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연구요원 제도 폐지 방침에 거세게 반발하는 국내 이공계

“국가는 우리에게 알파고를 만들고
노벨상을 타오라 요구하지만,
실제 연구 현장은 
그 존속조차 위협받고 있다”

 

▲ 지난 19일, ‘전국 이공계 학생 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는 국회 정론관에서 전문연구요원 폐지 방침에 대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지난 19일 아침 9시 20분, 국회 정론관에서 ‘전국 이공계 학생 전문연구요원 특별대책위원회(아래 특대위)’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우리대학교 공과대·이과대·생명대·국제대 학생회를 포함한 10개 대학 29개 학생회가 결성한 특대위는 이날 국방부의 전문연구요원(아래 전문연) 폐지 방침에 대해 공식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처럼 전국 각지의 이공계 학생회가 뜻을 모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기에, 해당 사안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전문연 폐지 계획에 발끈한 이공계
 

전문연은 매년 석사 이상 학위 소지자 중 2천500명을 선발해 현역 복무 대신 연구기관에서 대체 복무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제도다. 이는 지난 1973년, 카이스트의 설립과 함께 도입됐으며 국가 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국방부는 지난 16일, 전문연의 선발 인원을 오는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여나가다 오는 2023년에는 대체복무제도 자체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박사과정의 전문연 선발은 2019년을 기점으로 중단된다. 국방부는 2020년부터 인구절벽이 예상돼 병력자원이 줄어들고, 복무 기간도 단축돼 조정계획이 필수적인 상황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현행 대체복무제도의 유지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계획이 밝혀지자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SNS는 물론 서울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 주요 대학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비판하는 글이 줄을 이었다. 카이스트 총학생회는 전국 총학생회 및 단과대 학생회들과 연계해 특대위를 구성했다. 지난 19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특대위는 “현대 사회에서 국방력은 병사의 수가 아니라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구성된다”며 “병력자원 규모를 이유로 핵심 인력의 연구를 중단시키는 것은 구시대적이고 근시안적인 발상”이라며 전문연 폐지에 강하게 반발했다. 특대위 결성을 주도한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 박항(수리과학·13)씨는 “이공계인들이 공동의 목표를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모이는 자리가 흔치 않은 만큼, 구성원간 합의를 통해 당면한 과제를 잘 해결해낼 것”이라며 의지를 내비쳤다. 또한, 특대위는 전국적인 차원의 서명 운동을 진행해 국방부에 전달하고, 차후 국방부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다.
 

‘십년지대계’ 무너지나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이나 박사 학위 취득이라는 목표를 세울 때는 향후 5년에서 10년간의 계획을 수립한다. 전문연 대체 복무를 염두에 둔 남학생들은 일반적으로 학부 1~2학년부터 향후 10년간의 학업계획을 세운다. 실제로 2014년 발표된 논문 「기업체 고급과학기술인력의 효율적 양성을 위한 전문연구요원제도 개선방안」에 따르면, 석사 과정 학생의 56%가 학부 과정 중에, 10%는 대학 진학 전에 전문연 편입을 결정한다. 현재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전문연 박사과정이 폐지되는 것은 오는 2019년이다. 때문에 석사과정 1년차와 학부 3~4학년 학생들에게 큰 타격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대학교 오은설(의공·13)씨는 “원래는 박사과정 전문연을 하려 했으나 시기상 지원이 불가능해져 석사까지만 마치고 연구소로 가는 것으로 계획을 새로 세웠다”며 “계획을 수정하면서 사회진출이 늦어지는 것은 물론 하고 싶었던 연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연구 인력 유출로 이공계 수준 저하 우려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남성은 병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 이에 따라 복무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연구와 학업을 지속할 수 있는 전문연 제도는 이공계 학생들을 대학원 진학으로 이끄는 가장 큰 방법 중 하나다. 지난 2012년 6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전문연 74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문연 제도가 없었다면 42%는 해외 유학을, 38.8%는 취업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국내 대학원에 진학했을 것이라는 응답은 19.2%에 그쳤다. 서울대 윤여랑(에너지시스템공학·석사2학기)씨는 “많은 학생들이 전문연 제도 때문에 외국 유학보다 국내 연구원을 선택한다”며 “이 제도가 폐지되면 우수 인력들이 외국에 유출될 가능성만 커진다”고 지적했다. 또한, 우리대학교 한균희 교수(약학대·의약화학)는 “전문연 제도를 계기로 취업이 아닌 연구의 길을 걷는 학생들이 많다”며 “이들을 저버리는 것은 국가 경쟁력 제고를 포기하자는 이야기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내 대학원 진학 비율이 감소하고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이 심화되면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이공계 전체의 수준이 저하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다. 유니스트 총학생회장 두경서(화학공학·11)씨는 “전문연 제도가 없어지면 당장 국내 연구실의 연구 인력이 부족해질 것”이라며 “국책 사업을 다수 진행하고 있는 이공계에서 손발이 되는 것은 대학원생들과 전문연인데 전문연 제도의 폐지는 결국 연구 자체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도 폐지의 경제적 효과도 고려해야


한편, 전문연 제도가 폐지됐을 때의 경제적 효과 또한 우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포스텍 총학생회장 김상수(생명과학·13)씨는 “전문연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우수 인력들이 국가를 위해 종사하게끔 하는 제도”라며 “전문연을 폐지한다면 국가는 당장 약 6천 명의 현역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에 견줄 수 없을 만큼 큰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될 것”이라 말했다. 지난 18일 새누리당 서상기 의원과 송희경 국회의원 당선인이 전문연 제도 관련 기자회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카이스트만 하더라도 전문연들은 매년 2천300억 원 규모의 위성, 로봇, 국방, 항공 등 국가 R&D 과제와 450억 원 규모의 산업체 위탁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 중이다.

또한, 전문연 제도 폐지로 중소기업체가 받을 타격이 특히 클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 박씨는 “전문연은 국가나 대학 연구시설 뿐 아니라 기업체 연구시설에서 대체복무를 하기도 한다”며 “인력 부족 문제를 겪는 중소기업이 전문연 제도를 통해 도움을 받고 있는데, 해당 제도가 폐지된다면 이들에게 돌아갈 경제적 타격이 특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7~ 18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연구소 보유 기업 317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90.4%가 전문연 제도 폐지를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지원본부 인력정책실 관계자는 “통계상 전문연의 40% 이상이 대체복무를 하던 중소기업에 계속 종사하는데, 이는 연구 인력난이 심각한 중소기업이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안”이라며 “전문연 폐지 방침은 이러한 중소기업계의 실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처사”라고 비판했다.


국방력 저하? 병역특혜?
전문연에 쏟아지는 의문의 화살


그러나 전문연 폐지 방침에 반발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마냥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국방부의 결정을 지지하면서 이에 대한 이공계 학생들의 반응이 과하다고 지적한다. 국방부는 2016년 현재 대한민국 군 병력수준은 63만 명이지만, 인구절벽현상에 대비해 2020년에는 약 52만 명까지 줄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예상병력은 목표수준인 52만 명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병력을 늘리는 다른 방안들과 함께 전문연 제도의 폐지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예상되는 미래 병력의 부족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이종영(신소재공학‧석박사사통합5학기)씨는 “현 시대에는 병력규모보다 신무기 개발 및 확보가 안보에 더 중요하다”며 “국방력의 핵심은 병력이 아닌 기술력과 경제력에 있다”고 반박했다.

전문연 제도가 이공계인들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병역 특혜라는 지적도 있다. 우리대학교 재학생 B씨는 “국방부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데도, 이제껏 본인들이 받았던 ‘병역 특혜’를 내려놓기 싫다는 이공계 학생들이 이기적인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리대학교 공과대 학생회장 홍가근(정산공·12)씨는 “‘병역 특혜’라는 표현은 불편하지만, 기존 전문연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특혜’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기회에 제도 개선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카이스트 부총학생회장 박씨는 “전문연 제도가 일부 이공계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특혜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그러나 이는 제도의 폐지가 아닌 개선을 통해 해결할 문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공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국방부는 지난 19일, 전문연 제도 폐지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며 발뺌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관련 부처 및 기관의 의견 수렴 중에 있으나 방침이 확정된 것처럼 오해돼 필요 이상의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특대위는 차후에도 이런 갈등이 불거지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관련 논의를 확실히 마무리 짓겠다는 입장이다.
국력이 병력 규모만을 의미하던 시대는 지나도 한참 지났다. 국가의 인적 자원들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국방부와 관련 부처의 신중한 정책 결정이 필요하다.

글 박은미 기자
eunmiya@yonsei.ac.kr
김은지 기자
_120@yonsei.ac.kr
사진 정윤미 기자
joym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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