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사회의 새로운 소통창구, 대나무숲

때로는 일기장처럼 누군가의 감성이 담기는 곳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진지한 사회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이 되는 곳. 바로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다. 이제는 대학사회의 일부가 돼 버린 페이스북 대나무숲 페이지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그리고 우리에게 대나무숲은 어떤 의미일까?
 

대나무숲의 기원
 

누구나 한번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설화를 들어봤을 것이다. 당나귀 귀처럼 긴 임금의 귀를 보게 된 이발사는, 비밀을 지킬 것을 당부 받는다. 그러나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이발사는 숲에 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는데, 이발사의 외침은 대나무숲의 바람을 통해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전달됐다고 한다. 그 때 그 숲이 바로 대나무숲이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설화에 나온 대나무숲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페이스북 ‘대나무숲’(아래 대숲) 페이지가 있다. 페이스북의 대숲 페이지는 신상이 밝혀지지 않은 소수의 관리자가 학내 학우들의 다양한 익명 제보를 게시해주는 곳이다. 대숲은 특히 대학가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오늘날에는 대숲 페이지가 없는 대학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숲은 우리 사이에 깊이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대숲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우리나라 대학가 최초의 대숲 페이지인 ‘서울대학교 대숲’은 싱가폴로 교환학생을 떠났던 서울대 이원준(정외·11)씨로부터 시작됐다. 이씨는 싱가폴국립대학교에 다니며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NUS Confessions’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주목하게 된다. NUS Confessions는 학생들의 익명제보를 전달해 주는 페이지로, 이씨는 제보의 ‘익명성’에 매력을 느꼈다. 그리고 지난 2013년 12월 9일, 이씨는 국내에도 이러한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친구들과 함께 페이지를 개설했다. 페이지의 이름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대나무숲을 차용해 ‘대나무숲’으로 지었다.

주로 사랑 고백과 단문 위주의 제보들로 구성됐던 ‘NUS Confessions’와는 달리 서울대 대숲은 특정 주제에 국한되지 않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폭넓게 다룰 수 있는 공간이다. 이렇게 시작한 대숲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사건과 맞물려 활발한 정치적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뒤이어 다른 대학교에서도 ‘**대학교 대나무숲’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가 개설됐고, 우리대학교도 지난 2014년 1월 그 대열에 합류했다. 만들어진 지 채 3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대숲은 어느새 대학사회에 빠질 수 없는 커뮤니티가 됐다. 20일을 기준으로 가장 처음 만들어진 서울대의 대숲 페이지의 경우 팔로워 수 13만 4천711명을 기록하고 있고, 우리대학교의 대숲 페이지의 제보는 40만 건을 훌쩍 넘기는 등 그 규모는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의 그림자
 

그렇다면 학생들이 대숲을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대숲의 ‘익명성’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을 지닌 지인들도 내 글을 접할 수 있는 공간에서 어떤 사안에 대한 활발한 토론을 이어가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SNS를 의견 표출의 공간보다는 네트워크 유지 또는 일상 공유의 공간으로 활용하곤 한다. 우리대학교 윤영철 교수(사과대·미디어사회학)는 “어떤 이슈에 대한 고발 또는 지적을 하기에 현재의 SNS 인프라는 적합하지 않다”며 “익명성을 보장받고 깊은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할 수 있기에 많은 이들이 대숲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익명성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익명이 보장되는 대숲 특성상 제보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허위제보가 올라올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것이 기정사실화돼 퍼질 경우 해당 제보와 관련된 개인이나 단체가 피해를 입는 상황까지 이어질 수 있다. 2015학년도에 한양대 사범대 학생회장이었던 김나영(국어교육·13)씨는 “학생회에 대한 비난성 허위제보로 인해 사퇴요구까지 받은 적이 있다”며 “정정댓글 및 정정제보를 올렸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낙인이 찍힌 후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보의 내용이 거짓임이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익명성으로 인해 개인 또는 단체가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소재는 불분명하다. 장보경(정외·13)씨는 “대숲에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카더라’ 비방이 제보 및 익명 댓글로 올라온 적이 있다”며 “말도 험하고 사실무근이었기에 타임라인에 사과요구 글을 올렸지만, 당사자들은 사과는커녕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사실관계 확인 체제의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만큼의 영향력 또는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숲의 규모와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사실관계 확인이 되지 않은 것에 대한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윤 교수는 “제보를 선정하는 기준부터 올리는 순서까지 모든 것이 관리자들의 편집 행위”라며 “언론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론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윤 교수는 “모든 제보를 선별 없이 올린다고 하더라도 그 중 거짓제보가 있다면 그것은 통신상 명예훼손의 범법행위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현재의 영향력을 고려했을 때 대숲은 제보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이다.
 

너무 커 버린 대(大)숲
 

초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숲의 파급력은 증가했으며, 이에 발맞춰 운영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생겨나고 있다. 박채린(CLC ·15)씨는 “현재는 대숲이 전달자의 역할만 수행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많은 학생들이 이용하고 우리대학교를 대표하는 페이지 중 하나인 만큼 최소한의 사실여부 확인 등의 기능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숲이 지니는 영향력을 인식하고 사실만을 전달하는 ‘언론’의 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대학교 K씨는 “대숲이 커져버린 것은 관리자들의 탓이 아니다”라며 “대학 내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관리자들이 모든 제보에 대해 책임져야 할 의무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관리자들 역시 대숲은 언론처럼 공적인 책임이 부과된 곳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대숲은 애초에 사실만을 이야기하자고 생긴 공간이 아니며 그 영향력이 커졌다고 해서 본질이 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숲을 처음 만든 이원준씨는 “대숲에 사실관계 확인의 의무는 없다”며 “제보에 대해 일일이 사실확인을 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씨는 “제보자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면, 대숲은 필터링을 거쳐 ‘OOO 귀는 당나귀 귀’라고 전달해주는 곳이지, ‘임금님 귀가 정말 당나귀 귀인가?’를 묻는 곳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개인 또는 단체에 대한 비방을 방지하기 위해 이름을 가리거나 유추할 수 있는 단서들을 제거하는 등의 필터링은 제공할 수 있지만, 사실관계 확인의 의무를 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대학교 원주캠 대숲 페이지 관리자 측 역시 “현재 대숲은 마치 언론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하나의 매체라기보다는 전달자에 가깝다”며 “정보의 능동적인 선택과 전달이 아니라, 정해진 관리규칙 내에서만 제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했다. 
 

관리자와 구독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대숲
 

현 상황에서 대숲이 더 바람직한 공론장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선행돼야 한다. 우선, 확실한 제보 선정 기준이 공개돼야 한다. 콘텐츠를 선별해서 올리는 대부분의 매체는 기본적으로 선별의 알고리즘 또는 원칙을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대숲은 아직까지 특정 인물을 비난하거나, 광고성 제보 등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지 않는 제보는 올리지 않는다’라는 기준 외에는 명확한 선별기준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모든 제보가 올라가지 못하는 대숲의 경우 관리자들의 판단에 의해 제보가 게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윤 교수는 이에 대해 “대숲이 대학사회에서 큰 파급력을 지니고 있다면, 자의적 판단기준이 아닌 명확한 제보선정 기준을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편 대숲 페이지의 구독자가 많아지면서 제보와 이에 대한 반응의 범위 역시 다양해졌다. 광고성이거나 욕설로 이뤄져 자극적인 제보와 댓글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이에 대해 “규모가 커지면서 관리가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며 “페이스북의 비속어 필터링 기능 등을 최대한 활용하고 인력을 보강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독자들이 스스로를 ‘대숲을 만들어가는 주체 중 하나’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대숲은 아직까지 불안정한 공간이며, 원래의 목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문제들을 파생시키고 있다. 대숲은 과장되거나 잘못된 제보에 대해 자체적인 자정능력을 지닌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 한다. 윤 교수는 “잘못된 정보는 함께 정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구독자들 사이에서도 적극적인 사실확인 문화가 보급돼야 함을 강조했다. 즉, 대숲은 제보자의 일방적인 외침으로 끝나는 공간이 아니라 구독자들의 참여로 함께 만들어지는 공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대학생들이 대숲에 제보를 하며, 댓글을 달고, 게시된 제보들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듯 대숲은 대학사회와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됐다. 현재 대숲이 대학사회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관리자 및 구독자들의 성숙한 태도와 함께 대숲이 보다 바람직한 공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서형원 기자
ssyhw35@yonsei.ac.kr
 주은혜 기자
gracechoo@yonsei.ac.kr
일러 안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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