸에 이상이 있음을 느꼈다. 미연씨는 이유 모를 두통과 메스꺼움이 있었지만 공장으로 일하러 나가야 했다. 그리고 지난 1월,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 간 미연씨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미연씨의 시력 상실 원인은 스마트폰의 버튼을 만들기 위해 사용되는 메틸알코올로 인한 급성 중독으로 밝혀졌다. 미연씨가 다친 후에도 인천 남동 공단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20대 노동자들이 같은 이유로 실명됐고, 뇌손상과 인지능력 저하 등이 동반됐다.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요? 눈이 안 보이다가, 이제는 다른 데도 다 아파요.
청춘이니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고 있는데, 불가능한 것 같아요”
- 메틸알코올 급성 중독 피해자 미연씨의 말

노동건강연대의 박혜영 노무사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하청 먹이사슬 구조’를 꼽았다. 미연씨를 비롯한 메틸알코올 급성 중독환자들은 모두 LG와 삼성의 하청업체에서 일한 파견 노동자였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아래 파견법)』 제5조는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에 파견 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각종 제조업 현장에 불법적으로 파견 노동자가 투입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박 노무사는 “대기업은 위험 업무를 하청 업체에 맡겼고, 하청 업체에서는 원청 업체가 제시한 단가에 맞추는 수동적 경영이 이뤄졌기에 파견 노동자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파견 노동자는 기본적인 안전 보호조차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 사건의 원인인 ‘하청 먹이사슬 구조’를 들여다보면 원청 업체와 하청 업체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알 수 있다. 원청 업체인 LG와 삼성은 파견 노동자들을 직접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 삼아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지 않았다. 하청 업체 또한 파견 노동자들의 안전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없이 그들을 노동 현장으로 투입했다. 이런 가혹한 시스템 속에서 파견 노동자들은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하고 노동을 숙련할 시간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최저임금을 받으며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를 해야 했다. 이 비극적 사건에 대해 알바노조 대학사업팀 이가현 팀장은 “기업이 자신들의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의 건강, 생명, 안정과 관련된 것들을 포기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젊은 노동자들이 희생됐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20대 노동자들의 삶이 피투성이가 된 이 사건 이후 정부는 메틸알코올 사용 사업장에 작업 중지 및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또한 실명된 파견 노동자들은 산재보험에서 나오는 보험액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산재보상정책과 관계자는 “해당 사건 이후 다른 사업장 역시 관리·감독을 강화해 더 이상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처벌과 보상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사건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미봉책일 뿐 구조적인 변화는 없었다. 때문에 이러한 관점은 20대 파견 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잔인한 것이다. 이 사건을 맡은 권동희 노무사는 “처벌과 보상은 이뤄졌지만, 시스템이 바뀐 것이 아니므로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며 “정부의 반짝 행정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즉, 이 문제적 시스템은 여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사건과 동일한 맥락의 또 다른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국의 모든 공단지역에 일상화된 파견 노동을 둘러싼 위험에 대한 어떤 정책도 내놓은 바 없다. 박 노무사는 “재판부는 노동자들이 다쳐도 경영 활동이 중요하다는 이유로 기업에게 면죄부를 쥐어준다”고 전했다.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있지 않은 가운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노동개혁의 ‘노동 4법’에는 노동자의 파견 허용을 확대하는 내용의 파견 근로자법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노동계는 비판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인천지역본부 장안석 조직부장은 “인천지역 ‘노동자 권리 찾기 실태조사’ 결과 기업들의 97%가 파견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며 “이미 노동자들이 만연하게 불법으로 파견돼 있는 상태인데, 이 불법적 상황을 합법화 시켜주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20대 노동자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누군가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파견 노동의 위험성이 이렇게 심하다면, 파견 노동을 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정작 파견 노동자들은 자신이 입사한 업체가 불법 파견 업체라는 사실을 알기 힘들다. 불법 파견 업체들이 정체를 숨기고 파견 노동자들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장 조직부장에 따르면 파견 노동자들은 대부분 아웃소싱(outsourcing)** 업체를 통해 입사하기 때문에 그 일이 불법 파견 노동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한다. 이에 대해 박 노무사는 “정부가 운영하는 구인구직 사이트에조차 불법 파견업체의 구인 광고가 버젓이 올라와 있다”며 “내가 상담한 20대 여성 파견 노동자의 경우 해고당한 당일에서야 자신이 파견 노동자임을 알았다”고 전했다. 구인구직 사이트에 ‘아웃소싱 생산직’을 검색해본 결과 ▲워크넷 321건 ▲알바천국 518건 ▲벼룩시장 440건 ▲잡코리아 91건이 있었다. 실제로 알바천국에서는 한 아웃소싱 업체가 ‘생산직 급구’라는 제목으로 ‘삼성·LG· 현대’의 1차 생산직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 모집 공고의 고용 형태는 ‘아르바이트, 정규직, 계약직, 파견직’으로 엄연한 불법 파견 근로 모집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구인 구직 공고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만연해 있었다.
이런 열악한 근로 상황에 대한 대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명지대 길혜연(21)씨는 “정부에서 개선책을 만들었다지만 실상 달라진 것은 없고, 책임회피는 과거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서울과기대 박규현(21)씨는 “이런 상황들이 사람들에게 마치 TV 속에 잠깐 지나가는 일화처럼 보일 뿐,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것이 문제”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의 고난을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곳은 정말 없는 것일까. 다행히 이런 노동자들의 삶을 이해하고 함께 현실을 타파하고자 하는 노동 상담소가 있다. 천주교 인천교구 노동 상담소의 김영미 노무사는 “노동자들에게 체불 임금, 해고, 산업재해 등에 대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며 “노동자들도 임금 문제와 보험 제도에 대한 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 불법파견 노동자 메틸알코올 중독 실명 방치 규탄 기자회견 현장


몇 가지 사소한 사건도 있었다. 한밤중에 여직공 하나가 겁탈 당했다. 기숙사와 가까운 곳이었으나
그녀의 입이 막히자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안개는 그 읍의 명물이다. 

누구나 조금씩은 안개의 주식을 갖고 있다.    

 - 기형도, 「안개」

우리의 시선을 가린 ‘안개’는 안개 속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안개로 인해 우리가 그 숱한 사건들을 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는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 노무사는 “20대 파견 노동자의 현실은 사회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사건처럼 극단적 상황에 처했을 때에나 그 피해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고 전했다. 이제 우리는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청년들의 삶을 바라봐야 할 때다.

*파견 노동자 : 파견 사업주인 원청 업체에 고용된 후, 그 고용 관계를 유지하면서, 근로자 파견 계약에 따라 실사용사업주인 하청 업체 지시 하에 종사하게 된 노동자
**아웃소싱(outsourcing) : 기업이나 기관이 비용 절감, 서비스 수준 향상 등의 이유로 기업에서 제공하는 일부 서비스를 외부에 위탁하는 것.

글 송민지 기자
treeflame@yonsei.ac.kr
그림 이주인 기자

<자료사진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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