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를 ‘타파’하고 진짜 뉴스를 향해

▲ 뉴스타파 최경영 기자

지난 19일, 덕수궁 옆 뉴스타파 사무실에서 최경영 기자를 만났다. 다음은 최경영 기자와 우리신문과의 일문일답이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한다.
A. 현재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아래 뉴스타파)에서 에디터의 역할을 맡고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지난 1995년에 KBS에 기자로 입사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중간에 한국개발연구원(Korea Development Institute,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고, 미국 미주리대학교(University of Missouri)의 저널리즘 대학원에서도 공부했었다. KBS 재직 당시 기자치고는 드물게 기자와 PD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그래서 기자 중에 가장 PD다운 기자라는 말도 들었다. KBS에 있을 때는 PD로서 KBS 스페셜『한국사회를 말하다』,『미디어포커스』등의 제작에 참여했다. KBS 탐사보도팀에서도 활동했다.
 

Q. 기자라는 직업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A. 당시 투철한 사명감은 없었고, 어중간한 상태로 기자 원서를 내고 KBS에 입사했다. 기자가 되기 위해서 처음부터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기자 생활을 하는 중에도 충분히 사명감이 생길 수 있다.
 

Q. 2013년에 KBS를 나왔다. KBS를 나오게 된 계기와 이후 뉴스타파에 합류한 이유는 무엇인가?
A. KBS를 나온 것은 지난 2013년이지만 사실 마음이 떠난 것은 2008년부터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던 2008년 8월 8일, 당시 KBS 사장이었던 정연주 사장을 해임하기 위한 임시이사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MB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KBS의 기자들은 이에 반발하며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사원행동’(아래 사원행동)을 조직했으나, 경찰에 의해 진압 당했다. 당시 나는 사원행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인사발령을 받고, 당시 속해 있었던 탐사보도팀을 떠나야했다. 이후 작은 방에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로 간부들에게 감시받았다. 그리고 지난 2009년, 회사를 휴직하고 미주리대학교 저널리즘 스쿨로 유학을 떠났다.  그리고 지난 2012년,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의 간사로서 활동했다. 같은 해 3월에 언론 파업에 참여했고, 4월에 해임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처분은 6월에 정직으로 감경됐다. 당시 나는 2008년 이후로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했던 터라 일이 너무 하고 싶었다. 특히『미디어포커스』와 같은 언론개혁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깊었는데, 그러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한편, 지난 2012년 1월 MB 정부 시기의 해직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뉴스타파가 시작됐다. 2012년 대선이 끝나자 뉴스타파에 대한 국민들의 후원이 급증했다. 뉴스타파가 진정한 탐사보도 독립언론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자연스럽게 나도 2013년에 KBS를 퇴직하고 뉴스타파로 자리를 옮겼다.
 

Q. 뉴스타파는 어떠한 언론을 지향하는가? 그리고 뉴스타파에서 에디터의 역할을 맡고 있는데 에디터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는가?
A. 뉴스타파는 비정파적인 독립언론을 지향한다. 하지만 이것이 곧 기계적인 중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뉴스타파의 에디터는 직접 취재를 하지 않는 기성 언론의 편집진과는 다르다. 방송을 총괄하면서 동시에 기사도 쓰기 때문이다.
 

Q. 최경영 기자는 민경욱 前 KBS 앵커(20대 총선 새누리당 당선자)가 지난 2014년 청와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기자 민경욱 前 앵커를 강하게 비판했다. 언론인들의 정계진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언론인들도 정계진출 할 수 있다. 하지만 민경욱 前 앵커는 ‘KBS인 중 TV 및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그리고 정치 관련 취재 및 제작담당자는 공영방송 KBS 이미지의 사적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KBS 윤리강령」 1조 3항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기수 문화, 선후배 문화 등으로 인해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 기자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Q. 세월호 사건 당시, 우리 언론들이 보여준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는가?
A. 세월호 사건 당시의 지상파 보도를 살펴보면, 사건이 일어난 지 12시간이 지난 후에도 뉴스는 정부의 보도 자료를 내보내는 데 급급해 오보를 냈다. 현장을 외면하고 출입처*의 보도 자료만 믿은 것이다. 한국 언론에게 있어서 세월호는 상당히 치욕스러운 사건이다. 지상파 방송이 정부의 스피커로서 작동한 것이다. PD와 달리 기자들은 출입처에 대한 이해가 높지만 잘못하면 출입처에 동화돼 현장성과 객관성을 놓치게 된다. 출입처의 논리에 매몰되는 것이다. 한국 저널리즘의 가장 큰 위기는 이 점에서 파생된다.
 

Q.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언론인이 포함되는 것을 두고, 일부 언론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웃기지도 않고 반발의 여지조차도 없다. 많은 기자들이 받아먹는 데만 익숙해 먼저 지갑에 손이 가질 않는다. 그것이 몸에 밴 것이다. 취재원한테 도움을 받았으면 취재원에게 밥을 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취재원도 기자를 달리 보고 나중에 취재에 더 잘 응해줄 것이다.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서 취재원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소스를 얻기 위해서 같이 골프 치고, 술집 간다고 하자. 그런데 거기서 특종 나온 것을 봤는가? 대한민국 특종 중에 그런 곳에서 나온 기사가 있는가? 결국 다 변명이다. 그러한 자리에서 소스를 받았으면 기사로 써 내서 그 정보를 공공의 영역으로 알려야 한다. 하지만 언론사 내의 일부만 취재원과의 사적관계를 통해 얻은 정보를 독점하며 취재원과 유착한다.
 

Q. 최근 뉴스타파의 ‘조세회피처’ 관련 보도가 화제가 됐다. 뉴스타파의 탐사보도의 정수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조세회피처 탐사보도의 취재과정에 대해서 듣고 싶다.
A. 현재도 국제탐사보도협회(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 ICIJ)와 공조를 통해서 취재를 진행하고 있다. 계좌 개설주의 이름이 영문으로 돼 있고, 신원을 일일이 파악하기가 어렵다. 계속 취재를 진행하고 있으며 어떠한 목적으로 조세회피처를 이용했는지도 파악 중이다.
 

Q. 대학언론의 위기라고들 한다. 새로운 담론을 형성해내지 못하며, 학생사회로부터도 외면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A. 언론은 솔직해야 한다. 언론사 내에서 끊임없이,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 어떠한 편견이 있는지’ 스스로를 냉철히 바라봐야 한다. 연세춘추를 예로 들면 ‘연세춘추라면 꼭 이래야만 해’라는 식의 고정된 관념이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현직에 있는 기자들은 선배들이 물려준 유산을 대체하든 파괴하든 기존의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서 솔직해져라. 그리고 그 솔직함을 독자들에게도 보여줘라.
 

Q. 최경영 기자에게 뉴스타파는 ○○○(이)다.
A. 내가 이전에 몸담았던 KBS는 어떠한 위기가 와도 망할 수 없는 회사다. 수신료로 운영되며 그것이 법적으로 보장된다.  반면 뉴스타파는 정글이다. 끊임없이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기존의 방송사가 1분 내외의 짧은 보도를 한다면 우리는 최소 9~10분의 보도를 한다. 이러한 심층적인 보도를 좋아하는 시청자 층이 있으며 이들이 적극적으로 뉴스타파를 후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충분히 살아남을 것이다. 나에게 뉴스타파는 ‘삶’이다.
 

기자가 ‘기레기’로 불리는 시대다. 하지만 이러한 시대 속에서도 최경영 기자처럼 ‘진짜 기자’로 살아가기 위해 현장을 누비며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오늘도 우리 사회의 특권, 반칙, 차별을 고발하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이들을 응원한다.
 

*출입처 : 기자가 취재를 담당하는 기관.


글 김지성 기자
speedboy25@yonsei.ac.kr

사진 정윤미 기자
joym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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